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그 사람...

아아 노무현(이기명)

강산21 2009. 6. 23. 18:17

아아 노무현

[서거 한달]끊지 못하는 모진 목숨...행복하고 미안했던 후원회장 20년

 

 

박 군.
이른 새벽, 부엉이 바위 위에 서 있던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네. 어릴 때부터 오르던 부엉이 바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코 흘리게 시절부터 뛰어 놀던 정든 봉하 마을을 내려다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박 군.
눈앞이 흐려져 글이 써지지 않네. 말라 버린 눈물인줄 알았는데 또 나오네. 죽는 날 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할까. 눈물을 흘리면 뭘 하나. 모두가 부질없는 일인 것을,

머리와 가슴은 없고 몸뚱이만 살아있네.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못 살겠네. 세상에 이렇게 무도한 놈들이 있단 말인가.  

박 군.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오지.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자비를 바라는 것은 이리에게 왜 양의 새끼를 잡아먹고 양의 어미를 울리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고.

왜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이가 갈리도록 미웠고 저주스러웠을까. 상고 출신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 천형의 죄인이란 말인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노무현이 그처럼 죽이고 싶도록 미웠을까.

비록 가난하더라도 소외당하지 않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온 몸으로 살았던 것이 죄란 말인가. 설사 아무리 밉다 하더라도 이 지경으로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런 개만도 못한 세상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박 군.
적지 않은 나이. 이렇게 나이를 먹도록 왜 미워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없겠나. 세상엔 좋은 놈 나쁜 놈 다 섞여 살게 마련이고 나쁜 놈 미워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이 나이가 되도록 요즘처럼 인간을 미워한 적이 없었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런 인간들을 좋아한 인간들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네. 지금은 이들은 양반이란 생각이네. 아아 어쩜 내 마음이 이 지경이 됐단 말인가.

죽을 날도 멀지 않은 내가 이렇게 사람을 미워해도 되는지 딱하지만 내가 죽어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이 미움은 가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네.

가슴이 바삭바삭 말라서 이제는 어디 스치기만 해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네. 하루에 열두 번 씩 떠오르는 부엉이 바위와 그 위에 섰던 대통령, 그리고 이 더러운 세상을 생각할 때 마다 살아갈 이유는 자꾸 사라지는데 치사하고 더럽고 모진 게 인간의 목숨인지 이렇게 살아있다네. 누가 대신 죽여주지 않나.

자네나 나나 평생 글을 쓰면서 먹고 살았는데 솔직히 이젠 글도 안 쓰여 지네. 눈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써 놓고 나면 내가 읽기에도 무섭고 쓰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고 어디 깊은 산속에라도 들어가 움막이라도 파고 살다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네.

새벽에 잠이 깨면 노무현이라는 사람과의 20여년 인연이 선하게 떠오르네. 정치적인 잘잘못이야 다 있게 마련이고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할 정치야 하느님인들 하실 수가 있겠나.

20여 년 동안 후원회장으로 겪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은 날 울리네. 항상 사람의 냄새가 물씬했던 노무현,

낙선의원 시절, 여수 인근의 조그만 농협에 강연을 갔을 때 지독한 독감에 걸려 우유한잔도 못 넘기면서 고열로 신음을 하기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강연 취소하고 돌아가자고 했더니, 자기를 몇 달 동안 기다린 사람들이라며 기어코 강연을 마치고 거의 실신한 채 귀경하던 모습이 떠오르네.

운전하던 최 군이 예비군 훈련으로 내가 대신 운전을 해 조그만 노동조합 강연을 갈 때, 나이 먹은 나를 배려해서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며 자기도 운전 잘하니 걱정 말라고 웃던 그의 모습과 가끔 장거리 운전을 할 때면 미안해하며 뒷좌석에서 좀 자겠다고 바로 곯아떨어지던 그의 지친 얼굴, 담배를 안 피는 나 때문에 내 차에서는 절대로 담배를 안 피던 노무현, 왜 이런 기억들이 날 슬프게 하는지 미치겠네.  

새벽 두시가 되어 돌아오는 귀경길에 <펜 벨트>가 끊어져 오도 가도 못하고 두 시간 가까이 길에 서 있을 때, 똥차로 모신 내가  미안해하면 오히려 자기가 더 미안해하던 모습은 지금 다시 눈물 이 되어 흐르네.

부산 동구에서 허삼수하고 두 번째 붙었을 때 시장에 가면 시장 상인들이 노무현 후보에게 ‘지역구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고 비난을 하네.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하면 끝날 일을 꼭 상인을 붙들고 국회의원과 시의원이 할 일은 따로 있다면서 이해를 시키네. 시장복판에서 유권자와 입후보자가 토론을 벌리는 모습을 보고 운동원들이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겠나.

지리산에서 있은 전국 당원 연수회에서 강연을 마치고 유인태 노무현을 태우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내가 과속으로 전주인근에서 걸렸네. 교통순경이 경례를 하며 “과속입니다” 하다가 노무현을 알아보고는 씩 웃으며 “가십시오.” 할 때 그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며 미안해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

어쩌다가 일요일 날 청와대에서 점심을 함께 할 때 입이 험한 내가 나쁜 놈이라고 이름을 거명하며 욕을 하면 너무 비난하지 말라고 나를 말렸네.

“그 사람들도 본심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정치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언론문제가 심각할 때도 대통령은 적어도 자신이 당선된 후 언론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안 변하더라며 씁쓸해 했네. 내가 그랬지. 개꼬리 3년 묻어놔도 황모 안 된다고. 집권 초기에 언론에 대해 왜 원칙대로 하지 않았나 하고 지금도 한으로 남네.

자신들은 온갖 못 된 짓을 다 하면서 마치 제왕처럼 행세하는 언론들, 이들이 건재하는 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서 썩네.

후원회장이라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도 없이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 법률상담이나 해 달라던 내 한심한 모습, 표에는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 강연에 끌고 가 시간을 빼앗은 내가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후원회장이였다는 생각이 드네. 

난 참으로 행복한 20년 세월을 지냈네. 그와 함께라면 그냥 좋았고, 사람이 어떻게 저토록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할 줄 아는지 경탄을 했고, 그는 관행이라고 해서 슬쩍 넘어가던 온갖 부조리에서 날 구해 주었네.

늘 자식들한테 말했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이 잘 안 될 때 노무현 같으면 어떻게 판단할까 생각하고 그가 결정했을 것이라고 믿는 대로 결정하면 옳은 결정이 될 것이다.”

아내가 내게 한 말이 떠오르네.

“당신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마음의 십분의 일만 나를 사랑하면 당신을 업고 다닐 거예요.”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고 그를 사랑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네. 사람들은 노무현을 위하며 이렇게 기도하네.

“대통령님. 이제 고통을 잊고 편안히 쉬십시오.”

난 다르네.

“대통령님. 눈 크게 뜨시고 이 나라 정치를 지켜보십시오. 어느 놈이 이 나라를 망치는지 보시고 꿈에라도 나타나 정신을 차리게 회초리를 드십시오.”


아아 노무현!

부엉이 바위 위에서 마지막 발을 내딛으며 그가 국민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자넨 알겠지. 나도 안다네. 국민들도 알 것이라고 믿네.

비록 육신은 이 세상에 없어도 그의 영혼은 하늘 위에서 목숨 바쳐 사랑하던 조국과 국민을 지켜 줄 것이네.   

                                                                                    2009. 6. 21.  이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