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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잠을 자는 것일까? (상) 벌레에서 인간까지 잠자는 동물세계

강산21 2009. 5. 7. 17:48

왜 잠을 자는 것일까? (상) 벌레에서 인간까지 잠자는 동물세계 2008년 03월 20일(목)

▲ 지난해 가장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은 기록을 갱신한 영국인 토니 라이트. 그는 꼬박 11일 동안 잠을 참아냈다. 
21세기 과학난제 지난해 5월 25일, 영국의 국영방송 BBC는 가장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는 기네스북의 기록이 깨졌다고 보도했다. 1965년 랜디 가드너라는 18세의 미국인 고등학생이 264시간, 그러니까 거의 11일간 학교과학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잠을 자지 않았던 것이 이전의 최고 기록이었다. 이 기록을 깬 인물은 토니 라이트라는 42살의 영국인이다. 그는 꼬박 11일 낮과 밤 동안 잠을 참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차를 마시고 수영을 하고 일기를 쓰면서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냈다고 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하루만 밤을 새도 다음날 낮 동안 밀려오는 잠과 싸워야 한다. 잠은 숨을 쉬고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항상 행해지는 생존에 필수적인 일이다. 사람뿐 아니라 각종 포유류, 새, 양서류, 초파리 등 수많은 동물들도 잠잔다. 지난 1월 31일자 네이처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회충과 같은 선충류 벌레까지도 잠을 잔다고 한다. 미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연구팀은 C. elegans라는 선충류가 잠을 잘 뿐 아니라 수면이 부족할 경우 사람처럼 빨리 그리고 깊이 잠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처럼 잠은 생물의 진화역사에서 아주 오래되었음이 분명하다.

▲ 선충류인 C. elegans라는 벌레도 잠을 잔다. 못잤을 경우, 이 벌레도 사람처럼 빨리 그리고 더 깊이 잠든다. 
그렇다면 수많은 동물은 왜 인생의 상당 시간을 단지 잠을 자는데 소비하도록 진화한 것일까? 잠을 자면 먹지도 못하고 외부의 침입도 알아채지 못하며 자손도 번식시키지 못하는데 말이다. 숨을 쉬고 음식을 먹는 이유는 명확하다. 숨을 쉬어야 체내에 산소가 공급되고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음식을 먹어야 몸에 필요한 에너지가 공급된다.

하지만 잠은 어떤가? 잠을 자지 않으면 피곤을 느끼고 정신집중이 되지 않아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잠을 자는 까닭은 피곤을 몰아내고 정신집중을 높임으로써 생활을 유지해나가기 위해서일까? 과학자들은 이 질문에 아직까지 명쾌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 잠은 숨 쉬고 먹는 것처럼 이유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왜 잠을 자는가는 21세기에 생물학이 풀어야할 난제이다.

최근 수면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놀랄만한 연구들을 내놓았다. 이들 연구로부터 잠을 자는 이유에 대한 여러 주장과 각 주장이 갖는 문제점을 알아보자. 중고등학교 시절, 필자는 시험기간에 새벽에 일어나는 암기과목을 공부하곤 했다. 대부분 친구들은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기로 맘을 먹고선 잠 들면 실제로 못 일어나기 일쑤인데,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짧은 시간동안 외우는 게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벽공부는 아침까지 계속 이어지진 않았다. 중간에 공부를 그만두고 꼭 한두 시간씩 아침잠을 더 청했다. 그러면 암기한 내용이 더 잘 떠오르는 느낌 때문이었다. 한두 시간의 잠이 마치 암기내용을 잘 정리해주는 기분이었다.

필자의 경험처럼 잠이 기억의 저장과 재생,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많이 이루어졌다. 연구에 따르면, 잠은 뇌가 최근에 배운 정보를 정리하고 통합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주며 이를 통해 기억은 안정적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잠은 전날에 공부했던 비주얼적인 대상들을 더 잘 알아보게 해줄 뿐 아니라 전날 연습했던 숫자들을 입력하는데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잠이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는 최근에도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하버드 대학의 연구자들이 잠과 기억의 관련성에 대해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18-30세의 28명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잠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연구팀은 실험 대상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전날 밤 한 그룹은 평상시처럼 잠을 자게 했고 다른 그룹은 전혀 잠을 자지 않도록 했다. 그런 다음 이들 대상자들에게 사람, 물체, 풍경 등이 담긴 150장의 사진을 각각 실내와 실외 사진으로 분류하도록 했다. 이들 실험 대상자 모두는 이틀 동안 푹 쉰 다음, 연구팀은 이들에게 기억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동일한 150장의 사진을 새로운 75장의 사진과 함께 보여주면서 전에 보았던 사진을 얼마나 잘 가려내는가를 알아보았다.

결과는, 잠을 자지 않은 그룹이 잠을 잔 그룹보다 사진을 잘 가려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을 자지 않은 그룹은 원래 사진의 26% 정도를 가려내지 못했다. 반면 잠을 잔 그룹은 14%를 가려내지 못했다. 잠이 기억력에 15%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 수면연구가인 로버트 스틱골드 교수는 “15%가 우열을 나눌 정도로 큰 차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분명 잠은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연구결과가 과연 잠을 자는 이유를 설명해주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가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대학의 제롬 시겔 교수의 생각은 하버드대 스틱골드 교수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15%가 기억력을 높이는데 큰 효과를 주지 않는다고 시겔 교수는 생각한다. 영국 더함 대학의 이사벨라 카펠리니 박사도 “영향이 미미해 잠의 주요 기능이 기억력 향상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잠이 기억력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기억력이 잠을 자는 본질적인 이유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은 어쩌면 우리의 뇌가 평생동안 새로운 정보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치러야할 대가일지도 모른다. 
한편 잠이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들 간의 연결에 영향을 줌으로써 기억과 학습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올 2월 네이처 뉴러사이언스지에 발표되었다. 우리 뇌 안에는 수많은 신경세포인 뉴런들이 수많은 시냅스를 통해 서로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보통 인간의 경우, 뉴런은 1천억 개 정도이고 시냅스는 이보다 더 많은 1백조 개가 있다고 한다. 뉴런들 간에 시냅스 연결을 바꿈으로서 우리 뇌는 정보가 들어오고 처리되며 나가는 것이다. 우리 뇌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80%는 시냅스의 활동에 쓰인다.

미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키아라 시렐리 박사의 연구팀의 구성원들 간에는 잠이 시냅스의 연결정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의견이 있었다. 밤사이 기억력이 강화되려면 잠자는 동안 시냅스의 연결정도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의견과, 반대로 우리 뇌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려면 낮에 강해졌던 시냅스의 연결정도가 밤에는 약해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시렐리 박사 연구팀은 쥐를 대상으로 잠자는 사이 시냅스의 연결정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조사했다. 그러자 잠자는 동안 시냅스에 있는 특정 물질의 수가 50%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쥐의 뉴런을 통해 전기적인 자극을 주었을 때 반응이 약해지는 것을 연구팀은 확인했다.

이 연구를 통해 시렐리 박사는 “잠을 자는 이유가 시냅스의 활동을 줄임으로써 평생 동안 학습을 하거나 적응을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도 못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바로 시렐리 박사가 주장하는 우리가 잠을 자는 이유이다.

잠을 자는 이유가 뇌의 성장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신생아는 하루의 대부분인 20시간 정도를 잠만 자고, 한 돌이 될 때까지 아이는 하루에 평균 14-18시간 동안 잠잔다. 이후 잠자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어 어른이 되면 평균 7-8시간씩 잠잔다.

그런데 갓난아이의 경우 20시간 중 절반 가까이를 렘수면을 취한다고 한다. 렘(REM)수면은 눈동자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수면상태를 말하는데 보통 우리는 렘수면을 취할 때 꾸었던 꿈을 기억한다. 잠은 크게 렘수면과 비렘수면으로 나뉜다. 인간의 경우 렘수면은 막 태어났을 때 가장 길고 5살 정도가 되면 두 시간 정도로 줄어든다. 인간뿐 아니라 대부분의 포유류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까닭에 과학자들은 동물들이 렘수면을 취하는 이유가 뇌 성장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 범고래는 인간과 달리, 갓 태어난 새끼가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 
그런데 2005년 6월, 이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연구결과가 네이처지에 발표되어 화제를 모았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던,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대학의 제롬 시겔 교수가 해양생물에서 예외적인 경우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범고래와 청백돌고래의 경우 새끼는 어른보다 잠을 덜 잔다. 심지어 이들의 경우 갓 태어났을 때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또한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새끼의 수면시간이 늘어났는데, 그럼에도 항상 새끼는 어미보다도 더 적게 잤다.

이들 해양생물의 경우에는 잠이 뇌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뇌 성장이 우리가 잠을 자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잠을 자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어떤 다른 의견들을 갖고 있을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라 단지 할 일이 없어서?

박미용 기자 | pmiyong@gmail.com

저작권자 2008.03.20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