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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가려운 곳 ‘긁어주기’…검찰의 과거 퇴행

강산21 2008. 6. 18. 15:31

청와대 가려운 곳 ‘긁어주기’…검찰의 과거 퇴행

기사입력 2008-06-18 10:07 
 
[한겨레] 대통령과 만찬 약속…비난 쏟아지자 “연기”

한나라 뉴타운 허위공약 수사는 두달째 감감


사정기관의 수사권 등이 청와대의 수족처럼 쓰이고 있다. 한국방송 사장 교체, 공기업 민영화, 광우병 파동 등 사회·정치적으로 중요한 국면마다 청와대의 가려운 곳을 대신 긁어주고 있는 모양새다.

국세청과의 세금소송 과정에서 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고발된 정연주(62) 한국방송 사장에 대한 검찰의 ‘초고속’ 소환조사 방침은 그동안 지적돼 온 사정기관의 ‘과거 회귀’ 행태에 또하나의 사례를 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 사장의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수사 방식이 일반적인 절차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상 기관장이 고발될 경우 검찰은 업무 담당자와 관련 자료를 조사한 뒤 사건을 처리하며, 기관장 소환에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기관장들은 민원인들에 의해 이런저런 이유로 고발당하는 일이 많으며, 그때마다 경중을 가리지 않고 소환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달 14일 한국방송 전직 간부의 고발이 들어오자 실무자 2명을 두세 차례 조사한 뒤 불과 한달 만에 정 사장을 소환하기로 했다. 정 사장이 출석을 요구받은 17일 나오지 않자, 검찰 관계자는 “사실관계에 다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나와서 해명하면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정 사장 사퇴 발언이 있은 뒤 나온 소환 방침은 감사원·국세청의 전방위 압박과 맞물려 ‘표적 소환’ 논란을 키우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11일부터 한국방송에 대한 특별감사에 들어갔고, 서울지방국세청은 성실납세자로 표창까지 받은 한국방송 외주제작업체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런 탓에 검찰의 정 사장 소환이 정 사장에 대한 퇴진 여론을 조성하고 정 사장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망신 주기성 소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 사장 변호인단을 꾸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백승헌)은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른 수사를 요청한다”며 “혐의가 인정되면 깨끗하게 밝히겠지만, 정치적 의도를 깔고 무리하게 수사를 강행한다면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을 필두로 한 사정기관들의 ‘손발 맞추기’는 검찰과 감사원의 공기업 비리 수사·감사에서도 나타났다. 주로 ‘사장 물갈이’ 대상 공공기관과 민영화 대상 공기업이 표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허위공약으로 고발된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검찰 수사는 고발 두 달이 가까워지도록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전국검사장회의 뒤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만찬 회동을 잡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취하다 비판 여론 등을 의식해 최근 무기한 연기했다. 참여연대는 “어렵게 쌓아온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통상적인 수사일 뿐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말하지만, 내부에서도 “시기가 지나치게 공교롭고 수사 방식 역시 거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 정치권에서 해결해야 할 일을 검찰이 나서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남일 고제규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