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통해 알게 된 또 다른 세상 장 정 인 보습학원을 운영하면서 고등학교에 국어 강사로도 출강하고 있습니다. 백일 무렵 큰 병을 앓았던 아들 경준이는 그 후 완쾌되어 여섯 살이 된지금은 아주 건강하다고 합니다. 차가운 계절, 시린 바람의 혹독한 심술이 있기 전까지의 내 삶은 그저 평온하고평탄한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그다지 선행을 베풀며 살진 않았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해는 안 끼치려고 노력하며살았건만…. 몇 번이나 볼을 꼬집고 또 꼬집어 봐도 내게 닥친 엄연한 현실 앞에 망연자실. 차라리 내가 겪어야 할 고통이라면 수백 배, 수천배의 고통이라도 참을 수 있으련만, 늦게 얻은 유일한 나의 혈육이 이 희망 없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생전들어보지도 못했던 병, 우리나라 소아에겐 좀처럼 발생하기 힘들다는 '심근확장증'. 심장의 근육이 늘어나 피가 전신으로 통하지 않아, 숨쉴 때마다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약도 희망도 없는 아들의 병은 내 삶 자체를 함께 무너뜨렸다. 홍수 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세간처럼 내 삶전체가 의욕을 잃은 채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졌다. 대구에서 서울의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 엄청난 속도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 안에서산소통이 덜컹이는 것만큼 나 자신도 흔들리며, 처음으로 알았다. 내 삶이 이렇듯 외줄 타는 곡예란 걸. 부모로서 마지막 도리를 다하기 위해아이를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기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냥 이대로 이 차 안에서 백일을 갓 지난 나의 아들과 고통 없는 세상으로 함께 갔으면 하는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병원 생활. 인간만큼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도 없나 보다. 하얀 시트만큼이나 창백해져가는 어린 천사들은 또새로운 태양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일매일 감사했다. 그리고 똑같은 고통을 겪으면서 서로 위로와 사랑을 베푸는 여러 엄마 덕분에 세상을 또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아들의 병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알 수 없었을 많은 것을 눈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병원 7층의 백혈병병동 어린이들과 그 부모들의 따스한 미소와 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기약 없는 고통의 순간들을 이기고 늘 내게 힘과 용기를 심어주었던 여러엄마의 따스한 사랑이 지금도 가슴에 고이고이 자리하고 있다. 하루에 두 번밖에 면회가 되지 않는 소아 중환자실에 아들을 혼자 남겨놓고 나올때마다, 면회 시간에 엄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나마저 쓰러져서는 안된다는 강한 모성애로 하루에2킬로그램씩 체중이 주는 그 순간을 겨우 견뎌낼 수 있었고, 눈물범벅이 되어서도 억지로 밥알을 넘겼다. 얼핏 든 잠 속에서 아들과 이별하는 꿈을꾸고는 베갯잇을 흠뻑 적시며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내 속의 강한 신념과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심장이 몇번이나 멎었던 아들은, 심폐소생술로 가슴이 다 헤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엄마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심폐소생술의 후유증으로 다시 살아나도사람 구실하기 힘들다는 의사 선생님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고 너무도 건강하고 총명하게 자라나는 사랑스런 내 아들. 나의 아들은 자식이기 이전에나의 스승이다. 서른을 훌쩍 넘도록 나밖에 모르고 그저 내 가족 내 자식밖에 모르던 욕심 많고 겁 많은 엄마를 깨우치게 해준 여리고 작지만위대한 스승이다. 그리고 죽음보다 더 힘든 고통의 순간순간을 함께 울어주고 함께 기도해준 어린이 병동 여러 엄마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싶다. 찬 이슬이 내 가슴을 적시던 어느 날 새벽, 부모의 통곡소리를 뒤로한 채 아주 먼 여행을 떠난 한 어린 천사. 그 애달픈 죽음에몇날 며칠을 함께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중환자실 한쪽에 뇌사 상태로 누워 있으면서 부모의 가슴을 태우는 성현이. 성현이의 침대머리맡에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로 시작되는눈물겨운 기도문이 적혀 있다.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을 차마 끊기 힘들어, 몇 년째 중환자실에서 몸만 자라는 가엾은 어린 천사 성현이. 내가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은 그저 웃고 떠드는 행복한 사람들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었다. 내가 겪은 고통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내 곁에 머물러준사랑하는 나의 아들을 통해, 나 아닌 다른 이웃도 돌아볼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을 가지라고 신이 내게 주신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햇살이 무지좋은 날, 아들과 손잡고 파란 하늘 아래 이렇게 거닐 수 있는 것도, 이 순간 이렇듯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모두 내게 닥쳐온 시련을 잘이겨낸 대가라고 생각한다. 신은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자에게 몇 번의 소중한 기회를 더 주시리라 믿는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영문도모른 채 병마와 싸우고 있는 이 땅의 많은 어린이가 하루 속히 건강과 해맑은 미소를 되찾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더불어 사는 따스한 정이 넘치는세상이 되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월간 샘터 ●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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