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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백서' 딱 내 얘기네^^

강산21 2006. 5. 6. 16:51
‘인터넷 백서’ 딱 내 얘기네…‘일상의 공감’ 요점정리
[동아일보 2006-05-06 03:47]    

[동아일보]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정현진(28·여) 씨는 요즘 인터넷 검색창에 ‘백서’를 자주 쳐 넣는다. 하지만 시험에 도움이 될 경제백서, 국방백서 등 정부나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찾으려는 게 아니다. 연애백서, 백수생활백서…. 정 씨가 찾는 백서는 무거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누리꾼들이 글 사진 동영상을 이용해 가볍게 만들어 올리는 21세기판 인터넷 백서들이다.

○ 만개하는 백서(白書) 문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연애백서’ ‘인터넷생활백서’ ‘새내기생활백서’ ‘초딩(초등학생)생활백서’ ‘장병생활백서’ ‘다이어트백서’ 등 숱한 종류의 백서가 인기다. 백서(white paper)는 영국 정부의 공식 보고서 표지가 하얀색인 데서 유래한 용어로 정부기관이 정책이나 실적을 종합 정리해 발표하는 공식 보고서의 통칭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백서’는 재치 있는 정보와 유머를 집대성한 콘텐츠를 의미한다.

최근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백서는 ‘연애백서’류다. ‘1조: 사랑은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하는 것이다’ 식으로 나열되는 연애백서들은 개인의 연애 경험과 멜로드라마, 영화 속 대사를 섞어 만들어진다.

‘초딩생활백서’ ‘중고생학교생활백서’ ‘새내기생활백서’ 등 학교생활을 다룬 백서, ‘1조: 바지 두른 남자라고 다 좋아하진 않는다’로 시작하는 노처녀들끼리 자존심을 각성하자는 ‘노처녀백서’ 등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인터넷뿐이 아니다. 20, 30대 여성의 연애 결혼 가족 문제 등을 다룬 ‘여성생활백서’를 비롯해 ‘백서’란 제목을 단 책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 공감 소통의 새로운 ‘공동체 놀이’

백서 열풍은 휴대전화와 생활에 얽힌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현대생활백서’ 광고, 그리고 청년 실업자를 소재로 한 KBS 2TV ‘개그콘서트’의 ‘현대생활백수’ 코너 등으로 이어지면서 확산되고 있다.

기업들도 ‘백서’ 열풍을 마케팅 전략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삼성의 지식 포털 사이트 ‘영삼성’은 올해 초 사자성어로 재미있게 권법을 가르치는 동영상물인 ‘권법백서’를 만들어 유포했다. 공군은 군인들의 생활을 코믹하게 다룬 ‘장병생활백서’를 만들었다.

백서는 웹상에서 계속 확대 생산된다. 누리꾼들은 남이 만든 백서에 댓글로 추가 항목을 덧붙인다. 백서의 조항들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확장되는 것이다.

회사원 이호민(28) 씨는 “모르고 있던 이야기가 아니라 익숙하지만 미처 자각하지 못한 것을 콕 집어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인터넷에 떠도는 백서의 매력”이라며 “‘이건 내 이야기구나’라는 공감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이동연 씨는 “생활이 불안할수록 자기의 라이프스타일을 표준화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백서의 유행은 다양하고 부담 없는 소재를 백서라는 형식으로 전파해 자기 공동체의 문화와 일상을 익명의 또래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며 즐거움을 얻으려는 젊은 세대의 문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