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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경찰간부, 촛불집회 강경대응 비판

강산21 2008. 6. 11. 14:37
현직 경찰간부, 촛불집회 강경대응 비판
“평화시위 위법단정 동의못해” 누리집서 주장
“주체적 판단·책임지는자세, 경찰이 나아갈 길”
한겨레  노현웅 기자
현직 경찰 간부가 평화적인 촛불시위에 대한 경찰의 강경대응과 원칙없는 집시법 적용을 비판하는 의견을 내부 통신망에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10일 경찰청 누리집인 ‘경찰가족 사랑방’에 현재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근무 중인 한 경찰관이 ‘죽림누필’이란 필명으로 ‘촛불 앞의 경찰, 어찌할 것인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평화적인 집회에 대하여 집시법 규정 위반이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위법이라고 단정하는 태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이로 인해서 집시법상의 신고제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거나, 국민이 집회에 참가하여 시위의 형태로써 공동으로 정치의사 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차단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는 그 근거로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는 헌법과 “평화적 집회 그 자체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위험이나 침해로서 평가되어서는 안 되며, 집회의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일반대중에 대한 불편함이나 법익에 대한 위험은 (중략) 국가와 제3자에 의하여 수인돼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들었다.

 

그는 예를 들어 “법치주의의 기준에 의하면 미신고 집회·시위와 야간시위는 집시법에 위반되는데, 이를 기준으로 진압하는 것이 언제나 옳은가?”라며 “국회의사당 마당에서 흔히 벌어지는,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운집하여 어깨띠를 두르고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식의 미신고 옥외 집회 및 시위에 대해 족족 해산시키거나 처벌하지 않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1960년 일본에서 시위대가 국회에 난입했을 때 ‘이런 혼란이 초래된 것은 (국민이) 총리에게 반대하기 때문’이라며 진입을 거부한 카시무라 경찰청 장관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그 일본 경찰청 장관은 직위를 잃었지만 그의 철학과 용기는 경찰이 정권의 사병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았다”며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당당하게 책임지는 경찰이 대한민국 경찰이 가야 할 길”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내부 통신망에선 이 글에 수십 건의 댓글이 달리며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 글은 이날 오후까지 800여건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52건의 추천과 15건의 비추천 의견이 올라와, 촛불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 내부의 고민을 드러냈다. 이 글에 대해 박아무개씨는 “집시법의 목적은 보장과 보호에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집회를 처벌의 대상으로 봤고, 이런 시각의 차이가 경찰 공권력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의견을 올렸다. 반면 김아무개씨는 “촛불집회는 순수성을 잃고 청와대로 몰려가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경찰과 일반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조직의 일원으로서 ‘군홧발’과 ‘촛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당연히 ‘군홧발’을 선택하겠다”고 반박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