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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들의 '둔갑술' 소비자는 속수무책

강산21 2008. 6. 18. 15:28

소들의 '둔갑술' 소비자는 속수무책

기사입력 2008-06-18 04:06 |최종수정2008-06-18 11:00 


미국産이 버젓이 호주産으로

'홈에버 사건'으로 본 쇠고기 유통문제점

대형 할인점마저 '둔갑 판매' 충격

실제 단속인력은 112명뿐… 역부족

유통업체 등 처벌규정 대폭 강화해야


일요일인 지난 15일 오후 2시, 대형 할인점인 '홈에버' 인천 구월점 지하 2층 양념육 매장에 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의 원산지 단속팀 2명이 들이닥쳤다. "미국산 쇠고기호주산으로 속여 양념해 팔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온 것이다. 매장에는 '호주산 양념 소 살치살 구이 100g에 2118원'이라고 써 붙여진 3㎏ 가량의 양념육이 진열돼 있었다. 점원은 추궁하는 단속팀에게 '미국산'이라고 털어놓았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불안'이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발생한 '홈에버 사건'이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유명 대형 할인점에서 발생했고, 제보에 의해 적발된 점을 감안하면 지금도 곳곳에서 '둔갑 쇠고기'가 팔리고 있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또한, 앞으로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이 타결돼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더라도 당분간은 소비자들이 기피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음식점이나 정육점 등에서 원산지를 속이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책임지지 않는 유통구조

홈에버 매장에 급파된 농관원 단속팀은 양념육 매장의 냉동 쇠고기 보관 창고에 들어가 박스 포장되어 있는 미국산 쇠고기 54㎏을 추가로 발견했다. 단속팀은 점원에게 수출국과 통관일이 적혀 있는 수입원장 복사본과 거래명세서를 요구했다. 확인 결과, 2007년 9월 28일 부산항으로 들어와 나흘 뒤인 10월 2일 국내 유통이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30개월 미만 살코기)였다.


단속팀은 "수입업체에서 홈에버 매장에 오기까지 중간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유통업체를 거쳤는지 아직은 파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쇠고기는 지난해 10월 4일 미국산 쇠고기에서 등뼈가 발견돼 검역이 전면 중단되기 이틀 전에 들어온 것이었다. 유통기한은 2008년 7월 21일. 한 달 정도 남은 상태였다. 매장 직원은 "지난 5월부터는 미국산이라고 표시하면 팔리지도 않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단속팀은 밝혔다.

홈에버는 입점 업체의 책임으로 돌렸다. 홈에버 관계자는 "수수료를 내고 매대를 임차한 S사가 우리와 맺은 계약을 어기고 밤에 양념육을 만들었고, 원산지 표시를 멋대로 했다"고 말했다. 호주산으로 둔갑한 양념육은 토·일 이틀 동안 3명에게 2.6㎏이 이미 팔렸다.

농관원은 S사 지점장 E모(28)씨를 형사 입건하고, 홈에버가 사전에 둔갑 판매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산물품질관리법 17조는 원산지 허위 판매자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농관원 관계자는 "현행 법규상 홈에버가 S사와 공모하지 않았다면,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고 밝혔다.

◆허술한 표시제, 부족한 단속

미국산 쇠고기 거부감이 팽배해 있는 요즘, 소비자가 즐겨 찾는 대형할인점에서 둔갑 판매가 적발됐는데도 정부는 한가한 분위기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홈에버의 경우 예외적인 특별한 경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이 문제가 아니라, 영세한 음식점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농관원은 지난 2~15일 정육점 원산지 표시 집중 단속을 벌였다. 2주일 동안 1300명을 동원해 전국 4만개 정육점 중 4.5%인 1819개 업소를 점검한 결과, 홈에버 정육매장을 포함한 15곳을 원산지 허위표시로, 10곳을 미(未)표시로 적발했다고 농관원은 밝혔다. 1300명을 동원한 집중 단속치곤 점검업소가 너무 적다. 농관원 관계자는 "실제 농관원 내 단속팀 인력은 112명뿐이기 때문에 나머지 인원은 홍보 활동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백화점·할인점 처벌규정 만들어야

입점업체뿐 아니라 할인점이나 백화점에도 책임을 묻는 등 처벌 규정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들이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을 찾는 이유는 입점업체들이 상품을 속이지 못하게끔 관리를 잘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점업체 관리를 못한 유통업체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사람들은 백화점이나 할인점 브랜드를 보고 믿고 사는데, 정작 식품사고가 나면 큰 업체는 임차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게 관행"이라며 "할인점 등에 대한 관련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