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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에 짓밟힌 '노총각 순정'

강산21 2006. 7. 26. 00:39

성적표에 짓밟힌 ‘노총각 순정’


[한겨레] ‘101번째 프러포즈’ 조기 종영

서른여덟살 노총각 ‘달재’의 우직한 사랑을 그린 에스비에스 월화드라마 <101번째 프로포즈>(극본 윤영미, 연출 장태유)가 ‘폐인’들의 조기 종영 반대에도 불구하고 25일 15부로 막을 내렸다. 당초 계획된 16부작으로 끝맺지 못한 데다 독일월드컵 중계 때문에 지난 6월12, 13, 19일 3회분이 결방되었고 같은 시간대의 사극 <주몽>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평균 시청률까지 6%(에이지비닐슨 미디어리서치)로 한자릿수에 머물렀지만 마니아층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지난 5월29일 첫 전파를 탄 <101번째 프로포즈>는 1991년 일본 후지티브이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동명작품이 원작이다. 직장에서 쫓겨난 가장이 전업주부가 된 일상을 다뤄 화제를 모았던 <불량주부>의 장태유 피디와 <내 사랑 토람이>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윤영미 작가가 한국식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로 바꿨다.

지난 5월에 열린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장태유 피디는 “재벌 2세도, 꽃미남도 아닌 평범한 한 남자의 진솔한 사랑이야기를 다뤄 보겠다”고 말했다. 전망 없는 노총각 달재가 사랑을 하면서 희망을 갖게 되는 과정과 그의 사랑을 받는 수정(박선영)이 신혼 여행길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픔을 치유하는 모습을 밀도있게 그렸다.

이에 시청자 게시판에는 ‘답답한 일상에 한줄기 빛이 되는 작품이다’ ‘어깨가 처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드라마다’ 등 지지하는 의견이 계속됐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정과 그의 죽은 남편을 닮은 우석(정성환)의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 계속되는 설정은 억지스러웠다. 초반에는 주인공을 둘러싼 가족, 방송국 동료들 등 주변인물들의 연결고리를 촘촘하게 이어가다가 중후반에 갈수록 주인공들의 삼각관계에만 치중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남자 춘향’ 달재의 “죽는 그 순간까지 수정씨만 사랑할게요”라는 애절한 프로포즈, “자기를 단념하라”고 말하는 수정에게 그래도 “태어나줘서 고맙다”라는 절절한 고백, 9회에서 달리는 트럭에 뛰어드는 장면 등 배우 이문식의 연기가 페이소스를 보탰다. <슬픔이여 안녕> <오! 필승 봉순영>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박선영도 여주인공이 마음을 여는 과정을 무리없이 소화했다.

중년 조연들의 코믹 연기도 재미를 더했다. 달재 아버지의 창만(임현식), 수정의 이모 은임(최란), 치킨집 사장 선자(김형자)의 삼각관계는 매번 웃음보를 터트리게 했다. 그래서 <101번째 프로포즈>는 시청률 성적표는 형편없지만, ‘아름다운 꼴찌‘로 기억될 것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