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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기술 있으니 괜찮다? '논문조작' 자체가 본질

강산21 2005. 12. 19. 09:47
원천기술 있으니 괜찮다? ‘논문 조작’ 자체가 본질
[기고]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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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충격’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 한 달 동안 여러 개의 굵직한 문제점들을 연이어 토해냈다. 하지만 그 어느 이슈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서로 뒤엉켜 있다.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지조차도 혼돈스러운 상태다. 이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되고 해결책이 나오려면 그 본질이 명확히 파악되어야만 한다.
 

‘진실성’은 과학에서 불가침한 절대 규범
논문낼 당시 일부라도 데이터 조작됐다면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 훌쩍 넘은 것
과학계·정부 타협 말고 철저한 조사를

 

첫째, 겨우 초기단계에 있는 줄기세포 연구 추문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라를 뒤흔들고 일반시민과 불치병 환자들에게 절망감을 주는 사건이 되었는가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선진국에서도 연구결과 조작과 이로 인한 논쟁이 때때로 일어난다. 하지만 그에 대해 우리와 같은 국가적 자괴감은 없다.

 

이는 지난해 황 교수팀의 <사이언스>지 발표 때부터 정부 안의 일부 관계자들이 거의 모든 ‘올인’하듯이 그의 연구를 지원하였고 모든 주요 언론 매체들이 줄기세포의 치료적, 경제적 잠재력만을 크게 부풀려 홍보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조만간 하반신 마비자를 걸어다니게 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했고, 경제효과는 수백조원에 이른다고 선전했다. 병원 안에 줄기세포 허브를 만들어 환자들을 곧 치료해줄 것 같은 인상을 짙게 풍겼다.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일이고 의약업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사천리식의 ‘작전’이었다.

 

황 교수팀이 했다는 연구결과가 과학적으로 중요한 대업적이긴 했지만 치료 가능성에 대한 과장이 지나쳤다. 이에 대한 조그마한 경계의 글이나 비판 의사를 발표하면 잘 나가는 사람을 질시한다고 공박을 받았다. 이제라도 줄기세포 연구가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지,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치료효과의 불확실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할 것이다.

 

둘째, 과학이라는 게임의 법칙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과학에서 진실성 (integrity)이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규범이다. 맞춤형 줄기세포를 발표한 2005년 <사이언스>에 논문이 제출될 당시의 데이터가 일부라도 조작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훌쩍 넘은 것이다. 원래는 세포주가 있었는데 오염되었다거나, 논문 발표 몇 개월 뒤에는 실제로 만들어졌다거나, 원천기술은 확보하고 있으니 괜찮지 않느냐 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셋째, 여러 측면에서 윤리의 중요성이 간과되었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생명 윤리 논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난자 실험을 강행했던 터라 난자 취득과정은 투명했어야 했다. 지난해 <네이처> 보도로 이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과오를 시인했어야 한다. 데이터 조작은 실험과학 분야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행위다. 맞춤형 줄기세포가 한 개라도 있으면 됐지 다른 것들이 뭐가 그리 큰 문제가 되겠는가 하는 주장은 과학계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다.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희망을 품었던 불치병 환자와 과학 영웅에 대해 무조건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국민이다. 과학계와 정부는 이번 사건을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듯이 마무리짓지 말고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새로운 연구문화와 환경을 창출하고 실험자들의 윤리의식을 고양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이번 사건이 우리 언론과 소장과학자들에 의해 문제화됐고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정리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문제해결 능력과 밝은 미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syk3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