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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취소로 생계막막한 촛불 무대차량 운전기사

강산21 2009. 2. 12. 16:58

면허취소로 생계막막한 촛불 무대차량 운전기사

공공운수연맹 소식 2009/02/12 11:03

 

촛불 집회가 절정에 이르던 6월 29일, 경찰은 촛불을 끄기 위해 제일 먼저 무대차량을 견인하고 압류했다. 무대차량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경찰의 탄압은 거세지고 촛불집회도 차츰 잦아들었다.

촛불집회 무대차량 운전기사인 정씨는 경찰에 의해 면허가 취소됐다.

다시 용산 철거민 참사로 촛불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경찰에 의해서 견인된 촛불무대차량과 그 차량을 운전하던 사람은 잊혀지고 있다.

‘꼼꼼’이 당시 촛불집회 무대차량을 운전했던 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 정창오씨를 만났다.

당시 촛불집회 무대차량인 11.5톤 윙카를 운전했던 정창오씨(58)는 지금 분당 서현역 인근 한 건물에서 경비일을 하고 있다. 운전면허가 취소됐기 때문이다.

“2010년 8월 22일까지 운전면허 시험도 볼 수가 없어요. 그 때까진 운전을 할 수가 없는거예요.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운전만하다 살아왔는데 먹고는 살아야 하고 그래서 경비 일을 하고 있는거죠”

지난 해 6월 말 촛불집회가 절정에 이르고 경찰의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때 정씨의 전화는 불이 났다.

정씨가 살고 있는 주소지 경찰서 뿐만 아니라 차량 등록지인 전남 경찰서에서도 전화가 왔다. 촛불집회에 무대 차량을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도 전화가 많이 오니 솔직히 무섭기도 했는데 촛불 집회에 나갈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약속 했잖아요. 내가 간다고. 그런데 어떻게 해요. 갈등은 했는데 그래도 차를 끌고 나간 거죠”

지난해 6월 28일 시민들이 무대차량을 호위했다

6월 28일 정씨의 차가 촛불집회를 참석하기 위해 남산 1호 터널을 지나올 때였다. 갑자기 경찰이 차량 앞을 막더니 오도가도 못하게 했다.

“그 때는 시민들이 달려나오더라구요. 시민 수백명이 뛰어 오더니 내 차 앞을 막던 경찰차를 들어내서 옮겨서 차가 갈 수 있게 했어요.

시청 까지는 "시민들이 호위해죠서 잘 치뤘어요"

그게 정씨의 무대차량을 사용한 마지막 날이었다. 정씨는 차를 빼면 다시 오기가 힘들 것 같아 아예 시청역 인근에 차를 세워두고 밤을 새웠다. 그리고 6월 29일.

“오전에 시청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경찰이 모이더니 차량을 끌고 가는 거예요. 몇 명이 모여서 항의하고 그랬지만 못 막은거죠”

경찰은 시민들이 아직 모이기 전에 전격적으로 정씨의 차를 견인했다.

“며칠 동안은 차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요. 내 차를 찾으려고 다 찾아다녔는데 없는 거예요. 결국 며칠 뒤에 동대문 전경 숙소에서 발견했어요. 차를 강제로 견인해서 앞 범퍼도 부숴졌죠. 얼마나 속상하던지”

그 다음 부터는 정씨에게 시련의 연속이었다. 먼저 생계 수단인 운전면허가 취소됐다. 1억여원 하는 차량을 빛내서 구입한 정씨에게는 운전면허는 생계 그 자체다.

“행정소송도 하고 했는데 안되더더라구요. 11.5톤 차량을 그대로 방치하고 놀고 있는 거죠. 한달 주차비만 해도 18만원이 드는 형편이에요”

그래서 얼마전부터 경비 일을 시작했지만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 학비도 빠듯해졌다.

“얼마 전에는 벌금도 100만원이 나왔어요. 돈도 벌지 못하고 있는데 벌금까지 나오니까 사실 막막합니다”

정씨가 소속된 운수노조와 화물연대도 노동조합 차원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으나 뚜렷한 해결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촛불 집회 당시에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내 차가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한숨만 나오고 속이 많이 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