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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호 마이너리티 리포트] “아무도 불법이지 않다(No one is illegal)”

강산21 2006. 4. 2. 20:39
[180호 마이너리티 리포트] “아무도 불법이지 않다(No one is illegal)”
태어나자마자 불법체류자 취급…교육과 의료 혜택 받지 못해

 

김미선(spicewood) [조회수 : 117]

 

 

   
▲ (사진제공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새해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새로운 계획 수립이 아닌 전년도 사업결과 보고와 평가이다 보니 그렇게 한두 달을 보내고 나서 3월이 되어야 비로소 새해가 시작되었음을 실감하곤 한다. 매년 사업결과를 정리하면서 여러 가지 통계를 낼 때 가장 궁금해지는 것이 바로 의료비 직접지원 사례에 대한 분석 결과이다.

2005년에도 외래진료를 제외한 수술·입원·출산 응급 환자에 대한 지원 결과를 보니 역시 산과 관련 지원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총 318건에 2억 2500여 만 원의 의료비 직접지원 환자 가운데 임신·출산 관련 지원이 103건에 이른다. 여기에 신생아 질환에 대한 지원도 18건이나 되어 여성이주노동자들의 임신․출산 그리고 신생아 질환 지원이 전체 의료 지원의 38%에 달한다. 이런 결과를 놓고 우리는 우스갯소리마냥 “역시 우리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군” 하면서도 수치로 드러나는 결과보다 훨씬 많은 숨겨진 이야기들로 인해 늘 안타까움으로 새해를 맞곤 한다.

한국 땅에서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

한국의 노동시장에 외국인들이 발을 들여놓은 지 어느새 15여 년, 비록 새로운 제도로 인해 단순기능인력이 ‘합법 근로자’로 인정받는 계기는 마련되었지만 또다시 새로운 단계를 넘어가야 할 순간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주노동자 가족과 자녀의 문제.

처음 활동을 시작하면서 비교적 고연령층인 중국동포들의 만성질환에 대한 지원을 염려하던 우리의 생각과 달리 매년 여성이주노동자들의 임신․출산이 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우리는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장기적으로 체류하고자 하는 욕구를 읽어낼 수 있었다. 즉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2세를 낳아 기르고자 하는 욕구가 여성들의 임신․출산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우리 땅에서 태어나도 속인주의를 채택하는 한국의 정책상 우리나라에서 발붙이고 살 근거는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즉 부모가 체류 자격이 없는 경우,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적 제약을 대물림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이주노동자 부부는 자신의 아기들을 벌금 부과 이전인 신생아 때(출생 후 1개월 내) 서둘러 본국으로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채 얼굴도 익히기 전인 갓난아기를 비행기에 태워 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도 심정이려니와 본국에 ‘달랑’ 보내진 아기에 대한 양육도 여러모로 걱정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우리 땅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양육, 체류자격 등 여러 문제로 본국에 보내지고 있지만 부모와 함께 이 땅을 찾는 이주노동자 자녀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늘어난 어린이, 청소년기의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와 함께 힘겨운 ‘이주’의 대열에 합류한 아이들이다.

부모 때문에 강제추방 당하는 자녀들

   
▲ 외국인 노동자 2세들이 태어나자마자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그동안 각 지역 상담소를 통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던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존재와 문제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2003년 처음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겪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교육’과 ‘의료문제’였다. 취학 연령대의 이주노동자 자녀 약 1000명 가운데 정규 교육을 받는 자녀들은 20% 가량인 205여 명에 불과했고, 취학 연령임에도 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국말을 잘 못해서’(31.6%), ‘불법체류아동이기 때문엷(21.1%)라고 응답하였다. 또한 이들의 부모의 과반수는 아이들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었다고 응답한 것을 볼 때, 많은 이들이 체류 자격 때문에 기초적인 사회적 서비스에서 소외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불법체류 상태이기 때문에 학교나 병원에도 못가는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것은 비단 부모들로만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 2년 전 천안에서는 불법체류 상태인 엄마를 일하던 공장에서 단속하면서 당시 유치원에 있던 딸아이를 데려가 함께 보호소에서 지내게 했던 일도 있었으며, 한국아이들과 어울려 놀다 사고를 친 몽골청소년들이 모두 강제추방당한 일도 지난해에 벌어졌다. 그러다보니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같은 또래 한국아이들이 성적이나 이성, 혹은 연예인에 한창 관심가질 나이에 “비자 받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몽골에서 온 지혜는 자기보다 나이어린 학생들과 수업하는 중3 학생. 합법체류 자격을 얻지 못해 고국으로 돌아간 부모와 생이별한 지 벌써 2년. 할머니와 함께 살아야 해서 집은 일산에 학교는 장안평에 또 고등학교 갈 학비를 벌기 위해 방학 때부터 시작한 강남 편의점에서의 아르바이트에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더라고 웃지만 그의 얼굴엔 벌써 삶의 고단함이 묻어있다. 지난해 한 단체가 주관한 몰래 산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산타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써넣으라고 하자 근심어린 얼굴로 “우리 집은 지하인데 산타할아버지가 찾아오실 수 있느냐”고 묻던 에비. 학교 마치고 집에 가면 늘 혼자인 채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는 부모를 기다려야 하는 돌궁….

불법체류 외국인자녀들를 차별하지 말자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던 한 이주노동자의 소박한 소망(영화 ‘정복자 펠레’에서 덴마크로 이주해온 스웨덴 노동자 아버지가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들으며 누구에게는 일상이 다른 누구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듯 새학기를 맞아 분주한 사무실 건너편의 문구점을 보며 새삼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대부분의 우리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이주노동자 자녀들에게는 힘겨운 나무타기처럼 보이기 때문이리라.

“아무도 불법이지 않다(No one is illegal)”는 표현은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난 이상 불법적인 존재는 없다는 뜻이다. 그동안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의 주된 활동이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들을 사람으로 대하자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이주노동자 가족과 자녀들에게 보다 인간다운 대우를 하는 것이 활동 과제가 될 것이다. 초기 이주노동자들이 겪었던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동남아 각국에서 한국인에 대한 나쁜 감정이 형성되어 이를 시정해야 했다면 앞으로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의해 한국사회가 평가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정부 당국에서도 최근 18세 미만의 이주노동자 아동에 대해서는 설사 불법체류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단속대상에서 제외하고, 불법체류 외국인자녀에 대하여 의료보험 적용 및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강화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도 2003년 교육 및 사회복지 관련 법령 등이 외국어린이, 특히 불법이주노동자 자녀의 복지와 권리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조항을 두고 있지 않은 점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불법이주노동자 자녀를 포함한 모든 외국어린이들이 국민인 어린이들과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구체적인 조항을 포함하도록 특히 교육 및 사회복지 관련 국내법 개정을 요구한 것과 같이 이제는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가기 위한 이주노동자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시적 조치와 문화적 개선을 이루어야 할 시점이다.

김미선 / 이주노동자건강협회 사무처장

 

2006년 03월 31일 17:3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