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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의 법칙은 마음 속에 있습니다

강산21 2007. 8. 27. 21:58
분배의 법칙은 마음 속에 있습니다

작성날짜  2005.08.11 조회수 11456

안녕하십니까. 유시민 의원입니다. 비가 많이 쏟아집니다. 비 피해 당하지 않으셨기를 기원합니다.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 동안 충남 아산시에 다녀왔습니다. 우리당 뉴스타트 운동의 일환인 ‘신빈곤층 대책 민생정책활동’에 참가했습니다. 장애인복지관, 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해 사회복지사들과 정책간담회를 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들과 면담했습니다. 장애인복지관 아동 주간보호시설에서 만난 어린이들 때문에 아직도 마음이 아픕니다. 뇌성마비나 뇌수종 등으로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일곱 살이 되어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거기 그렇게, 심어놓은 화초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오늘 목요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출근했습니다. 보좌관이 책상 위에 우울한 뉴스를 갖다 놓았네요.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월 113만 6천 원) 이하를 버는 절대빈곤층과 최저생계비의 120%밖에 벌지 못하는 소위 ‘차상위계층’의 합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무려 2백만 명이나 많은 716만 명이라는 뉴스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유관부처와 함께 새로 조사한 결과 그렇게 파악되었다고 합니다. 소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재산도 없는 최악의 빈곤층만 4백만 명이랍니다.

저는 경제학도입니다. 경제학자들은 2백여 년 동안 소득분배를 결정하는 객관적 법칙이 과연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임금의 철칙’, ‘한계지대론’, ‘잉여가치의 법칙’, ‘한계생산력 분배이론’ 등등 숱한 분배이론이 나타났지만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분배문제를 ‘답이 없는 문제’로 간주하여 아예 외면해 버립니다. 그러나 양식 있는 학자들은 소득분배에 관한 한 중력의 법칙과 같은 자연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분배는 객관적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죠.

절대빈곤과 상대적 빈곤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이것을 수용하면서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묶어두는 일에 관해서 보면, 대한민국은 아직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업은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명분 아래 비정규직 제도를 임금과 근로조건을 악화시키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데 몰두하고,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철폐를 명분 삼은 투쟁의 이면에서 결과적으로는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과 임금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데 집착합니다.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세무사를 고용해 ‘절세’라는 이름의 합법적 탈세를 감행하고, 여유자금을 가진 계층은 앞다투어 토지와 주택을 투기의 제물로 삼습니다.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빈곤문제를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국가가 이 문제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조성하기 위해 증세를 하는 데는 일치단결하여 반대하고 비판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점의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 보면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현저히 낮은 국내총생산의 약 9% 수준의 돈만을 사회복지비로 지출했습니다. 그 결과 스웨덴,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는 물론이요, 사회복지제도가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미국과 비교해 보아도, 우리나라는 조세제도와 사회보험, 사회복지 정책은 시장에서 이루어진 소득분배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 거의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과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복지비 지출을 확대하면 가장 직접적인 혜택을 볼 수 있는 저소득층과 노령층 유권자들이 사회복지 지출을 확대하는 데 반대하는 정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합니다.

막막합니다. 그동안 절대빈곤층과 차상위계층의 수를 5백만 명으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애는 썼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못해서 속을 끓이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빈곤층이 무려 7백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를 앞에 놓고 보니 도대체 어디에서 새로 시작해야 할지, 망연자실할 따름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잘 사는 사회’가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누구나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사회’, ‘모든 사람이 더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사회’는 이룰 수 있는 꿈이라 믿습니다.

9월 정기국회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당과 정부는 악화일로를 걷는 빈곤과 양극화 문제에 정면으로 맞설 결의를 다지고 방법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분배의 법칙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실 분들을 향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각자 답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기업인 여러분, 당신의 회사가 이윤을 많이 남기기만 한다면 당신이 속한 이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은 어떻게 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까? 대기업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 여러분, 당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차별적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좀 더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정치인과 언론인 여러분, 정부를 향해 빈곤과 양극화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당신은, 그 일을 하는 데 투입되어야 할 재원을 마련하는 어떤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국가가 빈곤층을 더 열심히 돌보고 소득 불균형을 완화해 주기를 바라는 유권자 여러분, 오늘 당신이 지지하는, 지난 선거 때 당신이 지지한 정당이 과연 그 일을 할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올바른 방안을 제시하는 정당인지 진지하게 따져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여름 더위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더위가 끝나는 날까지 건강하게 여름을 견디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05년 8월 11일 목요일

유 시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