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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60주년> ③헌법 제.개정 60년사

강산21 2008. 7. 13. 19:53

<제헌60주년> ③헌법 제.개정 60년사

기사입력 2008-07-13 09:03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기자 = 대한민국 헌법이 1948년 7월17일 초대 헌법 제정 이후 올해로 `환갑'을 맞았다.

한국 헌법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영욕의 궤를 같이 하며 현행 헌법인 87년 개헌 헌법으로 자리잡기까지 총 9차례의 변천사를 기록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18대 국회 전반기내 개헌절차 완결 구상을 밝히는 등 정치권내에서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여서, 20여년만에 `87년 헌법 체제' 극복이라는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가 현실화될 지 주목된다.

그동안 이뤄진 개헌의 대부분은 정당한 헌법 절차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기 보다는 집권세력의 초법적 전횡에 의해 이뤄지는 등 비운을 겪은 탓에 한국 헌법사는 `누더기 개헌사'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특히 5.16 쿠데타와 10월 유신의 와중에선 헌법이 1년9개월간 정지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87년 10월 9차 개헌을 통해 태어난 현행 헌법은 6.10 민주화 운동의 산물로, 현재까지 21년째 이어오며 헌법 역사상 최장수 기록을 세우고 있다.

6.10 민주화 운동을 통해 분출된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겠다'는 국민들의 강렬한 열망과 광범위한 반(反)독재투쟁에 밀려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 합의에 의한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민주 헌법'이 탄생된 것.

이는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의 6년 단임안과 야권 후보 단일화를 염두에 둔 통일민주당의 4년 중임제를 절충해 마련된 것이었다.

당시 후보로 거론되던 `1노(노태우) 2김(김대중.김영삼)'이 모두 `완벽한 승리'를 자신하지 못한 데 따른 타협안의 성격이 짙었다. 한번 패하더라도 권토중래가 가능한 성격이 가미된 다소 기형적 제도라는 게 헌법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후 현행 헌법에 따라 87년, 92년, 97년, 2002, 2007년에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 선거가 총 5번 치러졌다.

개정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천부인권으로 규정하고 인권침해를 구제하기 위한 헌법소원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를 두는 등 인권보장 측면에서는 거의 완벽한 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국회의원 4년 임기제와 맞지 않는 바람에 선거가 줄줄이 계속되면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물론 권력구조 측면에서는 대통령 임기말 조기 레임덕 등 부작용이 많다는 문제의식이 6공 출범 직후부터 제기돼 왔다.

특히 정치 민주화의 정착과 함께 경제 규모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21세기 정보화 시대가 두드러진 현재까지 군부독재 종식을 위해 정치권의 타협에 의해 마련된 `낡은 외투'를 그대로 입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란 지적이 나왔다.

시대적 변화 흐름에도 불구하고 헌법이 `고인 물'처럼 정체되면서 헌법 존립의 대전제인 시대정신을 적절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 등 역대 정권에서 줄기차게 개헌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개헌의 핵심 추동력이라 할 수 있는 현직 대통령의 힘이 급속히 하강하는 대선을 앞둔 시점에 제기되면서 `정국 교란용'이란 야당의 반발에 직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던 게 저간의 사정이다.

87년 이전의 개헌은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에 두 차례, 4.19 혁명 후 출범한 제 2공화국 때 두 차례,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세 차례씩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5공 헌법이 존재했었다.

첫 헌법 개정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재집권을 위해 마련된 52년 발췌개헌을 통해 이뤄졌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계엄령을 선포하고 일부 국회의원을 감금한 상태에서 정.부통령을 직선으로 뽑고, 단원제 국회를 양원제로 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6.25 종전 이듬해인 54년 이 전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위해 대통령 연임제 제한을 없애는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을 관철시켰다.

이 대통령 실각 후 4.19 혁명의 열기속에 출범한 제2공화국은 60년 6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내각 책임제 도입과 3.15 부정선거 관련자 및 친일파 처벌을 위한 특별 재판부 설치 근거를 위한 개헌을 단행했다.

다음 개헌은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주도됐다. 62년 12월 대통령 중심제와 국회 단원제로 환원하는 5차 개헌을 강행한 것인데, 공화당 정권 수립을 가져온 이 개헌은 국회가 해산된 상태에서 사상 처음 국민투표에 의해 이뤄졌다.

69년 10월에는 박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해 대통령 3선을 허용하는 이른바 `3선 개헌'이 새벽 날치기로 통과됐다. 이 헌법 하에서 치러진 71년 대선에서 선출된 박 전 대통령은 72년 10월 7차 개헌을 통해 아예 대통령 직선제를 삭제한 이른바 `유신헌법'을 제정했다.

국회해산, 정당활동 금지 등 비상계엄하에서 국민투표로 통과된 유신헌법은 대통령이 임명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간선으로 뽑도록 해 `체육관 선거'로 악명을 떨쳤다.

박 전 대통령 유고 후 10.26사태와 12.12쿠데타 등을 거쳐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80년 10월 대통령 간선제는 유지하면서 임기 7년의 대통령 단임제 도입을 골자로 한 8차 개헌을 단행했으나 민주화의 열기에 밀려 5년 대통령 단임제 헌법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말인 지난해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 개헌론에 불을 지폈으나 한나라당 등의 반발로 `18대 국회 초반 논의에 착수한다'는 정치권 합의만 남긴 채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18대 국회에서의 10번째 개헌은 이런 배경을 안고 무르익고 있는 셈이다.

hanks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