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 감독 “‘우토로 조선인’ 희망주고 위로 하고파”
[한겨레] 재일 조선인 마을 다큐 ‘아름다운 게토’ 김재범 감독
“비참하지 않은 조선인들의 아름다운 일상 그렸다”
한국과 일본서 외면받는 주변인 재일동포 삶 기록
일본 교토부 우토로 51번지. 이 마을은 1941년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제에 강제 징집된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일본이 패망한 뒤 무관심 속에 방치됐지만, 200여 재일동포들은 이곳에서 60여 년 간 모진 삶을 이어왔다.
9년째 오로지 한 작품을 위해 이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영화감독이 있다. 1999년 8월부터 우토로 마을을 담은 영화 <아름다운 게토>를 제작 중인 김재범(42) 감독 얘기다. 남의 손을 빌어 제작비를 충당하는 것도 모자라 자비를 털다 못해 빚까지 졌다.
우토로는 한동안 주인 없는 땅으로 버려져 있었다. 조선인들은 비가 오면 물에 잠기고, 하수도 처리가 되지 않아 쓰레기더미 같았던 이곳을 자신들의 땅 인양 손수 갈고 닦았다. 하지만 우토로의 토지소유권이 닛산자동차계열에서 민간인을 거쳐 서일본식산으로 전매됐고, 서일본식산은 1988년 우토로 조선인에게 강제 퇴거 명령을 내렸다. 주민들이 졸지에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재판에 기대를 걸었지만, 결과는 ‘패소’였다. 그 뒤 우토로 주민들은 10년 넘게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2005년부터 국내에서 ‘우토로 돕기’ 캠페인이 벌어졌고, 지난해 국회는 30억원 지원 결정을 내렸다. 우토로 주민으로서는 다행이다. 현재까지 이 지원금이 건너가지 않았지만, 이 돈만 있으면 우토로 전체 토지의 절반가량인 1만500여㎡(3200평)의 매입이 가능해져 강제퇴거도 막을 수 있다.
김 감독은 우토로의 이러한 역사를 알면서도, 역설적으로 영화의 제목을 <아름다운 게토>로 지었다. ‘게토’는 중세 이후 유럽의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 지역을 말한다. 영화에는 일본에 강제 징집된 1세대 노동자부터 2·3·4세대들의 각기 다른 삶과 처지, 우토로 주민들을 돕는 일본인과 한국인, 그리고 이들이 서일본식산을 상대로 투쟁하던 과정, 국내외 시민사회단체와 한국 정부의 도움을 얻기까지의 과정 등이 담겼다.
김 감독은 1993년 <피디수첩>을 통해 우토로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하지만 정작 첫 촬영은 99년에야 시작됐다. 대신 김 감독은 많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의욕적으로 우토로 작업에 달려들었다가 포기한 데 반해 끝까지 우토로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우토로가 철거되어도 정부가 이처럼 무관심할까’ 뭐 이런 것들요.”
‘포기할까’ 하는 유혹에도 잠시 빠졌었다. “첫째, 마누라 바가지 긁을 때. 둘째, 영화판 일을 하면서도 돈이 벌고 싶을 때.” 등이다. 생계는 서울 대학로에서 주점(<아 몹쓸 그립은 사람아>)을 운영하는 부인의 몫이다. 가끔은 잔소리를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큰 재정적·정신적 후원자는 부인이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1만~2만명, 대박이 터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싶을 때가 있긴 하죠. 그렇지만 이번에도 잘 안 될 것 않네요.(웃음) <우리학교>처럼 대중적이거나 오밀조밀 재밌지는 않아요. 우토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아름다운 게토> 빠르면 8월, 늦어도 9월 일반인에 공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영화에 빠져…다큐 영화 계속할 것
<아름다운 게토>는 7월 말 마지막 촬영을 마쳤다. 후반작업을 거쳐 빠르면 8월15일 전후, 늦어도 9월 중에는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극장 스크린보다는 독립영화 전용관이나 나눔의집, 일본 우토로 마을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11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0주년 때도 상영 계획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 이어진 작업임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다 보니, 때를 잡아 촬영을 한 게 전부 여름철이고, 영화 촬영한답시고 주민들에게 민폐도 많이 끼쳤다. 아쉬운 대목이다.
김 감독은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우연히 접한 8㎜ 영화 워크숍을 계기로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정국 감독의 <두 여자 이야기>(1993년 작)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했지만, 상업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 극영화 시나리오를 몇 편 끼적여 보기도 했지만 그쪽 방면에는 재능도, 흥미도 없었다다고 한다.
감독 데뷔작은 조선인에서 일본인으로, 해방 뒤에는 인도네시아 인으로 살아간 고 허영 감독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97년)이다. 그 해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창기 아시아 영화 특별전’에 상영됐고, 일본 국제기금 특별전과 인도 뭄바이 단편·다큐멘터리 영화제, 일본 야마가타 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98년에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고 이태영 박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2000년에는 인권변호사로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던 고 조영래 변호사의 10주기 추모영화 <진실의 불꽃>을 만들었다.
“경력에 비해 작품수가 적죠? 한번 마음에 둔 작품이 있으면, 그 작품이 끝날 때까지 다른 작품을 손대지 않는 제 성격 때문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 겁니다.”
<아름다운 게토> 마무리 뒤 고 허영 감독 후속작업 진행할 계획
<아름다운 게토>가 끝나는 대로, 그는 허영 감독에 대한 후속작업에 들어간다. 일제 강점기 군국주의 영화를 만들어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던 매국노이면서도, 인도네시아에서는 독립영웅으로 추앙받았던 허영 감독의 ‘이중적’인 삶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는 일본과 인도네시아에서 낳은 두 딸 속에 남아 있는 허영 감독의 발자취를 찾는 과정을 담을 생각이다.
현재진행형인 제작과정을 보고 싶다면, 다음 카페에서 ‘아름다운 게토(http://cafe.daum.net/beautifulghetto)’를 치면 된다.
후원계좌 : 김재범(우토로다큐) 국민 / 031601-04-149182
[글·사진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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