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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법, 15년전을 아십니까?

강산21 2006. 1. 2. 15:18

사학법, 15년 전을 아십니까
 
[한겨레21 2005-12-27 09:18]    
 

 

[한겨레] <조선일보>까지 비판했던 1990년 민자당 주도의 날치기 개악
왜 이제는 일부 족벌학교의 전횡을 그토록 눈감아주려 하는가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지난 12월9일 국회 본회의장을 화려하게 장식한 몸싸움 끝에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달려간 곳은 주요 종교 지도자들의 품이었다.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등 사학재단의 이익단체들이 “2006학년도 후기 사립 중·고교의 신입생 모집을 하지 않겠다”고 전 국민을 상대로 엄포를 놓는 사이, 박 대표는 12월 칼바람을 무릅쓰고 김수환 추기경,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최성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등 주요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러 다니며 사학법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한나라당에 따르면 종교 지도자들은 “사학법에 대해 100% 반대” 또는 “순교하는 마음으로 대처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한나라당과 사학재단 쪽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이들이 정말 사학법 개정 철회를 위해 (처벌을 감수하면서) 신입생을 뽑지 않고 ‘거룩하게’ 순교에 나설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속내는 생각보다 분명한 편이다.


3당 합당 이후 일사천리로 통과시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우리나라에 있는 1974개 사립학교 가운데 지난해 4월 현재 불교·기독교·천주교 등 7개 종단에 소속된 학교는 24.4%인 482개나 된다. 전체 사립학교 4개 가운데 1개꼴인 셈이다. 이 가운데 기독교 소속 사학이 349개로 제일 많고, 천주교(82개)가 그 뒤를 잇는다. 불교 관련 사학은 24개로 적은 편이어서 불교계는 이번 사태에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관 스님은 12월15일 조계사를 찾은 김진표 교육부총리에게 “한 신문에 내가 (사학법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그런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없다”며 “사립학교법이 통과된 만큼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교’를 위해 설립된 종교 사학이라고 해도, 학교 운에 다양한 제약을 부과하는 사학법이 달가울 리는 없을 것이다.

 

개정 사립학교법의 뼈대는 △개방형 이사제 도입 △이사장·배우자의 직계존비속(아들·며느리·부모) 교장·학장 임명 금지 △친인척 이사 수 제한(전체의 4분의 1) 등이다. 또 횡령·뇌물수수·회계 부정을 저지른 임원이 이사로 복귀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예기간을 2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개정 사립학교법을 두고 사학재단에서는 ‘사학의 자율성 침해’ ‘학교를 전교조에게 넘겨주는 꼴’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속내는 그동안 이뤄졌던 족벌 운영의 고리를 끊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박경양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이번에 개정한 사립학교법의 뼈대는 1990년 3당 통합으로 거대 여당이 된 민자당 주도로 날치기 개악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학법을 둘러싼 논란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3월21일 제148회 임시회 마지막 날에 일은 터졌다. 당시 제1야당이었던 평민당이 회기 내에 지방의회의원선거법 등 주요 법안 처리를 하지 못한 데 대한 항의의 뜻으로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한 뒤였다. 3당 합당 이후 거대 여당으로 돌변한 민자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다른 13개 법안과 5개 동의안과 함께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전교조,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뿐 아니라 한국교총 등 보수 성향의 단체에서도 비난 의견이 쏟아졌다. 개정안에는 애초 정부안에는 없던 ‘재단설립자 직계존비속의 총·학장 임명 허용’등의 조항이 삽입됐고, 그 과정에서 최각규·김인곤·함종한 등 사학법인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의원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 통과 한 달 뒤인 그해 4월20일에는 중앙대 총학생회가 사학법인들이 사립학교법 개악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음을 보여주는 ‘사립학교법 개정정책활동추진간담회 개최’라는 문건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140여개 종교계열 학교 교사들의 선언


그 무렵 사회 분위기는 최근 사학법 개정에 맹공을 퍼붓는 <조선일보>의 15년 전 사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법안 통과 직후인 1990년 3월23일 사설에서 “(사학법 개정안이) ‘아빠는 총장, 엄마는 이사장, 아들은 처장’ 하는 식의 가족 중심 운영체제에서 비롯되는 불합리와 비리를 제거하고자 학교법인의 이사장과 배우자 그의 직계 존비속 및 배우자 관계에 있는 사람은 대학 총·학장으로 임명할 수 없도록 했던 조항을 폐지했다”고 비판했고, 한 달 뒤인 4월21일 사설에서도 “재단 이사장 친·인척의 총장 취임을 허용하고, 또 이사회 참여폭을 확대시킬 수 있도록 한 것도 과거 문제가 됐던 이른바 족벌체제의 부활을 가능케 한 점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그 신문이 이제 와서는 “일부 사학 재단 운영에 문제가 있다면 당국이 엄정한 감사를 통해 적발하고 바로잡으면 된다”(12월10일치 사설)고 외치는 것을 보면 15년은 어찌 보면 사람의 생각을 뒤바꿀 만큼 긴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90년 이후 대한민국의 사학은 학교 금고를 제 호주머니처럼 여기는 일부 학교 족벌의 전횡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교사와 학생들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학교 정상화”를 외쳤다. 지난해 동해대, 경북테크노대, 대구외대, 경기대 등 4개 사립대에서 600억원의 회계부정이 적발됐다. 교육부에서는 지난 5년 동안 2천억원이 훨씬 넘는 돈이 비리 사학법인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본다. 11월30일 전국 140여 개 종교 계열 학교 교사 대표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사학법 개정을 가로막는 일부 종교인의 행동에 반대’하는 선언을 했고, 황필규 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사학 운영자들은 비리와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그동안 힘써 노력해야 했다”고 말했다.

 

 

양치기소년 “전교조가 온다~”
사학쪽의 어처구니없는 속임수… 차라리 “교총이 온다~”면 모를까

한나라당과 사학법인 쪽에서는 새 사립학교법으로 “학교가 전교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현행 사학법에서 학교 운영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7인 이상으로 구성되는 학교 이사회다. 개정 사학법으로 학교 법인은 앞으로 이사의 4분의 1 이상을 외부에서 뽑는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교조 교사들이 이사회에 들어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낮다고 봐야 한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곳곳에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먼저, 교사는 ‘겸직 금지’ 원칙에 따라 자기 학교 이사회의 이사가 될 수 없다(23조 2항). 전교조 교사가 학교 이사회에 들어가려면 다른 학교 운영위원회(운영위)의 추천을 받아 그 학교 이사가 되는 길밖에 없다.

개방형 이사를 추천하는 초·중·고 학교운영위의 교원 참여 비율은 35.9%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전교조 교사는 15.9%, 교총 소속 교사는 그보다 5배나 많은 71.7%다. 운영위 차원에서 전교조 후보는 탈락할 가능성이 높지만, ‘목소리 큰’ 전교조가 우격다짐으로 지지 후보를 추천한다 해도 그가 반드시 이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운영위는 후보 2배수를 추천할 뿐, “특정 후보를 뽑으라”고 강제할 수 없다. 2명의 개방형 이사를 뽑는다면 운영위는 4명을 추천하게 되고, 이사회는 입맛에 맞는 2명을 뽑으면 그만이다.

갖은 난관을 돌파하고 전교조 교사가 이사회에 입성한다 해도, 자기 맘대로 학교를 끌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사회 의결은 다수결로 하게 돼 있어, 이사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또 이사가 학교장의 권한을 침해했을 때는 이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20조 2의 1항.) 이 때문에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등 사학법 개정을 요구해온 시민단체 쪽에서는 이번 사학법 개정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