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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 텐데…”

강산21 2001. 10. 16. 14:10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삶의 끝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 텐데…”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病棟

곽희자<자유기고가>  월간중앙 2001.10

시한부생명을 선고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후회할까? 더 많은 재산과 권력,명예를 갖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할까? 서울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은 말기암으로 더 이상 생존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에게 편안한 죽음을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병원이다. 이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과 가족, 의료진 및 봉사자들을 통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소망을 취재했다.

일상을 접고 무더위를 피해 모두들 산으로 바다로 피서를 떠날 때, 더위도 잊은 채 세상 나들이 봇짐을정리하느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서울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 한여름의 폭양 속에 병동에 들어서자 낯익은 집거실에 들어선 듯한 편안함이 다가왔다. 몇해전 찾았던 낯익음 때문이거나 분주한 일상으로부터 이탈한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필자나름의 선입견 때문인 듯도 했다.

3층 엘리베이트에서 내려서자 병동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10여m 남짓한 일직선의 복도양 옆으로 병실 다섯개와 다용도실, 간호원실, 기도실, 임종실, 화장실이 있고 입구 왼편으로 전담의사실과 개숫대, 보호자 휴게실이있었다. 휴게실 옆 냉장고 앞에서는 주황색 옷을 입은 호스피스 봉사자들이 냉장고 청소를 하느라 바빴다. 1주일에 두번씩 와서 봉사한다는이들은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해서라고 했다.

냉장고 안을 말끔히 청소한 이들은 보호자들에게 자기 물건을 정리해넣도록 했다. 모두들 정리하고 나자 주인 없는 물건들이 탁자 위에 가득 남았다. 입원했던 환자가 임종하면서 가족들이 미처 챙기지못한 물건들이었다. 올해로 4년째 봉사하고 있다는 최정수 호스피스 팀장은 “2주에 한번씩 냉장고 청소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이만큼씩버린다”고 했다. 거기에는 먹다 남은 김치에서부터 마른반찬·떡 조각·과일·음료수 등 갖가지 먹거리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순간 호스피스 병동임이 확연해지며 오싹함과 함께 ‘이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다 부르면 다 놓고 가는것 아닌가….

이곳 호스피스 병동은 더 이상 완치가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들이 입원하는 곳이다. 입원 자격은 말기암환자이면서 6개월 정도 생존 가능성이 있고, 의식이 있으며,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이런 자격조건을 붙이는 이유는 환자가 남은 생을의미있게 잘 마무리하고 편안한 임종을 맞기 위해서는 이만한 기간과 의식과 의사표현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호스피스는환자가 고통 없이 인간답게 질 높은 삶을 유지하면서 인생을 정리하고,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환자뿐만 아니라 그가족들까지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게 가족까지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가족들도 환자와 똑같이 죽음의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그래서호스피스 활동은 환자의 임종으로 끝나지 않고, 임종후 사별 가족의 사후관리로까지 이어진다.

필자가 찾아간 날 병동에는 모두15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1인실 2개, 4인실 2개, 5인실 1개로 15명이 동시에 입원 가능함). 최고령이 86세이고, 최연소자가21세였다. 스물한살인 한모군은 고등학교 2학년때 골육종 선고를 받고 그동안 다섯번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아오다, 지난해 다시재발되면서 서울대병원을 거쳐 6일전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지난해 남편을 급성 간경화로 잃었는데 올해 또 아들이이렇게 돼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는 이곳에 오기전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들의 골육종 치료와 무관한 글리벡 치료까지 받았다.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글리벡이 혹시라도 아들의 병 치료에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의심정을 동감하는 병동 환자와 그 가족들은 그런 그를 매우 안쓰럽게 여겼다.

이들 외에 환자는 60~70대가 5명,40~50대가 8명이었다.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환자를 보니 환자도 안됐지만 그 가족들의 앞날이 걱정돼 안타까웠다. 연세가 많은환자들은 이들을 보며 안쓰러워하면서도 조금은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남녀의 비율은 반반이고, 병명으로는 위암 환자가 5명으로 가장많았다. 나머지 환자는 모두 난소암·췌장암·폐암·대장암·직장암 등으로 각각 병명이 달랐다. 우리나라 암환자 중 위암환자가 가장 많다는것이 이곳 병동에서도 입증되고 있었다.

해마다 우리나라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5만여명이다. 국민 5명 중 1명이암으로 사망한다는 말이다. 가장 발병이 많은 암이 위암·간암·자궁경부암 등으로,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 등 불량한 위생으로 생기는후진국형 암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고지방식이나 대기오염 등 생활환경이 서구화되면서 폐암·유방암·대장암 등 선진국형 암이급속히 늘고 있는데, 이런 선진국형 암은 후진국형 암보다 치료와 예방이 더 어렵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는 의사(1명),간호사(11명), 사회사업가(1명), 봉사자(50명), 사목자(1명) 등이 하나의 팀을 구성해 환자와 그 가족을 돌보고 있다. 이렇게 팀활동을 하는 것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영적으로도 힘들어 통합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부르면 다 놓고 가야 하는 것이 人生인 것을­

대개 환자가 입원하면 의사와 간호사는 환자의 상태를체크해 그에 따른 치료 방법을 모색한다. 말기암 환자의 경우 계속 병이 진행되기 때문에 매일 매일 상태가 달라진다. 따라서 그치료 방법도 매일 달라져야 한다. 이를 의사와 간호사는 잘 파악해 환자가 최대한 고통 없이 편히 지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사회사업가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병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질환에 대한 태도, 가족관계, 직장이나 친구관계 등의 사회적지지망, 건강했을 때의 성격, 현재의 스트레스 요인, 스트레스 대처기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나타내는 반응, 임종에 대한 심리적 반응,장례준비여부, 가족들이 간병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 등 그 환자가 기반하고 있는 가정, 사회, 정신적, 경제적인 부분까지 모두파악해 환자와 가족에게 필요한 도움을 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후원회의 후원금으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현재이곳 병동의 경우 일반 병실이 없고 상급 병실만 있어, 환자와 그 가족들은 병실료에 대한 부담이 크다 (1인실 19만8,000원, 4인실5만원, 5인실 4만원). 입원하고 싶어도 비싼 병실료 때문에 주저하는 이들도 있다. 봉사자들은 환자들의 말벗에서부터마사지·목욕·장례·사별가족 관리까지 실질적인 간병에서부터 정신적, 영적 도움까지 모두 주게 된다. 환자들 가운데는 봉사자들과 유대가깊어지면 가족들에게 하지 못했던 속얘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가족이 없는 환자들은 재산정리를 의뢰하기도 한다.최영숙 봉사자는 가족이 없던 40대 후두암 환자가 남은 재산정리를 하겠다며 도와달라고 해 은행과 우체국 등으로 모시고 다니며마지막 정리를 도와주었다고 했다. 의지할 가족이 없는 환자들에게는 이들 봉사자가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되고 위로가 된다. 이들은 환자들이임종을 하면 입관, 연도, 장례, 장지까지 따라가 마지막 가는 길까지 길벗이 돼 준다. 이렇게 환자를 보내고 나면 이번에는 가족을잃고 슬픔에 빠진 가족을 챙기고 위로한다.

병동에서 만난 환자 가족들은 하나같이 이들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거의 매일 임종환자를 보다 인생의 허무감 때문에 이곳 청소를 그만두려 했다는 청소부 아주머니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을 보며신앙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봉사자들은 환자들 우울해 하면 금세 즐거운 노래로 환자들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어느 날병동에 들어서자 낭랑한 노랫가락이 병동 전체로 울려 퍼졌다. 순간 아픈 환자들이 있는 병실에서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염려를하며 소리 나는 병실 안을 들여다보니 너댓명의 봉사자들이 생글생글 웃어가며 해당화를 부르고 있었다.

이미자의 노래를좋아한다는 86세 할머니가 노래 신청을 한 것이었다. 이날 봉사자들은 서너곡을 더 불렀는데 노래 중에 ‘동백아가씨’가 나오자 할머니는딸과 부둥켜 안고 서럽게 울었다.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옆의 환자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신청하기도 한다. 환자들은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면 순간이나마 고통을 잊고 즐거워한다.

봉사자들 가운데는 가족이 암으로 고통받을 때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아그 은혜를 갚기 위해 나온 이도 있고, 순수하게 나누는 삶을 살고 싶어 나온 이들도 있다고 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봉사를 통해주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며 임종하는 환자들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고 했다.

사목자는 환자의 영적인 부분을 도와준다.환자들은 임종이 가까워 오면 내세에 대한 두려움으로 몹시 불안해한다. 이는 종교가 있는 사람들보다 없는 사람이 더 심한데, 종교가있는 사람도 신앙에 확신이 없으면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냈다. 이런 두려움으로 인해 종교를 갖지 않았던 이들이 뒤늦게 종교를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었다. 사목자들은 환자들이 내세에 대해 갖는 두려움을 떨치고 편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봉사자, 사목자는 환자 한 사람이 고통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잘 정리하고 편안한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하나가 되어 돕는다. 이들은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최대한의 도움을 주기 위해 그들에게 일어나는 작은 일들까지 모두기록했다. 이 정보는 모든 팀원이 공유하고 그들을 돕는 데 활용했다. 팀원들은 2주에 한번씩 모두 모여 환자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합당한 치료 방법을 모색한다.

이곳에서는 임종을 앞둔 말기암 환자지만 단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끝까지 의미 있는 삶을살도록 유도한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무슨 목표가 있고 의미 있는 삶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환자가 군대에 간 아들을 보고싶어한다면 그것이 그에게는 단기적인 목표가 되고, 그 꿈대로 아들을 보게 됨으로 그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숨을 거두기 전까지 고통 없이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잘 정리하게 하는 것이 이들 모두의 목표다. 말기암 환자들에게서나타나는 육체적인 증상은 통증, 무기력증, 구역질, 변비, 숨가쁨, 경련, 입맛 없음 등이다. 이 중 통증으로 인한 고통이 가장 큰데,통증은 암이 점차 진행되면서 뼈·신경·기타 장기를 누르면서 생겨나는 것으로, 초기 암환자의 경우 35%가, 말기 환자의 경우는80~90%가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통증이 엄습할 때 환자들은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듯 절망감에 사로잡히고 심한공포감에 휘말린다고 한다. 이 고통이 너무 커 환자들 가운데는 자살충동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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