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현안

촛불집회 참석 중고생 333명 최초 면접조사

강산21 2008. 6. 27. 14:13

10대는 ‘이명박 정부 향한 분노’ 때문에 촛불을 켰다

<한겨레21>과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 촛불집회 참석한 중고생 333명 최초 면접조사

▣ 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촛불집회 10대 참가자 면접조사]

2008년 태초의 촛불은 그들이 들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10대의 촛불에서 시작됐다. 10대의 촛불은 20대, 30대, 40대로 세대를 넘어선 촛불에 불길을 댕겼다. 그리고 촛불은 40일 넘도록 꺼지지 않고 있고, 최초의 발화자이자 촛불의 주체인 10대의 참여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2008년 촛불의 광장은 ‘촛불 세대’를 낳았다.

 


△ 2008 촛불집회에 나온 다양한 10대의 모습. 그들은 촛불의 선구자였다.

 

‘광우병 이후에도’ 촛불 계속되야 67%

촛불이 이어지는 동안 10대들의 생각은 늘 궁금증의 대상이었고 단편적인 인터뷰 등을 통해 그 일단을 들여다보려는 언론의 시도가 이어졌다. <한겨레21>은 한발 나아가 이들을 대상으로 최초의 체계적 면접조사를 벌였다.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소장 박길성 사회학과 교수) 갈등연구센터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는 6월1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여한 중고생 333명(중학생 33.8%, 고등학생 66.2%)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번 조사연구의 책임을 맡은 김철규 갈등연구센터장(사회학과 교수)은 “촛불집회를 촉발한 10대 참여자의 특성과 의식에 대한 객관적인 측면들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촛불 소녀(여학생 70.6%)와 소년(남학생 29.4%)에게 43개 항목에 걸쳐 물었다. 그대는 왜 촛불을 켜셨나요?

 

먼저 이들은 무엇 때문에 촛불을 들게 되었나. ‘처음 촛불집회에 나오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6.1%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라고 응답한 비율(14.0%)을 훨씬 상회했다. 갈등연구센터는 “적어도 조사 시점인 6월14일에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촛불집회 참여 계기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 밖의 응답으로 ‘TV, 신문 등 매체의 정보를 접하고’(13.7%), ‘온라인 (집회) 생중계를 보고’(4.0%) 등이 나왔는데, 이러한 대답은 광우병 문제와 관련돼 있다. 따라서 이들은 광우병 등 복수의 원인이 결합돼 촛불을 든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앞으로의 촛불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조사에 응한 10대는 쇠고기 문제 해결 뒤에도 촛불은 꺼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촛불을 들게 된 이유가 광우병 하나가 아니라고 응답한 것과 맥락이 닿는 결과다. ‘만약 쇠고기 협상이 타결될 경우, 다른 현안에 대해 촛불집회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67.0%가 ‘예’라고 응답했다. 그래서 ‘쇠고기 협상 관련 집회가 끝난 이후, 다른 이슈에 대한 집회가 있다면 어느 정도 참여하겠느냐’라는 질문에도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보였다. 교육 문제(0교시 수업, 영어몰입 교육 등) 67.8%, 한반도 대운하 62.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61.7%, 공기업 민영화 60.8% 순서로 집회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절반을 훌쩍 넘었다(그래프1 참고). 10대 사이에서도 촛불의 의미가 쇠고기 이상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재협상 안되면 대통령 퇴진!” 70.8%


쇠고기 재협상에 대한 태도도 단호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추가 협상 또는 재협상이 이뤄진다면, 최소한 어느 정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절반을 넘어선 57.5%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또는 20개월 미만 살코기만 수입’이라고 응답했다. 제시된 4개 선택지 중에 가장 강력한 조처를 가장 많이 지지한 것이다. 반면 정부의 협상안인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막는 민간 자율규제와 한-미 양국 정부 보증’은 8.6%에 그쳤다(그래프2 참고). 요컨대 정부의 안으로 미국과 협상이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집회에 참여한 10대는 쇠고기 협상을 정권의 존속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쇠고기 재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명박 대통령 퇴진운동을 해야 한다’는 질문에 70.8%가 동의한다고 응답했다(그래프3 참고). 이처럼 촛불 소년·소녀의 의지는 명확하고 강경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촛불 소녀와 소년은 누굴까? 이들은 성적에 대한 걱정이 많고, 장래 진로에 대해 관심이 많은 평범한 학생으로 보인다. ‘평소(촛불집회 이전) 자신이 어떻다고 생각하는지, 또래 친구와 비교해 말해달라’는 질문에 88.5%가 ‘장래 진로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 75.8%가 ‘학교 성적에 대한 관심’도 높은 편이라고 응답했다. 또 평소 자신의 건강(67.7%)과 먹을거리 안전(67.4%), 사회 현실(70.7%)에 대한 관심도 또래에 견줘 높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친구관계, 가정생활, 학교생활 등에 대한 만족도도 50%를 넘을 만큼 긍정적인 성격의 집단으로 나타났다. 다만 대한민국(만족도 31.1%)이나 사회 현실(만족도 10.2%)에 대해선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표1 참고). 현재 우리 사회 소득분배에 대해서도 ‘매우 불공평하다’(26.1%), ‘약간 불공평하다’(38.7%)고 응답해 다수가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평소 ‘각종 사회적 집회 참여 활동’ 경험에 대해선 53.9%가 ‘거의 없다’고 응답해 촛불집회를 통해 첫 사회 참여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 조사로 학교 성적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최상위 8.8%, 상위 17.8%, 중상 39.9%, 중간 21.1%, 중하 9.7%, 하 2.7%로 응답했다. 주관적 응답이긴 하지만, 이들을 성적과 계층이 떨어지는 학생들로 몰고 가는 일부의 견해와 상반된 결과를 보여준다.

 

10대는 누구와 함께 촛불집회에 나오고 거리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이들의 ‘배후’는 386세대 부모도, 전교조 교사도 아닌 ‘친구’였다. 지금까지 집회에 같이 참여한 사람으로 학교 친구(74.8%)가 압도적 다수로 꼽혔다. 온라인 커뮤니티(9.1%), 학교 외 동아리(4.7%) 회원과 같이 나왔다는 사람은 예상보다 적었다. 또래 집단의 강력한 영향력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데 가장 영향을 끼친 대표적 사람’을 묻는 질문에서도 드러났다. 51.7%가 ‘학교 친구’라고 응답한 것이다.

 

한편 집회에 계속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 ‘시민의 의무로 생각하기에’가 58.0%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집회 문화, 놀이 등 새로운 체험’(8.2%), ‘재미있어서’(2.6%) 등은 소수로 나타나, 이들의 진지한 태도를 보여줬다. 여기에 주관식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대딩’들의 놀자판 분위기와 MT 분위기”를 비판하는 학생도 있었다. 또 촛불시위 도중 불만 사항으로 “10대들이 재미로 참여하는 걸로 오해하는 게 기분 나쁘다” “밤샘 시위 때 어리다는 이유로 집에 가라고 종용할 때” 등을 꼽기도 했다.

 

66.5% “성적은 중상 이상”

집회 현장에서 이들의 참여 범위는 어떨까. ‘보통 촛불집회에 나와서 어떤 활동에 참여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거리행진’(45.7%), ‘연단행사와 거리행진’(23.5%), ‘연단행사’(17.5%) 순으로 응답했다. 거리행진에 참여하는 비율이 70%가량에 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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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성년인 10대로서 촛불집회 현장에서 느끼는 불만은 없을까? 촛불집회가 민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견해는 70.2%, 자신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고 있다는 응답은 60.6%로 비교적 만족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촛불집회가 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에 83.7%가 동의했다. 요컨대 이들은 촛불집회에 시민적 의무로 계속 참여하고 민주주의 발전 기여에 긍지를 느끼고 있다.

 

다만 ‘촛불집회가 처음보다 순수하지 못하다’는 지적에 36.3%가 ‘동의’해 ‘동의하지 않음’(29.7%)보다 약간 높았다. 청와대 행진에 대해서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47.1%로 많았다. 이러한 결과는 비폭력에 대한 강조와 맥락이 닿는다. ‘촛불집회는 비폭력적으로 진행돼야 한다’에 압도적 다수인 90.6%가 동의했다. 한편으로 폭력 유발자는 공권력이란 공감대도 뚜렷하다. ‘경찰의 과잉 진압이 폭력 발생의 원인’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72.8%에 이르렀다. 이렇게 비폭력은 촛불 세대의 감수성으로 자리잡았(그래프3 참고).

 

이렇게 비폭력 저항의 거리에서 이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래서 촛불집회 참여 뒤 변화를 물었다. 정부(80.2%), 미국(69.6%)에 대해 더 비판적 태도를 가지게 됐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반면 ‘애국심이 커졌다’(79.9%), ‘민주적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79.8%)고 응답한 비율도 높았다(표2 참고). 권력에 대한 비판적 태도의 이면에 국가에 대한 긍정적 정체성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김철규 센터장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애국심은 위로부터 시작된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며 “촛불집회는 전혀 다른 풀뿌리 결사체적 방식으로 중고생들의 애국심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이해진 박사도 “촛불집회 참여는 개인화돼 경쟁과 학업에 묻혀 있던 중고생들에게 사회적 쟁점에 대해 성찰하는 시민의식과 참여민주주의를 배우는 학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촛불 든 후 61% “자기 만족도 높아져”

한편 촛불집회 참여 이후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응답도 61.0%에 이르렀다. 이렇게 사회적 차원뿐 아니라 개인적 경험에서도 촛불집회는 긍정적 기억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철규 센터장은 “촛불집회 참여 학생들이 광우병 의제에 대해서 학습도 하고 고민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형성된 사회적 태도와 정치적 지향이 성인이 된 뒤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주목된다”고 말했다.

 

촛불 세대의 마음을 정리하면 이렇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분노에서 촛불을 들었고, 쇠고기 재협상에 대해 원칙적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촛불은 쇠고기 문제 이후에도 꺼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보수신문이 묘사하듯 성적과 계층이 낮은 특정한 집단의 청소년이 아니라 자신의 내일을 걱정하고 사회를 생각하는 평범한 아이들이다. 이들에게 집회는 학교였다. 이들은 촛불집회를 통해 애국심과 시민의식을 키우게 되었고, 정권과 미국에 대해 비판적 태도가 강해졌으며, 자신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교육받는 대상에서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나선 10대의 가슴에 촛불의 기억은 오랫동안 지우기 힘든 화인으로 남을 것이다. 10대의 민감한 손으로 들었던 촛불은 사회 참여의 첫 경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촛불은 꺼져도 기억은 남는다.

 


아고라·문화방송·한겨레·경향 vs 조·중·동

어느 매체 통해 정보 얻나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촛불집회를 계기로 확산된 ‘안티 조·중·동’ 흐름이 명확히 나타났다. ‘각 매체가 촛불집회와 관련해 10대의 의견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문화방송과 더불어 <한겨레> <한겨레21> <경향신문> 등이 ‘잘 반영하고 있다’는 긍정적 답변을 다수 얻은 반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대해서는 ‘반영하지 못한다’는 부정적 견해가 많았다(표2 참고). 10대 의견 반영도에서 가장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것은 ‘다음 아고라’였다. 촛불집회로 변화한 미디어 환경이 드러난 것이다.

조사에 응한 10대가 평소에 뉴스를 알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매체는 인터넷(57.2%), TV방송(33.9%), 종이신문(7.0%) 등의 순서였다. 촛불집회 관련 정보를 얻거나 의사소통을 하는 매체로는 인터넷 신문이 42.9%로 가장 높았고, 인터넷 토론장이 25.8%로 뒤를 이었다. 광우병이 위험하다는 확신을 준 매체는 문화방송 〈PD수첩〉(20.8%)으로 나타났다.

광우병 정보는 먹을거리와 관련한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광우병 위험을 인지한 뒤의 행동양식 변화를 물었는데, ‘쇠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매우 그렇다 37.5%),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고 있다’(〃 48.2%) 등으로 응답했다. 미래에 어떤 먹을거리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결심도 뚜렷한데 ‘앞으로 월령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더라도 먹지 않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매우 그렇다’와 ‘대체로 그렇다’를 합쳐서 82.6%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