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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칼럼] 대한민국 90년, 정부수립 60주년

강산21 2008. 8. 17. 16:48

[이만열칼럼] 대한민국 90년, 정부수립 60주년

입력: 2008년 06월 03일 17:57:19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최근 시위현장에서 자주 듣는 노랫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1조가 민주적 절차를 거쳐 집권한 정부에 대한 항변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적어도 시위에 참가하는 국민들은 현재의 상황을 ‘민주공화국’ 체제에 대한 위기국면으로 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 위기의식 때문일까, 논자들 중에는 20여년 전의 격렬했던 6월을 떠올리곤 한다.

- 1919년 대한민국 명칭 첫 사용 -

시위현장의 노랫말로 시작하는 이 글의 의도는 올해가 대한민국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따지자는 데에 있다. 이는 최근에 정부가 올해를 ‘건국 60주년’으로 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 숫자에 맞는 위원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부의 이런 인식과는 달리 올해를 ‘정부수립 60주년’으로 봐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도 있다. 올해를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으로 볼 것인가, ‘정부수립 60주년’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대한민국의 기원문제와도 관련되기 때문에 논의할 가치가 충분하다.

대한민국이란 명칭은 1919년 4월11일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보인다. 그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 규정했다. 이 즈음에 조선민국이란 이름도 나타난다. 그해 9월에는 한성정부와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민의회정부 및 상해의 임시정부를 통합, 재출발한 상해의 통합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은 대한인민으로 조직’한다는 임시헌법을 발표했다. 이로써 9년 전 1910년에 사라진 대한제국은 대한민국으로 새 출발을 한다. 대한제국 멸망 후 복벽(復)적 독립운동은 왕조의 부활을 획책했지만, 3·1운동은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을 건립했다.

임시정부를 수립했던 대한민국은 1948년 정식정부를 수립함으로써 ‘재건’되었다. 이해 5월31일 제헌국회가 개원되었을 때 국회의장 이승만은 국회 개원식 축사에서 “기미년 3월1일에 우리 13도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서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독립민주국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였다”고 했다. 그는 또 “오늘 여기에서 열리는 국회는 즉 한민대회의 계승이요, 이 국회에서 되는 정부는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라고 하면서, 민국 29년 만에 부활되었기 때문에 민국연호를 기미년에서 기산(起算)하여 ‘대한민국 30년’에 정부수립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 이승만도 48년 ‘정부수립’ 강조 -

이때 제정된 헌법 전문(前文)은 헌법기초위원의 초안과는 달리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천명했다. 제헌국회의원들은 당시 대한민국이 1919년의 대한민국을 계승, 재건한다는 역사의식을 분명히 했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해 8월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 아니라 ‘정부수립’을 선포하는 날이었다.

이승만이 서울의 임시정부를 강조한 것은 나름대로 의도가 있는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1948년 정부수립 때의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이라고 고집한 대목이다. 정부 수립 후 이승만이 이끄는 행정부는 법적 근거도 없이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를 고집스럽게 사용하여, 단군기원을 사용하려는 국회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때문에 국회는 연호를 통일하려고 여러 차례 논의하여 단기 연호 사용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 논의에 참여한 의원 누구도 ‘대한민국 30년’을 부정하면서 단기 연호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국회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이승만은 승복했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 30년’을 고집한 이유를 나름대로 밝혔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민주정치제도가 남의 조력으로 된 것이 아니요, 30년 전에 민국정부를 수립·선포한 데서 이뤄졌다는 것과 기미년 독립선언이 미국의 독립선언보다 더 영광스럽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함이었다고 설파했다. 이승만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자부심은 이처럼 대단했다. 그의 역사인식에 따르면 올해는 대한민국 90년, 정부수립 60주년이다. 이승만을 재인식하여 띄우려면 이런 데서부터 시작하라. 한반도에서 97 숫자를 올해의 연호로 사용하는 곳이 있음을 유의해서라도, 올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충분히 고민해야 할 과제다.

<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603175719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