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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통령 지정기록 반드시 보호되어야 / 조영삼

강산21 2008. 8. 1. 12:07

[기고] 대통령 지정기록 반드시 보호되어야 / 조영삼

 

대통령 지정기록 제도’가 위협받고 있다. 최근 봉하마을 기록유출과 관련해 현 정부가 보여온 일련의 대응과 행태는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정기록을 보기 위한 의도로 여겨진다. 현 정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느끼겠지만, 그 뒤 다가올 여러 부작용은 온전히 국민들의 몫이다.

 

대통령 지정기록은 정책추진을 위한 역사적 업무활용 가치가 있음에도, 공개될 경우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어 기록을 남기지 않는 폐단을 없애고자 특별한 보호장치를 둔 것이다. 15년 범위 안에서 보호기간을 정해 그 기간에는 현직 대통령일지라도 기록을 보지 못하도록 열람 등의 조건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훈 한나라당 의원은 현직 대통령에게 전직 대통령 지정기록을 열어 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대통령기록물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지정기록을 들여다보기 위한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될 경우 거꾸로 과연 현 정부가 기록을 생산하고 남길 것으로 판단하는지 묻고 싶다. 기록에 대해 무지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국가기록원은 봉하마을에서 하드디스크를 직접 반환받았지만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서버까지 요구했다. 봉하마을에 있던 하드디스크는 진본이 아니라 사본이다. 따라서 이를 회수해 복구 불가능한 방법으로 파기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굳이 서버를 요구하면서까지 완벽한 반환을 검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 지정기록에 접근할 의도가 없다면 필요없는 행위다.

 

국가기록원은 또 현 대통령기록관장을 고발하고 그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대통령기록관장에게 5년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다. 짧지 않은 임기를 보장한 것은 일반적인 기록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있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독립적으로 대통령 지정기록 보호 임무를 수행토록 하기 위함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대통령기록관장에게 대통령 지정기록의 보호조처를 해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는 대통령기록관장이 대통령 지정기록의 관리를 수행하는 책임자라는 의미이다. 그 역할을 하는 대통령기록관장을 고발하고 직무를 정지시킨 것은 현 정부에서 임명한 관장을 통해 대통령 지정기록을 들춰 보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지정기록 보호장치가 무너지게 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록이 공개돼 당장 정쟁의 도구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대통령 기록의 생산과 보존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 지정기록 보호제도가 없었던 참여정부 이전의 역대 대통령 기록이 33만여건에 불과한 것은 기록이 적게 생산된 게 아니라 그만큼만 이관·보존됐다는 뜻이다. 정권교체 후 정쟁의 소지가 될 게 뻔하니까 보존해야 할 역사적 기록을 불태우거나 파쇄했던 것이다. 대통령 기록 보호체계가 무너지면 정권 말에 이런 무단폐기가 부활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국민들에게는 구제금융 사태를 겪고도 관련 기록이 없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런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 관련 제도를 개악하지 않겠다는 뜻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만약 대통령 지정기록을 현 정부에서 열람하게 되고, 그 기록이 정쟁의 도구가 된다면 우리는 다시 기록을 생산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으며, 공개하지 않았던 어두운 지난 시기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년에 걸쳐 가까스로 쌓은 기록관리의 정착과 성과를 심각하게 후퇴시킬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기록관리를 담당하는 공무원이기에 앞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사태의 파장에 대한 우려를 감출 수 없다.

 

교육과학기술부 기록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