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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감세는 달콤한 독약이다

강산21 2008. 4. 26. 11:46
[시론] 감세는 달콤한 독약이다 / 윤종훈
시론
한겨레
» 윤종훈 회계사
현정부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감세만이 살길이다’로 표현할 수 있다. 그 감세정책은 법인세에서 시작하여 소득세와 상속세로 이어지고 있다.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는 회사와 개인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주므로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감세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 감세는 경제주체의 가처분 소득을 증가시킨다는 긍정적인 효과 외에 재정수입 감소라는 부정적인 효과를 동반한다. 따라서 감세 효과가 감세론자의 주장대로 현실화될지 여부는 다른 나라의 역사적 경험이나 실증분석 등을 통하여 냉정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997년에 법인세 감세 효과에 대한 의미있는 실증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서, 국내총생산(GDP) 1%(약 9조원)에 해당하는 법인세를 인하하고 같은 액수만큼 재정지출을 줄일 경우 연평균 약 0.033∼0.088%의 경제성장률 제고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반면, ‘정부 지출의 거시경제 및 산업별 파급효과’라는 연구결과를 보면 정부 재정 지출을 1조원 증가시킬 경우 연간 경제성장률이 0.12∼0.22% 높아진다. 특히, 교육과 의료 등 공공서비스 분야에 대한 재정지출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숫자만 볼 줄 안다면 감세의 효과와 공공서비스에 대한 재정지출 효과 중 어느 것이 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쉽게 판단할 수가 있을 것이다.

 

소득세 인하가 소비를 촉진시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상위 10% 계층의 소비만 촉진시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약 45%, 자영업자의 50% 가량은 면세자다. 이는 소득세를 인하해도 하위 50%에게는 한푼의 혜택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반면, 감세 혜택의 대부분은 상위 10%에게 돌아간다. 부유층은 물건을 사도 비싼 외제를 사고, 여행을 해도 국외 골프여행을 주로 한다. 이들의 소비 확대는 내수 진작과 연관성이 크지 않다. 내수를 촉진하려면 주머니가 비어 국산 생필품조차 구입하지 못하는 서민층의 주머니를 채워주어야 한다. 이들의 주머니는 감세로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지출 규모와 총조세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대비 10% 포인트 가량 낮은 최하위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과 부유층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감세정책을 펴는 것은 영양실조 환자에게 다이어트 약을 주고 비만증 환자에게 비곗덩어리를 주는 격이다.

 

한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산의 국외 도피를 막자면 상속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엉뚱한 주장을 펴고 있다. 이는 정말로 우리나라 세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우리 상속세법대로라면, 거주자가 사망한 경우 그 거주자 소유의 재산이 국내에 있든 국외에 있든 모두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되므로 열심히 국외로 재산을 빼돌려 봤자 상속세는 피할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이 재산을 국외로 빼돌리는 경우는 다른 목적에 의한 것이지 상속세 때문이 아니라는 의미다. 한 나라의 경제 수장쯤 되면 특정 정책에 대해 발언할 때 최소한의 상식과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할 것이다.

 

현정부의 감세정책은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를 따라 하는 것 같다. 당시 레이건 정부 역시 ‘감세하면 경제가 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과감한 감세정책을 단행했다. 그러나 감세로 재정수입은 줄었지만 재정지출은 오히려 늘어나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했고, 그 폐해로 10년 동안 경제 암흑기를 보냈다.

 

납세자에게 감세는 달콤하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 그 결과는 독약과 같다. 감세는 ‘달콤한 독약이다.’

윤종훈 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