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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회 교수·변호사 “쇠고기 고시 위헌”

강산21 2008. 6. 14. 11:53
헌법학회 교수·변호사 “쇠고기 고시 위헌”
설문 응답 70명 중 48명 밝혀
“위임입법 한계 벗어나…검역주권 기본권 침해”
한겨레  고제규 기자 김지은 기자
»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3일 오전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쇠고기 ‘추가 협상’을 하려고 인천공항 출국장을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교수나 변호사 등 헌법 전공자의 대다수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관보 게재(쇠고기 장관 고시)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위헌이라고 지적한 내용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통해 시민 10만여명이 낸 헌법소원 심판 청구 취지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한겨레>가 지난 11~12일 한국헌법학회 회원 251명을 상대로 쇠고기 장관 고시의 위헌성 여부를 전자우편과 전화를 통해 물은 결과, 설문에 응한 70명 중 48명(68.6%)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답했다. ‘위헌 소지가 없다’는 의견을 낸 전문가는 4명(5.7%)에 그쳤다. 나머지 18명은 고시 내용을 정확히 몰라 답하기 곤란하거나, 위헌 의견에 공감하지만 공무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답변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위헌 의견을 낸 48명에게 복수 응답이 가능한 질문으로 이유를 물었더니, 45명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문제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데도 법령이나 부령을 통하지 않고 고시로 넘겨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 헌법에 어긋난다’고 답했다. 이헌환 아주대 교수(법학)는 “이번 쇠고기 장관고시에는 국민의 건강과 관련된 중대 사항이 포함돼 있어 최소한 고시보다 상위규범으로 법제처 심사를 거치는 부령에 담아야 한다”며 “형식이 그릇됐으므로 당연히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이석연 법제처장도 “쇠고기 합의 사항은 법으로 규정해야 하는데 장관 고시로 정해 헌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응답자들 대다수가 장관 고시의 형식적 결함을 지적한 데 이어, ‘최소한의 통제장치도 없이 국민을 광우병 위험에 놓이게 해 생명권 등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25명)거나 ‘검역주권을 포기해 국민주권이 침해당했다’(9명)는 등 내용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았다. 김승환 전북대 교수(법학)는 “2006년 고시에 비해 크게 후퇴한 이번 한-미 쇠고기 협정은 수입 쇠고기에 대한 검역주권을 행사할 여지를 없애 버렸다”며 “이는 주권의 ‘제약’도 아닌 ‘박탈’로, 원천적으로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법학)도 “국민의 건강권 내지 보건권의 침해 가능성이 높아 위헌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합헌 의견을 낸 4명은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입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3명)라거나, ‘헌법소원 청구자들에 대해 직접적이고 현재적인 권리침해가 있다고 볼 수 없어 각하해야 한다’(1명)는 의견을 냈다. 임종훈 홍익대 교수(법학)는 “과학적 입증도 안 된 상태에서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며 “이런 논리라면 유전자변형 농산물 수입도 위헌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한 법학과 교수는 “청구인들의 기본권에 대한 현재적이고 직접적인 침해가 있어야 하는데, 장관 고시로 당장 기본권이 침해된다는 게 입증이 쉽지 않아 (헌법소원은) 각하되는 게 맞다”고 답변했다.

 

한국헌법학회는 헌법 전공 교수, 변호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연구관, 국회의원 등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이 다양한 회원 300여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고제규 김지은 기자 unj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