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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인권영화 <다섯개의 시선>

강산21 2005. 12. 31. 10:35
 
인권 영화는 무겁고 지루하다는 고정 관념을 버려라
장진·류승완 등 5인 감독의 옴니버스 인권영화 <다섯개의 시선>
입력 :2005-12-30 23:44   조은영 (helloey@dailyseop.com)기자
▲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 ⓒ국가인권위원회 

우리 시대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국가인권위원회 두 번째 프로젝트로 류승완·장진·정지우·박경희·김동원 등 다섯 감독의 시선을 모은 옴니버스 인권 영화 <다섯개의 시선>(제작 국가인권위원회)이 28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언론 시사회를 가졌다.

술만 취하면 두 얼굴의 사나이로 변신하는 남자 이야기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류승완), 학생운동 취조에 피곤한 어리버리 비정규직 수사관을 다룬 '고마운 사람'(장진), 오토바이 실력을 자랑하는 탈북소년 이야기 '배낭을 멘 소년'(정지우), 다운증후군 소녀의 친구 만들기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박경희), 길거리에서 동사한 중국 동포를 바라본 '종로, 겨울'(김동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 영화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개성파 감독들의 각기 다른 장기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영화적 시선에서 때론 유머러스하고 때론 진지하게 바라보며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및 극영화 형식으로 제작된 이 옴니버스 인권영화는 <그대 안의 블루> <시월애> 등을 연출했던 이현승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다섯개의 시선>은 각 상영시간 20분 내외로 내년 1월 13일 개봉예정이다.

▲ 베낭을 멘 소년 ⓒ국가인권위원회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 (박경희 감독)

엉뚱하고 씩씩한 몸빼바지 왕따소녀

다운증후군 은혜는 학교에서 뚱보매기로 놀림 받아도 기죽지 않고, 플롯을 배우며 무서운 얘기도 나서서 해주는 평범한 소녀. 이런 은혜의 가장 친한 친구는 40대 동네 아줌마. “어떤 애가 있는데요, 나쁜 애 아니거든요?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라는 은혜의 말은 차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라는 작은 소망이기도 하다.

장애인 딸과의 경험을 만화 작품에서 그려낸 장차현실 씨의 다운증후군을 앓는 실제 딸 은혜 양이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남자니까 아시잖아요 (류승완 감독)

술만 취하면 두 얼굴의 사나이로 변신 시작

남자라는 허위의식에 똘똘 사로잡힌 우식은 이미 만취한 상태에서 또다시 포장마차를 찾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보이는 그의 언행은 성차별, 술집 종업원 비하, 외국인 노동자 무시하기 등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차별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베낭을 멘 소년 (정지우 감독)

북에서 왔습니다. 그럼 혹시 간첩...이세요?

우여곡절 끝에 탈북에 성공, 남한 소년들보다 유일하게 잘 할 수 있는 오토바이를 빠른 속도로 타는 열아홉 소년 현이와 북한 사람임을 나타내고 싶지 않아 말을 하지 않는 또래 소녀 진선을 통해 탈북 청소년들이 겪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괴리감과 사춘기의 공황을 섬세하게 담았다.

고마운 사람 (장진 감독)

무슨 공무원이 보험도 없어요?

학생운동을 하다 붙잡힌 윤경신과 그를 고문하는 수사관 김주중. 보너스나 고용보장도 없이 주말에도 수사에 매달리는 열악한 환경의 비정규직 수사관은 자신이 취조하던 경신에게 오히려 좋은 세상이 올거라는 위안을 받은 후 고문 대처 노하우까지 알려주며 특별한(?) 우정을 쌓는다.

장진 감독의 장기인 블랙코미디가 잘 드러나는 작품.

종로, 겨울 (김동원 감독)

사장님 나빠요. 중국동포도 동포입니다.

2003년 12월 9일 새벽. 혜화동 거리에서 중국동포 김원섭씨가 동사한 채로 발견된다. 1년 뒤 같은 날 카메라는 어딘가 남아있을지 모를 김원섭씨의 흔적을 찾기 위해 종로와 혜화동 일대를 헤맨다. 밀린 임금을 받다 돌아오던 김원섭 씨는 길을 잃고 밤새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119와 112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 구조의 손길이 닿지 못한 채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주로 인권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 왔던 김동원 감독은 고 김원섭 씨의 가족과 동료들, 주변인의 인터뷰를 통해 죽음의 방관자가 된 우리 모습을 부끄럽게 만든다.

다음은 감독들과의 일문일답

▲ 고마운 사람 (장진 감독) ⓒ국가인권위원회 

-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소감은?

이현승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이번 영화들이 많은 관객과 만나 흥행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이번 영화가 지난번 프로젝트보다 대중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영화는 영화대로 즐기면서 끝날 때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애썼다. 인권영화라는 시선보단 영화 자체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사랑해 달라.

장진 작업한지가 꽤 된 프로젝트인데 이제야 선보인다. 주제가 투박하고 무거울 수 있지만 대중영화 감독답게 문제를 대중적으로 풀어보려고 했다.

정지우 단편 작업은 오랜만이다. 아주 재밌고 흥미롭게 작업을 했다. 이후 영화 작업 하는데도 많은 생각의 정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김동원 짧은 다큐멘터리다. 영화라는 매체가 재미만 주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사회와 관계 맺는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제안이 들어와 기꺼이 참여했다.


- 기획 단계부터 사회적 현실이 반영된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만큼 각각 작품에 실제상황이 얼마나 반영돼 있는지 궁금하다.

장진 만드는 사람들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 나는 리서치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대사는 픽션이지만 캐릭터나 시추에이션은 작품 앞에서 놀고 있다. 그것이 주는 어떤 것이 현실과 관련돼 있다고 생각했다.

정지우 오토바이를 타던 무연고 탈북청소년 이야기는 실제다. 물론 거기에 픽션이 가미되긴 했지만..

김동원 실제 뉴스에 보도된, 사건이 바탕이다.


- 각 소재 선택 이유와 영화를 촬영하며, 문제에 공감했던 부분은?

이현승 인권위 법령에는 성(性)·종교·장애 등 19개의 차별 사유가 있지만 굳이 그것들에 얽매이기보다는 감독이 느끼는 지점에서의 느낌을 인권과 연결 지어 다루는 것이다.

장진 나도 차별의 항목에 굳이 연연하지 않았다. 단지 감독의 입장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역설적으로 시추에이션을 꼬아놓고 보니 안티로 보는 분도 많아 나름 고민을 했다. 영화화하면서 느꼈던 점은 노동자들을 위한 법이 존재하지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었다.

정지우 관심이 있어서 제안 받았을 때 먼저 만들고 싶었다. 사실 탈북 문제에 대한 사안들이 너무 정치적으로 복판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태도가 복잡하고 껄끄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항상 담을 넘는 사람들의 이미지만 갖고 있을 뿐이다. 그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김동원 김원섭 동포가 돌아가신 날이 2003년 12월 9일 새벽이다. 그때가 서울 독립영화제 기간이었고 '송환'이 상영되는 날이었다. 나도 대학로 근처에서 새벽까지 술을 먹고 있었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지척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같은 동포지만 미국, 유럽 등에 거주하는 동포와 비교하면 중국 동포는 이 땅에서 심한 차별을 받는다.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싶었다.


- 영화계도 비정규직 인력이 많다. 실제로 영화 활동을 하면서 감독들이 느낀 인권 문제와 관련된 경험이나 피해가 있었나?

이현승 감독들은 처한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변화도 있고. 스크린쿼터 문제가 잠잠할 때 내부 모순을 해결하고 가리라고 영화계에서 생각을 하고 있다.

장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분들도 계시고 소속이 싫어 프리랜서가 된 분도 있다.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나도 시장이다 보니 시장에서 논리적으로 짜놓은 것에 불이익을 당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이 자신 있게 큰소리를 내고 그러지 말자고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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