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이명박식 복지개혁과 식코 / 이태수

강산21 2008. 5. 16. 10:52
[객원논설위원칼럼] 이명박식 복지개혁과 식코 / 이태수
한겨레
»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후보 시절엔 생애주기별 디딤돌 복지를 하겠다 했다. 당선인이 되어서는 능동적 복지를 하겠다 했다. 대통령이 된 뒤엔 복지재정의 확충은 없단다. 대신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복지시스템을 손질하겠단다. 언 발에 오줌 누는 수준인데 다른 곳에 튈지 모르니 오줌조차도 안 된다?
 

그간 각종 화려한 말을 동원하며 결코 복지를 외면하지 않겠다고 주장해 왔던 이명박 정부가 복지에 대한 얄팍한 철학을 대중에게 오롯이 드러내는 데는 집권 후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 4월 말 대통령과 부처 장관들이 모여 1박2일 동안이나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연 뒤 내놓은 내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이란 것을 보자. 본문 첫 쪽에 “최근 복지분야 지원 확대 등 적극적인 재정운용 과정에서 재정의 효율성, 건전성 측면에서 문제 발생”을 지적하고, 결국 분배보다는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의연하게(?) 선언하고 있다.

 

한쪽으론 온갖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며 문이란 문을 모두 여는데, ‘물방울이 튀지 않는’ 미약한 복지제도의 확충은 하지 않겠단다. 그 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 복지지출 수준이 우리와 엇비슷한 멕시코가 1994년 세계화에 뒤지지 않겠다고 미국·캐나다와 북미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비록 수출은 늘고 외형적으로는 성장했다지만 실질임금은 아직도 90년대 초반을 회복하지 못하였고, 실업률과 비정규직, 양극화의 몸살에 시달리고 있다. 마침내 ‘에프티에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에 이르지 않았나?

 

그러나 심각함은 따로 있다. 우리나라 복지체제의 근간을 심각히 비틀어 버리려는 시도 그것이다. 시장화는 산업화요, 경쟁은 효율화라는 굳건한 맹신 속에 시장 실패를 교정하고자 등장한 공공복지 부문을 다시 시장으로 환원하는 결정적인 어리석음을 범하려 한다. 건강보험보다는 민간 의료보험에 국민의 건강을 맡기고, 연금도 기초연금으로 최소한의 노후소득만 보장하며, 나머지 소득은 재분배 효과 없는 개별연금 계정을 활용한다. 보육료는 자율화하여 끝없는 가격경쟁을 유도하고, 여타 복지서비스도 성과계약을 맺은 민간시설들이 공급하게 함으로써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며, 민간 공익시설들의 존재기반을 허문다. 근로능력 없는 이에게 최소한의 복지만 보장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일을 통해 자립하라고 민간노동시장에 운명을 맡긴다.

 

이렇게 보면 그간 정의 없이 떠돌던 국적불명의 능동적 복지란 다름 아닌 90년대 이후 미국에서 활개친 ‘권능 부여형 복지국가’(enabling welfare state)와 다르지 않다. 국가의 복지 책임을 민간에 전가하여 재원 조달도, 공급 주체도 민간이 맡도록 하는 미국형 복지체제. 그 결과는? 두말할 것 없이 ‘식코’의 세계다.

 

그래도 식코의 미국은 석유와 석탄, 철광석, 구리, 납이 널려 있는 천혜의 광활한 국토가 있고, 20세기 초부터 세계경제의 엔진이 된 뒤 현재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 수준을 점하는 경제대국이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경제적·문화적·군사적으로 독보적인 지위에서 오는 미국만의 예외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관철되리라 믿는 것은 개인일 때는 무지지만 공인으로서는 죄악이다.

 

그렇기에 이명박 정부 아래 있는 우리의 운명은 구슬프다. 복지를 하지 않겠다면 멕시코의 전철을 밟을 것이요, 이명박식 복지개혁을 하겠다고 나서면 영락없는 식코의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먹고 광우병을 걱정하다 넘어져 깨진 정강이를 스스로 바늘 들고 꿰매는 비참한 모습. 제발 우리의 현실이 아니어야 한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