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박지성의 발, 이명박의 입

강산21 2008. 5. 16. 10:55
박지성의 발, 이명박의 입
곽병찬칼럼
한겨레 곽병찬 기자
» 곽병찬 논설위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98∼1999 시즌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다. 그런데 이미 에프에이(FA) 컵을 놓쳤는데도 지금 맨유의 전력은 그때보다 더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의 스포츠 전문 사이트 ‘스포팅고’는 그 이유를 “호날두·박지성·긱스·스콜스·나니·안데르손·캐릭 등 미드필더진이 막강하고, 선수 구성도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맨유는 12일 2007∼2008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그날 영국 일간지 <더 선>은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은 16명을 평가하면서 박지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고의 기술은 갖고 있지 않지만, 부족한 천부적 재능을 투지로 메웠다. 이로써 그는 그라운드 곳곳을 커버했으며, 팬들이 동경하는 영웅이 되었다.” 부지런한 선수라는 평가였으니, 개인적으로는 썩 내키는 평가는 아니다. 하지만 경기 결과가 중요한 팀으로서는 이만큼 필요한 선수도 없다.

 

지난 4월 <한국방송>의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 조사에서 박지성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을 따돌리고 5위에 올랐다. 그의 성공은 천재성이 빚어낸 게 아니었다. 장삼이사의 덕목인 성실성과 겸손이 일궈낸 것이기에 더욱 빛나는 것이었다. 박지성은 팀에서, 쉬지 않고 뛰며 차고 태클하는, 축구화 속에 가려진 발과 같은 존재다. 그의 입은 어눌하고, 태도는 투박하다.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을 요약하면,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팀이 우승해 기쁘다’는 것이다. 그런 박지성을 처음으로 발굴한 건 히딩크였고, 맨유의 퍼거슨 감독은 그의 가치를 잘 활용한다. 그 결과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선 한동안 부상으로 벤치 신세를 지긴 했지만, 프리미어리그 2부팀 정도로 평가되던 팀을 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끌어올렸다. 맨유의 경우 지난 시즌부터 지금까지 그가 선발 출전한 경기는 무패(24승3무) 행진을 이어왔다.

 

맨유의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그가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있었던 비결은 여기에 있다. 솔직히 그는 개인기 슈팅 돌파력에서 호날두나 스콜스·캐릭 등보다 앞서지 않는다. 그러나 성실성만큼은 발군이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의 고비였던 바르셀로나와의 2차전에서 그는 무려 1만1962m를 뛰었다. 퍼거슨 감독이 부상으로 무려 270일이나 결장한 그를, 4월부터 여덟 경기 가운데 일곱 경기에 선발 출전시킨 것은 이 때문이었다.

 

<한국방송> 조사에서 성공한 사람 1등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꼽혔다. 최고권력자요 성공한 경영인이자 최고의 부자니 이상할 게 없는 결과다. 하지만 성공한 둘 사이엔 공통점이 별로 없다. 지난해 10월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공 차면, ‘박지성 같은 애들’ 대학에서 데려가는데, 수능 치를 필요가 있겠냐!” 겸손함에서 그의 성품은 꼭 이 수준이다. 말은 청산유수다. ‘섬기는 정부’ 구호는 발군의 표어였다. 하지만 말뿐이다. 지금 국민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다. 반대로 무시당하거나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다. 쇠고기 협상 결과에 분노하는 사람은 그저 정치 논리에 빠져 괴담에 끌려다니는 어리석은 중생이다.

 

전국여성대회에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 품성이지. 품성이 나쁘면 혼자서 (공을) 몰다가 (경기에서) 진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가 할 말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지금까지 그는 국정을 혼자 몰고 다녔다. 그래서 ‘고소영’ 인사 끝에 ‘강부자’ 내각을 꾸렸고, 결정적 자살골(한-미 쇠고기 협상)까지 넣었다. 이제 화의 근원인 잘난 입은 다무시라. 대신 ‘박지성 같은 애들’이라도 그 발을 닮도록 애쓰시길.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