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그 사람...

‘오리 농군’으로 부활한 노무현

강산21 2009. 6. 28. 20:30

‘오리 농군’으로 부활한 노무현 [2009.06.26 제766호]
 
서거 한 달 앞둔 봉화마을 주민들, 늘어난 오리 보며 그리움 달래… 추모객 발길도 끝없이 이어져

 

“아이고 세상에, 쩌그가 떨어지면서 부딪힌 데 아녀. 줄 쳐놓은 데 말여. 쩌그서 이렇게 떨어졌으니 원, 쯧쯧.”

“높으구만, 높아. 웬간한 마음 먹지 않고서는 뛰어내릴 수 없었을 틴디.”

“그랑게. 마음을 을매나 독허게 묵었으면….”

»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한 논에서 친환경 오리농법에 이용되는 오리들이 헤엄을 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오리농법을 통해 봉하마을을 ‘깨끗하고 잘사는 생태마을’로 만들고, 생태계를 복원하는 꿈을 꿨다. 봉하마을 주민들은 올해 오리농법 경작 면적을 두 배로 늘리는 등 마을 전체 논에 친환경 농법을 도입해 그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새끼오리 논에 푼 날 3만여 명 몰려

6월17일 오전 11시 50~60대 남녀 10여 명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 봉화산 중턱,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몇몇은 노 전 대통령이 쓰러진 채 발견된 곳의 출입통제선까지 내려가보기도 했다. 봉하마을 곳곳, 줄이란 줄엔 다 빽빽이 매달린 노란색·검은색 추모 리본이 출입통제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환갑이라는 한 여성이 기자에게 휴대전화 카메라 사용법을 물었다. “나는 다리가 아파서….” 10m도 떨어지지 않은 출입통제선 지점은 제법 경사가 있어 내려가볼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그는 대신 그곳과 부엉이 바위를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 있을 때 못 온 게 한이 돼. 돌아가신 자리라도 보고 싶어 왔어.” 일행은 전북 부안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아침 7시에 집을 나섰다고 했다. “정부에서 큰일 하는 사람들이 괜시리 사람 하나 죽였구나 싶어. 마음이 답답하네요.” 그의 눈가가 잠시 젖었다. 이야기를 듣던 추모객 한 명이 “쓸모있는 사람은 다 죽이고…”라며 혀를 찼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봉하마을엔 아직도 추모객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장 때처럼 오열하거나 격하게 분노를 터뜨리는 이는 별로 없지만, 황망함와 억울함은 모두의 것으로 보였다. 전국 각지에서 버스를 대절하거나, 직접 차를 몰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는 이들이 평일엔 7천여 명, 주말엔 1만여 명이라고 분향소 앞 자원봉사자들이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업’이 된 친환경 오리농법을 위해 새끼오리를 올해 처음 논에 풀었던 지난 6월14일엔 추모객이 3만여 명에 이르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봉하마을로 이끄는 힘의 절반은 그리움인 듯했다. 정토원 법당인 수광전, 노 전 대통령의 영전엔 조문객들이 놓고 간 하얀색 국화 더미 옆으로 연노랑 백합 한 다발이 꽃병에 꽂혀 있었다. 전북 장수에 사는 한 중년 남성이 “집 마당에 백합이 활짝 폈는데, 대통령께 바치고 싶다”며 6월16일 밤늦게 찾아와 두고 간 것이라고 했다. 울산에서 동생 부부와 함께 온 한승현(41)씨는 “가장 서민적이고 친근한 대통령이었잖아요. 어느 대통령이 집 앞에 사람들이 찾아와 부른다고 나와서 얘기하고 질문에 대답해줍니까? 나는 그런 점이 참 존경스러웠어요. 그런 사람은 앞으로도 없을걸요”라고 했다.

 

민주주의 되새기는 추모객 “방관이 최악”

정토원에서 매일같이 추모객을 만나는 선진규 원장은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노 전 대통령이) 국민들 마음속에 우찌 그리 깊이 들어가 있었노 싶다”고 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서울·강원·전라·대구 할 것 없이 전국 각지에서 한밤중에도 이 먼 데까지 참배하러 오는데, 이거는 인간적으로 가까운 것을 놓치고 난 뒤의 슬픔이라고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특별한 지지자가 아니라도 노무현한테 친구·형·할아버지 같은 인간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거지요. 노무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세계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봉화산 부엉이 바위로 가는 길이 통제되어 있다.

그리움은 조문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길을 따라 정토원까지 다녀온 추모객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봉하쉼터’에 닿는다. 마을에 단 하나인 이 가게에서 노 전 대통령은 담배를 피워물었고, 손녀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사진을 본 누리꾼들은 그에게 ‘노간지’란 별명을 붙여줬다. 추모객들은 가게 안에 붙은 그의 사진을 보다 이 자리쯤이다 싶은 곳에 앉아본다. 가게 옆, 동네 주민이 파는 ‘노무현 모자’를 사가는 이는 평일 70~80명, 주말 300여 명이다. 사저 앞에서 지지자들을 만날 때나,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둘러볼 때 쓰곤 했던 것과 같은 평범한 밀짚모자에 그의 얼굴이 인쇄된 노란색 스티커 한 장을 붙였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은 평소 “깨어 있는 시민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추모객 가운데선 ‘깨어 있는 시민’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부산에서 온 문세윤(30)씨는 “이제 부산도 한나라당이라고 무조건 뽑아주지는 않을걸요?”라고 했다. 문씨는 “회사 사람들 전부 다 그래요. 우리가 조·중·동에 너무 세뇌를 당했다, 한나라당 견제하려면 제1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된다고요. 요새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통과시킨다고 해쌌는데, 그런 거 막기 위해서라도 부산에서 민주당 뽑아줘야죠”라고 덧붙였다. 학원 강사인 손해진(26)씨는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투표를 안 했어요.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 그게 문제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니 방관이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음에 짐이 생긴 거죠. 이젠 꼭 투표해야죠”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했지만, 봉하마을을 찾은 이들에게 그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금방이라도 술 한잔 달라며 나타날 듯한데…”

봉하마을 주민들은 ‘동네 사람 노무현’을 잃은 상처가 깊어 보였다. 박진섭(50)씨는 “아직도 돌아가셨다는 게 안 믿어집니더. 내가 눈물이 흔한 사람이 아닌데…”라며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을 입구에 공단(본산공단)이 있잖아요. 혹시 거기서 도랑으로 기름이 흘러들지 않을까 걱정을 하셨는지, 새벽마다 자전거 타고 공장 근처 논에 가서 들여다보고 그랬어요. 저녁땁(때)에 (봉하쉼터 앞) 파라솔에 동네 형님들하고 앉아 소주나 막걸리 먹고 있으면 ‘뭐하노? 나도 한잔 도’ 하면서 오셨어요. 술을 많이는 안 해도 같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셨으니까. 시간이 많이 돼서 권 여사님 나오셔서 ‘여보, 갑시다’ 하면 ‘5분만 있다가 갑시다’ 그러는데, 얘기가 5분으로 끝이 납니꺼. 한 30분 있다가 사모님이 조용히 일어서면 그제야 대통령도 ‘같이 갑시다’ 하면서 일어서고 그랬어요. 그렇게 사심 없이 촌에 내려와 농사짓는 사람한테 그라믄 되나.” 박씨가 담배에 불을 붙여 물더니 “후우우” 길게 연기를 내뱉었다. “이명박이가 그래 독하게 안 했으면 대통령이 저래 되셨겠나.”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이 임시 안치된 봉화산 정토원에서 추모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서거 한 달을 앞두고도 봉하마을을 찾는 조문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우리 각자 인생 앞으로 가자.” 노 전 대통령이 민주화운동 투신을 말리는 죽마고우 원창희(63) 오앤엔통상(주) 회장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남은 사람들은 원통함을 딛고 각자 인생 앞으로 가려고 애쓴다. 봉화산 등산로 들머리 산딸기밭 주인은 한 상자 1만원에 산딸기를 팔고, 산 중턱 아이스크림 노점상은 ‘순례’와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래준다. 마을 주민들은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시작한 친환경 오리쌀 생산에 더욱 공을 들인다. 논 면적만으로 8만1300㎡(2만4600평)에서 14만1300㎡(4만2700평)로 두 배가 늘었다. ‘오리 농군’도 2460마리에서 3600마리로 늘어났다. 오리농법을 하지 않는 마을의 나머지 논 65만2200㎡(19만7300평)에선 우렁이농법으로 쌀을 생산한다. 마을 전체에서 친환경 쌀을 생산하는 것이다.

 

(주)봉하마을 대표로 친환경 농사를 이끌고 있는 김정호 전 청와대 기록관리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은 단순히 약을 안 쳐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겠다는 게 아니라, 깨끗하고 잘사는 생태마을 만들기와 생태계 복원을 통한 다양한 생물종의 복원이라는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올 초 논에 판 둔벙(웅덩이) 두 곳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낙동강 물이 화포천을 지나 수로로, 논두렁으로, 논으로 흘러들어오고, 그 물을 따라 미꾸라지·잉어 같은 물고기가 흘러야 생태계가 복원됩니다. 둔벙은 물고기 먹이가 월동하고, 물길을 따라 흐르는 생물이 중간에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중요한 ‘생태계 순환의 매개’지요.” 둔벙 옆 정자에 김 전 비서관의 눈길이 머물렀다. 지난해 노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과 만나 떡을 나눠먹으며 소박한 생일잔치를 했던 곳으로, 인터넷에 ‘호화 생일파티 사진’이란 반어적인 제목으로 사진이 올라 화제가 됐었다. “대통령께서 참 좋아하던 곳인데….” 김 전 비서관이 잠시 말을 끊었다.

 

“먹을거리 차원 넘어 생태계 복원에 관심”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며칠 전 논에 넣은 우렁이 수가 적어 제초가 제대로 안 되는 것 같다는 마을 주민의 전화였다. “예, 형님. 우렁이 푼 지 며칠 안 됐으니까 좀 기다려봅시다. 우렁이는 금방 크기 때문에 지금 풀이 좀 많다고 더 넣으면 안 돼요.” 논 이곳저곳을 살피는 사이 만난 다른 주민에게는 “형님, 오리한테 사료 너무 많이 주지 마이소. 내가 조금 전에 좀 줬다”고 귀띔했다. 주민은 “그랬나. 알았다. 사료 많이 먹으면 내일 일 안 한다”고 답했다. 김 전 비서관은 “오리 때문에 농민들 마음이 많이 순치되는 것 같다. 오리들이 발소리만 들어도 다가오니까 나이 든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생태마을 만들기로 엮인 김 전 비서관과 봉하마을 주민,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각자 인생’은 그렇게 서로의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

앞으로 장례·추모사업은 어떻게

 

49재 비용은 십시일반… 100일재는 서울에서 딱 부러지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는 7월10일 그의 유골이 임시 안치된 경남 김해시 봉화산 정토원에서 치러진다. 이날 49재를 올린 뒤 유골 안장식도 치르는데, 장지로는 봉하마을 2~3곳이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 최종 결정되지 않았다. 선진규 정토원장은 “49재는 정토원에서 올리고, 100일재는 서울에서 딱 부러지게 치르려고 한다”며 “불교에서 100일재는 고인의 유업을 모으고 계승한다는 의미인데, 불교종단협의회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함께 모여 뜻깊게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주일간 치러진 국민장 비용 분담 문제는 우선 정부와 유족 쪽이 협의 중이지만, 문제는 국민장 이후 49재까지 드는 비용과 분향소 운영비 등이다. 봉하마을 김경수 비서관은 “49재까지의 기간에 드는 비용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자조(自助)할 수 있는 부분은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자조해야 한다는 것이 참여정부 인사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밝혔다. 민주당도 의원 50만원, 상임위원장·원내대표단 100만원 정도씩 힘을 보태기로 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충격으로 최근 급성 편도선염을 앓아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에 일주일 동안 입원했던 권양숙씨는 사저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가급적 외출을 삼간 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노건평씨 부인 민미영씨가 가끔 방문해 위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한 김경수·박은하 비서관 등은 권양숙씨 곁을 계속 지킬 것으로 보인다. 김 비서관은 “공무원 신분이 면직되고 자원봉사자가 된다는 것 말고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유족을 모시는 일이나 노 전 대통령 기념사업 등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기념관 설립이나 추모공원 조성 등 구체적인 추모사업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49재 뒤엔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선 이달 초 노 전 대통령 관련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노무현 백서’를 만들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52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