언론개혁

‘수영장 탈의사진’ 말썽 국내언론 이번엔 대형 오보사태

강산21 2008. 8. 23. 16:39

‘수영장 탈의사진’ 말썽 국내언론 이번엔 대형 오보사태
사이클 스타 동명이인 헷갈려...“스포츠 소설부 생겼나” 비난도
입력 :2008-08-23 13:57:00  
[데일리서프 하승주 기자] 베이징 올림픽 폐막을 하루 앞둔 가운데 지난 14일 사이클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크리스틴 암스트롱과 관련해 국내언론들이 대형 오보(誤報)를 내고는 9일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제대로 된 오보 정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쇄 대형 오보사태의 첫 출발은 국내의 유력한 뉴스공급사인 연합통신의 보도.

지난 14일 연합뉴스는 베이징 올림픽 사이클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크리스틴 암스트롱의 기구한 사연을 소개했다. 뚜르 드 프랑스 사이클 경기에서 7연패를 한 전설적인 선수 ‘랜스 암스트롱의 전 부인(ex-wife)’인 그녀는 관절염으로 엉덩이뼈가 퇴화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노력해서 결국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내용이다.

▲ 14일자 연합뉴스 기사, 랜스 암스트롱의 전 부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화면 캡처 
“성(姓)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녀는 랜스 암스트롱의 전(前) 부인이다”라고 기사는 말하면서, "거리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전 남편에 대해 묻겠지만 괜찮아요. 랜스는 금메달을 못땄잖아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인터뷰까지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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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이후, 각 언론사에 제공되면서 비슷한 기사들을 양산하게 된다. 중앙일보 인터넷판인 조인스닷컴도 일간스포츠 기사를 통해 같은 내용을 보도하면서, “부부는 살아가면서 닮는다고 한다”라는 내용까지 곁들였다.

스포츠 서울에서는 그녀가 랜스의 고환암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여 뚜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내조했다는 내용도 있다.

▲ 중앙일보의 보도내용, 부부는 서로 닮는다는 내용까지 있다. 일간스포츠 제공 기사 ⓒ중앙일보 기사화면 캡처 
연합뉴스를 비롯해, 중앙일보(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파이낸셜 뉴스, 쿠키뉴스 등이 모두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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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크리스틴 암스트롱은 ‘랜스 암스트롱의 전부인’이 아니라, 동명이인이라는 점이다. 랜스 암스트롱은 97년 크리스틴 리처드(결혼전 이름)을 만났고, 98년 결혼하여 3명의 아이를 가졌으며, 2003년 9월 이혼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크리스틴 암스트롱은 랜스 암스트롱과 전혀 관계가 없다. 국내 언론이 인용보도한 LA타임즈의 원문기사를 찾아보자.

14일자, LA타임즈의 Diane Pucin 기자가 쓴 기사 제목은 “Comeback for gold-medal cyclist Kristin Armstrong (no connection to Lance)”이다. 제목에서부터 ‘랜스와는 상관없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 국내 언론이 인용보도한 LA타임즈의 원문기사, 제목에서 이미 랜스와는 관련이 없다고 명시를 하고 있다. ⓒLA타임즈 기사화면 캡처 
LA타임즈 해당기사 바로가기

기사의 첫 단락을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녀는 베이징올림픽 사이클 금메달을 딴 세계적인 선수이지만, 그녀의 이름을 구글로 검색해 본다면 자신보다 랜스 암스트롱의 전 부인에 관한 내용을 훨씬 더 많이 찾게 될 것이다”

LA타임즈지는 기사의 첫 문장에서 그녀가 동명이인이어서 맞는 애로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동 기사의 말미에는 국내 언론이 보도한 인터뷰가 실려 있다. 연합뉴스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전남편’에 대해 묻는다고 했지만, 원문에는 “사람들은 여전히 랜스에 대해 묻겠지만 괜찮아요. 랜스가 금메달을 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라는 인터뷰가 실려 있다.

LA타임즈의 원문기사를 조금만 성실히 번역해 보았다면, 그녀가 랜스 암스트롱의 전부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기사가 보도되자, 국내의 자전거 동호인들에게는 엄청난 웃음거리가 되었다. 대표적인 자전거 카페인 네이버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한 회원은 오보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난 이 글을 쓴 기자가 카페 회원이 아니기를 빈다’라고 꼬집었다.

▲ 도로사이클 동호회 도싸의 회원들이 해당 기사를 비판하는 댓글 내용 ⓒ도싸 게시판 캡처 
도로싸이클 동호회인 ‘도싸’의 회원들도 역시 “기자가 아니라 소설가군요”, “OO사에 스포츠 소설부가 신설되었군요...저걸 올린 데스크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고요” 등으로 언론의 오보를 개탄했다.

이 대형오보의 진앙지인 연합뉴스는 다음날이 15일, “관절염 이기고 金 딴 암스트롱”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전 기사를 대체하면서, 이전의 ‘랜스 - 크리스틴 부부사이’라는 오보내용을 모두 수정했다.

연합뉴스 대체기사 바로가기

그러나, 이 대체기사는 별반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파이낸셜 뉴스와 일간스포츠 등 일부 신문에서는 연합뉴스의 이 대체기사를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했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기존의 오보기사를 그대로 두고, 연합뉴스의 대체 정정기사를 함께 홈페이지에 노출하고 있는 등, 제대로 된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포털 사이트를 비롯하여 각 언론사의 독자댓글은 모두 이 기사가 오보임을 지적하면서, 빨리 수정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미 기사가 나간지 9일이 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부부는 서로 닮는다”면서 랜스와 크리스틴 두 전직 부부(?)의 기구한 사연은 여전히 한국 언론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언론이 오보를 내면 독자들이 이를 수정해준다. 그런데도 일부 국내언론들은 독자를 무시하고 있는 탓인지 여전히 오보를 수정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