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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가 쓸고간 청계광장, 촛불 '초토화'

강산21 2008. 6. 14. 12:19

보수단체가 쓸고간 청계광장, 촛불 '초토화'

뻔히 보면서 방치한 경찰...비난 여론 거세

차성은 기자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에 의해 완전히 부셔진 촛불 천막
ⓒ 민중의소리

13일 오후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던 시민들을 폭행하고 관련 물품들을 모두 부수는 사태가 발생해 물의를 빚고 있다.

사건은 고엽제전우회,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역광장에서 반촛불집회 성격의 ‘국정 흔들기 중단촉구 국민대회’를 마치고, 행진해 청계광장에 도착하면서 발생했다.

오후 5시경 청계광장에 도착한 보수단체 회원 7천여명(경찰추산)은 소라탑 주위에서 한미쇠고기 재협상 촉구 서명운동을 하고 있던 시민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폭행했고, 서명운동 탁자와 선전물 등을 모두 부쉈다. 또 촛불 시민농성단이 사용하는 천막도 완전히 망가뜨렸다.

서명운동을 하던 중 피해를 당한 조준규(31세)씨는 “오후 5시경 군복을 입은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려오더니 설마 했는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면서 “4~5명이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데 보수단체 회원 수십여명이 주변에 있던 선전물, 전시물 40~50여점, 서명판을 다 부숴버렸고 우리를 둘러싼 채 폭행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조씨는 “우리가 겨우 도망을 나와 농성 천막에 돌아와 보니 이미 천막도 박살이 나 있었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에 의해 완전히 부셔진 재협상 촉구 선전물들
ⓒ 민중의소리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에 의해 완전히 부셔진 재협상 촉구 선전물들
ⓒ 민중의소리

오후 6시경까지 부숴진 천막 주위에서는 마찰이 계속되고 있었다. ‘고엽제전우회’가 선명하게 찍힌 군복을 입은 이들은 “천막 안에 김정일 사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북한이 좋으면 북한으로 가, 이00야”라며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고엽제전우회 부녀회 조끼를 입은 50대 여성은 이날이 장갑차 여중생을 추모하는 날인 데 대해 “효순이 미선이가 뭐 그리 중요하냐, 가시나 둘이 죽은 게 뭐 그리 중요하냐”며 촛불을 끄라고 소리를 질렀다.

천막에 있었던 이동석(30세)씨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욕설을 하기에 치워서 싸가지고 가겠다고 했는데도 다 부숴버렸다”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목격자들은 “군복을 입은 이들 중 몇 명이 ‘천막에서 김정일 사진이 나왔다’, ‘김일성 동상이 나왔다’며 사람들을 부추겼고 이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순식간에 천막을 부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왔다는 김정일 사진, 김일성 동상은 어디에도 없었고 이를 봤다는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목격자들은 “경찰이 뻔히 알면서도 보수단체 회원들의 폭행과 파괴행위를 방치했다”며 “밥값도 못하는 경찰”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천막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모씨는 “경찰이 우리가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다가 다 정리가 되자 그때서야 전경 20여명을 투입해 우리를 동아일보사 앞으로 끌어냈다”며 경찰의 태도에 불만을 토로했다.

청계광장 소라탑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서경석 목사 일행(가운데가 서경석 목사)
ⓒ 민중의소리

"서경석 목사님, 목사로서 당신이 부끄럽습니다"
ⓒ 민중의소리

소라탑 주위에서는 촛불 찬반론자들의 마찰이 계속됐다.

반북단체 활동을 하는 서경석 목사 등 10여명은 보수단체들이 부순 재협상 서명 탁자가 있던 자리에서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몇몇 시민들이 이들에게 항의했지만 주위에 남아있던 고엽제전우회원 등 보수단체 회원들에 둘러싸여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해야 했다. 서경석 목사 일행은 마찰을 일으키려는 듯 마이크로 발언을 계속했고, 마찰이 심해지자 그때서야 경찰은 전경과 경찰관들을 투입해 양측을 분리시켰다.

서경석 목사 일행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김종환 목사 등 3명의 목사는 ‘서경석 목사님, 목사로서 당신이 부끄럽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이들을 비판했다. 김종환 목사는 “서경석 목사와 김진홍 목사가 이명박 대통령의 귀를 막고 있다. 같은 목사로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권력과 야합하지 않는 목사들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피켓을 들고 있다가 보수단체 회원들로부터 얼굴, 무릎, 배 등을 폭행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오후 4시경 7천여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은 ‘미친 방송 KBS, 더러운 방송 MBC’, ‘정권타도 획책하는 반미세력 타도하자’, ‘촛불시위 부추기는 정치권은 각성하라’, ‘광우병괴담 만든 년놈, 광우병 걸려 죽는다’, ‘반미세력들이 촛불에 편승해 한몫 잡겠다고?’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서울역에서 청계광장까지 행진을 했다.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은 ‘고엽제 환자구급대’ 차량 120여대를 이용해 청계광장까지 차량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차량에 설치된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며 오후 6시까지 청계광장 주위를 계속 돌아다녀 시민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행진중인 고엽제전우회 회원 등 보수단체 회원들
ⓒ 민중의소리

'광우병괴담 만든 년놈, 광우별 걸려 죽는다'
ⓒ 민중의소리

길게 늘어서 사이렌과 경광등을 켠 채 차량시위 중인 고엽제전우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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