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현안

‘촛불’ 정국에 활활 타오른 책들…

강산21 2008. 6. 14. 11:59
‘얼굴 없는 공포…’ 두달새 1년치 판매량 넘어
‘촛불’ 정국에 활활 타오른 책들…
한겨레  김일주 기자 
» ‘얼굴 없는 공포…’ 두달새 1년치 판매량 넘어
광우병 관련 숨겨진 논란거리 담아
‘육식의 종말’ ‘도살장’ 등 관심 끌어
‘집회 생중계’ 진중권 저작도 인기
 

광우병에 얽힌 각종 논란을 추적하는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고려원북스), 미국산 육류의 위험성을 들춰낸 <도살장>(시공사), 쇠고기뿐만 아니라 미국산 곡류와 육류, 콜라 등 가공식품의 생산과 유통 문제를 광범위하게 고발하는 <독소-죽음을 부르는 만찬>(랜덤하우스코리아), 광우병 쇠고기나 육류 처리·유통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육식 자체를 문제 삼는 <육식의 종말>(시공사)과 <죽음의 밥상>(산책자) 등.

 

‘쇠고기 정국’을 맞아 최근 두 달 동안 특별한 관심을 받은 책들이다. 시기를 잘 타고나 출간되자마자 주목받은 <도살장> <독소> <죽음의 밥상> 같은 책도 있지만 5~10년 전에 출간돼 먼지 속에 묻혀 있다가 새롭게 주목받은 책들도 있다.

 

지난해 출간된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는 최근 두 달 동안 지난 1년간 판매된 것보다 더 많은 양이 팔리면서 사회과학 서적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얼굴 없는…>은 미국의 생화학자인 콤 켈러허가 2003년 미국 내 광우병 발병을 계기로 광우병과 관련된 숨겨진 논란거리들을 추적하고 밝힌 책이다. 책에는 “유전적으로 전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8~13%는 인간광우병일 수 있다” “미국산 광우, 살코기도 안전하지 않다” 등 얼마 전까지 광우병 쇠고기 관련 논란의 중심이 됐던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2002년 출간된 <육식의 종말>은 미국의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1993년에 쓴 책이다. 서구 문명에 나타난 육식의 역사부터 현대적인 축산 단지와 전세계 쇠고기 문화가 인간에게 미친 영향을 검토하며 “인류의 음식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는 것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우리가 이뤄내야 할 중요한 과업”이라고 주장한다. 책을 낸 시공사 유영균 기획출판팀장은 “<육식의 종말>은 애초에 스테디셀러이기도 했지만 최근 한 달 동안 평상시보다 10배 이상 주문이 늘면서 신간 수준의 주목을 받고 있다”며 “꽤 두껍고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마냥 쉬운 내용이 아닌데도 피부에 와닿는 문제가 되고 전문가들도 이 책을 자주 인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 촛불은 서점가에도 옮겨 붙고 있다. ‘쇠고기 정국’ ‘촛불 정국’을 맞아 이제까지 별다른 눈길을 끌지 못했던 책들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광우병’이나 ‘쇠고기’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도 촛불 파도를 타고 갑자기 판매량이 요동치는 책들도 있다. 진보신당 인터넷방송 <칼라 티브이>에서 촛불시위를 생중계해 수많은 누리꾼들의 지지를 얻은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의 책들이다. 무려 10년 전에 출간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개마고원)와 2002년에 출간된 <폭력과 상스러움-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푸른숲), 지난해 출간된 <호모 코레아니쿠스>(웅진지식하우스) 등이 최근 갑자기 사회과학 서적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 ‘6·10 100만 촛불대행진’이 열린 지난 10일 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태희(7·경기 평택시) 어린이가 시민들이 세워놓은 양초 가운데 불이 꺼진 초에 불길을 옮겨주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장의덕 개마고원 대표는 “사회과학 서적은 원래 이슈가 사라지면 판매가 급감하기 때문에 <네 무덤에…>는 사실상 죽은 책이었는데 5월 말부터 갑자기 주문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출판사 쪽은 ‘쇠고기 정국’을 맞아 토론이 가장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포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 지난 5월27일 어느 누리꾼이 올린 글이 판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진중권의 시위중계를 보며…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제목으로 아이디가 ‘Ingee’인 누리꾼이 올린 글에는 시위를 생중계하는 진 교수를 지지하는 내용과 함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을 보면서 진중권이 미치도록 좋아졌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 글은 현재 조회수가 27만건을 훌쩍 넘었다. 글이 화제가 된 뒤 온라인 서점을 중심으로 주문이 쏟아져 2주 남짓 사이에 1000부가 팔렸다고 한다. <폭력과 상스러움…>도 평소보다 판매가 세 배 이상 늘어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1000부가 팔렸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시위현장 이론적 설명서도 덩달아 인기

‘직접행동’ ‘비폭력’ ‘시민불복종’ 등

 

‘직접행동’ ‘비폭력’ ‘시민 불복종’.

‘촛불 정국’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열쇳말이 들어간 책들도 출간 시기와 상관없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 책들은 주로 시위 관련 논평이나 칼럼에 자주 인용되면서, 현장을 설명하는 이론적 해석의 틀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의 권위 있는 정치이론가인 에이프릴 카터가 쓴 <직접행동-21세기 민주주의 거인과 싸우다>(교양인)는 대의 민주주의 아래에서 지배 계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을 때 시민들이 각종 시위와 농성으로 정책 변화를 이끌어낸 양상을 짚어보며 “민주주의의 미래는 직접행동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평화학자 마이클 네이글러가 폭력보다 막강한 비폭력 저항운동의 위대함을 역설한 <폭력 없는 미래>(두레)도 시위 현장에서 “비폭력!”을 외치는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책이다.

 

“개인이 아니고서는 어떤 변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며 개인의 힘, 소수자의 힘, 혁명의 힘을 믿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도 21세기 촛불시위판에 넘실대는 개성과 변화의 기운을 설명하는 좋은 이론적 도구가 되고 있다. 김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