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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가 황 교수에게 기회를 줄 수 없는 이유

강산21 2006. 1. 31. 14:25
과학계가 황 교수에게 기회를 줄 수 없는 이유
[연합뉴스 2006-01-31 06:32]
"학문적 범죄 눈감으면 한국 과학계 전체 퇴출"

이덕환 서강대 교수 사이언스타임즈에 기고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한 대학 교수가 논문조작이라는 `학문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며 기회를 달라는 황우석 교수에게 과학계가 다시 기회를 줄 수 없는 이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발표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이 교수는 최근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의 과학문화 확대경이라는 코너를 통해 '황우석 박사에게 기회를 줄 수 없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과학의 신뢰 기반을 훼손한 논문조작의 당사자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줄 수 없는 과학계의 입장은 분명하고 확고하다"고 못박았다.

 

일부 친황그룹 네티즌들이 국익을 위해 황 교수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지만 황 교수가 스스로 논문조작 사실을 인정한 이상 자진해서 물러나야 하며 그것은 세계 과학계의 확고한 관행이며 요구라는 것이다.

 

물론 황 교수가 처음부터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그러나 황 교수는 세계 과학계의 검증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결과를 인정받으려 했으며 이는 황 교수가 논문조작에 대한 책임도 유감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황 교수가) 단 것만 삼키고, 쓴 것은 뱉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국 과학계가 학술논문을 조작해서 전세계의 과학자를 속이려 했던 학문적 범죄 행위에 대해 눈감고 국제 과학계의 관행을 무시한다면 우리 과학계 모두가 황 교수의 의도적 논문조작의 공범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 "한국 과학계 전체가 세계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나아가 "의도적 논문조작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이유는 단지 그런 조작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아서만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과학적 주장을 검증하고 조작된 사실을 밝혀내는 일은 새로운 과학적 결과를 얻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며 "세계 과학계가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자원과 노력을 그런 헛된 일에 낭비하지 않겠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의도적인 거짓말은 과학계의 신뢰에 금을 가게 해 엄청난 손실을 초래할 수 있을 뿐더러 우리 모두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며 "과학계가 논문조작을 특별히 엄격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황 교수가 투명사회를 만들어가려는 우리 사회 내부의 노력과는 반대로 어두운 정과(政科) 유착의 선례를 만들어낸 주역이라는 점도 황 교수에게 다시 기회를 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라고 꼽았다.

 

황 교수에 대한 대규모 지원과 인위적 영웅 만들기는 정상적인 연구지원 절차를 무시하고 이른바 `황금박쥐'로 알려진 몇 사람의 밀실담합에 의해 가능했다며 정치권과의 부당한 유착이 결국 오늘의 불행한 사태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정부와 부당한 유착관계로 이익을 얻은 기업가나 언론인을 퇴출시키는 것이 당연하듯이 유착관계로 온 국민을 수치스럽게 만든 황 교수도 무거운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만약 국익을 핑계로 황 교수의 그런 잘못이 용납된다면 우리 과학계는 어두운 유착과 더러운 음모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가 정직하지 못했던 황 교수를 믿었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하고 황 교수가 개발했다는 기술은 결코 황 교수 개인의 것일 수 없다"며 "황 교수가 진정으로 조국과 민족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개발했다는 기술을 온전하게 우리 사회에 환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과학은 오로지 정직하고 성실한 과학자의 끈질긴 노력과 남다른 창의력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지 꿈이나 희망, 또는 국민의 여론에 의해 발전하거나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며 "국익에 눈이 멀어서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과학칼럼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교수이자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실무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2002년 한국과학저술인협회 저술상, 2004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과학 대중화와 과학문화 확산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s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