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그 사람...

지역주의 타파, 끝내 못이룬 ‘필생의 과업’

강산21 2009. 5. 25. 18:44

지역주의 타파, 끝내 못이룬 ‘필생의 과업’

기사입력 2009-05-25 16:35 


[한겨레] [되돌아본 노무현의 길]

부산시장선거·총선 잇단 고배 ‘바보 노무현’

대통령 되고서도 선거법 개정·전국정당 꿈


지역주의는 정치인 노무현의 ‘도전과 좌절’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열쇳말이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필생의 과업”이라고 밝힐 만큼, 지역주의 타파는 그의 정치 인생 최대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지역주의에 대한 도전을 통해, 정책이나 후보자의 인물 됨됨이와 관계없이 특정 정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한국정치의 현실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노력은 실패했다. 분당, 선거제도 개편 요구, 대연정 제안 등 집요할 정도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지만, 지역주의의 견고한 벽을 넘지는 못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노 전 대통령은 몸을 던져 지역주의에 ‘저항’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에 반대해 민자당행을 포기하고 야권에 남았다. 이후 당선 가능성이 큰 서울 출마 권유를 뿌리치고 부산에서 지역주의와 맞섰지만, 1992년 총선에서 낙선한 것을 시작으로, 1995년 부산시장 선거, 2000년 총선에서 잇따라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지역주의에 대한 도전과 실패는 ‘노사모’라는 든든한 지지그룹이 생기는 계기가 됐고, 대통령 당선의 큰 밑거름이 됐다.

지역주의 타파에 ‘대통령 권력’을 걸겠다는 그의 약속은 대통령 당선 이후 구체적 말과 행동으로 이어졌다. 취임 첫해인 2003년 4월 국정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해 달라“며 ”이런 제안이 내년 총선에서 현실화되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권한을 이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해 9월에는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으로는 전국정당화가 불가능하다는 명분으로 민주당을 탈당하고 지역주의 극복을 기치로 내건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2005년 2월 국정연설에서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망국적 지역주의가 극복될 수 없고 국민통합과 선진국가 진입도 어렵다는 논리로 여야 의원들을 향해 소선거구제를 개편해줄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선거구제 개편 주장은 정치권과 여론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지역주의 극복을 통한 정치개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정치적 무리수’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게 2005년 7월 한나라당에 대한 대연정 제안이다. 한나라당이 대연정 제안에 반응이 없자 ”대연정을 않더라도 선거제도만 고친다면 권력을 내줄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는 한나라당은 물론 여당인 열린우리당으로부터도 외면을 받았고, 그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에서 통합신당 창당을 논의할 때에도 “신당 창당은 지역주의 회귀일 뿐”이라며 직격탄을 날려 당시 여권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학)는 “노 전 대통령은 충청·전라도 연합을 통해서 당선됐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선거전략 역시 지역주의였다”며 “집권 기간 지역주의를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전국정당화 등 지역주의 타파에는 결국 실패했다”고 말했다.



[지역주의 타파 관련 어록]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있겠느냐”(2000년 4월 13일, 16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부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지역주의의 결과로서) 가치와 논리의 논쟁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대결하는 정치가 되니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설 땅이 없다”(2005.7.6. 청와대 홈페이지 기고글에서)

“지역주의 극복은 저의 정치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2005.7.28. 대연정을 제안하며)

박병수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