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시론] 법치의 종말

강산21 2008. 8. 23. 16:29

[시론] 법치의 종말

 

한국의 법치는 이제 종말을 앞두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처음부터 내세우던 ‘법치확립’이라는 슬로건은 되레 법치 그 자체를 말살한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서부터 경제인 대량 사면에 이르기까지, 인터넷 통제에서부터 무차별적인 시위자 연행에 이르기까지, 기관장 싹쓸이에서부터 언론장악 시도에 이르기까지 천박한 사이비 법치의 담론만이 횡행하면서 이 땅의 법치를 고사시키고 있는 것이다.

- 李정권 법전엔 권한의 법만 담겨 -

법치의 본질은 법을 통해 정부권력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함에 있다. 실제 ‘법치의 확립’이란 말은 정부가 국민에게 요구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아니다. 문명사회에서의 그것은 국민에게 준법정신을 강요하는 것과는 관련이 별로 없다. 오히려 그것은 국민이 정부에 대하여 내리는 엄중한 명령이다. 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국민들이 법률을 만들고 이 법률로써 정부를 견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바로 법치의 실체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런 법치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의 법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뜻대로 휘두르는 통로이자 수단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법전에는 오로지 권한의 법만이 담겨져 있다. 농식품부 장관은 미국산 쇠고기 검역조건을 정할 권한이 있고, 경찰청장은 시위자들을 연행할 권한이 있고, 대통령은 KBS 사장을 해임하고 부정한 경제인들을 사면할 권한이 있다. 그 권한의 상층에 존재하는 헌법가치나 인권이념, 민주주의 혹은 정의의 원칙들은 하나같이 뒷전으로 밀려난다. 현대 문명사회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그 어떠한 법명제들도 그들의 법전에서는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이명박 정부의 법치는 복수심에 눈 먼 샤일록의 법을 넘어서지 못한다. 법은 국민 위에 군림하고 국민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그 어떠한 경우에도 스스로 복종해야 하는 상위의 규범이라는 의식은 전혀 가지지 못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법이란 자의적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 중의 하나 정도로만 치부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 법위에 군림할땐 ‘저항의 대상’ -

최근 정치성을 띤 사건에 언제나 검찰이 나서는 것은 그 예가 된다. 과거 군사정부에서처럼,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대중의 정치참여를 차단하는 역할을 형사사법권을 장악한 검찰이 도맡아 나선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는 검찰의 비리수사 수준에서 은폐되어 버린다. 국민주권을 향한 촛불집회의 함성은 도로교통법 위반과 집시법 위반이라는 형사법의 문제로 왜곡된다.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사이버민주주의는 명예훼손과 불온표현이라는 범죄의 수준에서 조롱된다. 정치의 문제가 형사법의 수준으로 왜곡되고 이를 정치검찰과 정치사법이 뒤처리하는 과거의 전철이 민주화를 외치는 이 순간에도 새삼 반복되고 있다. 법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법치를 내세우며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법률가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일이다.” 셰익스피어는 백년전쟁에 시달리다 결국 봉기하고 나선 농민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실제 그 농민들이 죽이고 싶었던 것은 법률가가 아니라 법의 탈을 쓰고 자신을 수탈하던 지방의 세도가들이다. 법에 봉사하는 ‘법의 관리’가 아니라 법 위에 군림하며 법을 수단으로만 여겼던 정치배들이 그 저항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아! 이미 엉클어져버린 한국의 법치는 셰익스피어조차 금서목록에 올려버릴까.

<한상희|건국대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