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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MB정부 ‘낙하산 인사’ 자격도, 절차도, 검증도 없었다

강산21 2009. 1. 8. 14:09

[커버스토리]MB정부 ‘낙하산 인사’ 자격도, 절차도, 검증도 없었다

기사입력 2009-01-08 13:43 
청와대 총무수석실 행정관이 ‘실세’ 개혁의지 실종, 공기업 인사 난맥상

이명박 대통령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왼쪽)과 차를 마시며 환하게 웃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08년 12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공기관 합동업무보고 현장. 마치 사기업 오너가 직원 회의를 주재하는 듯한 ‘훈시’가 한동안 계속 됐다. ‘오너‘는 이명박 대통령이고 ‘간부직원’은 한국전력 등 34개 공기업 임원이다.

이 대통령은 “조직(혁신)에 자신 없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고 일갈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기관장 중심의 공기업 구조조정을 주문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엄동설한 속 바람만큼 차가웠다.

 

이 대통령은 이어 “공기업 사장이 노조와 서로 잘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해서 노조를 아주 방만하게 되돌릴 수 없는 조직을 만든 전례가 있다”면서 “노조와 잘 지내 임기를 채우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공무원을 몰아붙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는 공기업을 ‘난타’했다. 이에 청와대 한 관계자는 “공기업의 효율성 위기를 지적한 것”이라면서 “과거의 고비용·저수익·비효율 구조를 해체하겠다는 이 대통령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은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할 만큼 보수 좋고 부담 없는 자리다. 2008년 10월 감사원 감사 결과(2003~2005년)는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감사원은 자금운용 규모가 크고 기업적 성격이 강한 한전, 한국가스공사 등 28곳에 대한 감사 결과에 대해 한마디로 “방만한 경영을 했다”고 지적했다.

 

심의 토론 한번 없이 서면의결 공기업의 무책임과 방만 경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소리를 듣고 또 전문성이 없어도 적당히 지낼 수 있어 낙하산 인사에는 ‘딱’이다. 민간기업처럼 반드시 수익을 내야 할 부담도 없을뿐더러 임기가 정해져 있어 자리를 보전하기도 좋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실제 공기업 경영 현장에 투영될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방만한 경영’의 원인이 대부분 낙하산 인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인데 사실상 이 정부 들어 낙하산 인사는 더욱 극심하고 노골적이다. 이명수 자유선진당 대변인이 “참여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비판해온 여당이 그보다 더 큰 낙하산 인사를 펼치면서 공기업 혁신에 나선다면 누가 수긍하겠느냐”고 반문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사실 공기업 기관장과 감사는 법률(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임명된다. 이 법은 공기업 기관장과 감사의 추천→ 심의→의결 →제청 →임명 등의 절차가 빠짐없이 명시되어 있다. 이는 공기업 인사에서 공정·투명·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안정장치이며 낙하산 인사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법적 취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절차는 공기업 CEO와 감사의 경우 사외이사 등으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가 복수로 추천해 공공기관운영위원회(운영위)의 심의·의결을 거친 사람 중에서 주무부처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 법은 2006년 한나라당이 주도해 만든 법이다. 정권교체기마다 반복되는 낙하산 인사 시비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였다. 이 대통령도 지난해 4월 25일 “형식적으로 공모하는 식이면 안 된다”라고 지적하고 “각 부처 산하 공기업 임원을 공모할 때 전문직은 철저히 공모해서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는 “공기업 개혁을 위한 적재적소의 원칙을 적용한 인사”라고 자평한다. 하지만 이에 공감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민주노총이 2008년 12월 21일 밝힌 공공기관의 임원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산하 공공기관 302개 중 101개가 이명박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이 같은 낙하산 인사는 참여정부 시절을 훨씬 능가해 낙하산이 아닌 폭탄투하 인사에 견줄 만하다.

 

이명박 정부는 ‘강부자·고소영·S라인 인사’라는 MB 코드 인사 못지않게 공기업 낙하산 인사도 이명박 대통령의 ‘불량 인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더욱이 임기가 보장된 자리는 사퇴를 종용하다 감사를 실시하거나, 그래도 사퇴하지 않으면 사정기관을 동원해 사법 처리하는 전례없이 막무가내식으로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구본홍 YTN 사장이 출근하려다 노조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돌아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특히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언론사로 공중파 방송채널인 KBS 사장, 케이블 뉴스채널인 YTN 사장, 국내 유일의 통신사인 연합뉴스 경영감독과 사장추천권을 가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위성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사장 등에는 한나라당 방송특보를 지낸 정치적 인물이거나 친 MB인사로 채워졌다. 언론기관에 정당 전력자를 다수 임명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법에 명시된 공기업 임원 임명 절차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경실련이 분석한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장 임명 실태’에 따르면 경실련이 조사 대상으로 삼은 16개 공기업 중 조폐공사, 도로공사 등은 5명의 임추위 면접 대상자를 모두 추천했다. 부산항만항공, 철도공사, 마사회도 면접대상자 6명 중 4명을 추천했다. 기획재정부가 5배수 후보 추천을 권유한 것으로 석유공사와 부산항만공사 등의 공개로 드러났다.

 

재공모 끝에 사장을 결정한 한전은 재공모 결정 과정에서 운영위는 단 한 차례의 토론도 없이 서면으로 원안(인사소위 결정) 의결했다. 공공기관장의 후보 추천과 심사기능이 무력화된 셈이다. 인사소위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구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경실련은 이에 대해 “인사소위가 모법에서 규정한 운영위 기능을 무력화한 것”이라면서 “인사소위의 명단과 회의록이 구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의 의지대로 위원을 구성할 수 있다면 그 심사 결과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분석작업을 진행한 양혁승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임추위를 기관장의 실질적인 추천 기구가 아닌 요식적 기구로 응모자 중 최소한의 부적격자만 걸러내는 역할을 하도록 한정하고 있다”면서 “5배수 후보 추천은 사실상 임추위가 법령에서 정한 실질적 추천 행위를 하지 말고 정부의 최종 판단에 맡기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임추위에서 추천한 후보에 대해 심의·의결할 권한을 갖고 공공기관운영위원회도 법에서 규정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조사 대상 16개 기관 중 주택공사 등 10곳이 심의을 위한 토론 한 번 없이 서면의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임명 후 자격미달로 사퇴하기도 김미영 경실련 정책실 사회팀장은 “정족수를 채울 수 없는 등 회의를 할 수 없을 때만 서면의결하는 게 보통”이라면서 “한 차례 토론도 없이 서면으로 후보 심사와 결정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의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서면결의한 곳은 모두 원안처리되었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실상 정부의 임추위 활동 개입과 운영위 무력화에 따라 정부가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기관장으로 사실상 낙하산 인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러다보니 임명장도 주지 못하고 내정 단계에서 사퇴한 청와대 인사와 마찬가지로 공기업 인사에서도 임명 후 문제가 드러나 곧 사퇴하는 경우도 흔하다. 자격 미달이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아예 신문에 그 문제점이 대문짝만 하게 실리기도 한다.

 

정해진 절차도 무시한 인사라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 공기업 기관장의 인선이 이뤄지는 것일까. 어떤 절차를 통해 정당에 몸담은 특보 출신이 언론기관의 장으로 임명되고, 최소한의 검증도 이뤄지지 않아 임명 며칠 만에 사퇴하는 ‘인사 사고’가 날까.

 

어떻든 임원진 추천위로부터 추천받은 후보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관계부처 장관을 통해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에 보고된다. 민정수석실과 국정원 등은 이들을 대상으로 도덕적 흠결 등에 대한 검증 작업을 벌인다. 대통령은 이 보고를 종합해 최종 인물을 낙점한다.

 

청와대도 이런 추천 및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청와대 기류에 밝은 한 인사는 “청와대와 정부 쪽 인사는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이, 정부 외곽 조직은 총무수석실이 컨트롤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한 공기업 임원으로 임명된 인사는 사석에서 “나도 청와대 총무수석실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공기업 인사는 청와대 총무수석실 소관이 아니다. 청와대 총무수석실은 청와대의 건물을 관리하고 경리, 비품 구매 등 말 그대로 청와대 안살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총무수석실이 공기업 인사에 관여할까.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김백준 총무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절부터 ‘집사’ 역할을 해온 사람”이라며 “그는 누구보다 이 대통령에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청와대의 한 인사는 “지금 누가 대통령에게 인사를 말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인사수석이 없을 뿐 아니라 인사비서관보다 훨씬 힘이 센 서울시 출신 행정관이 외부와 인사를 협의하고 있음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과거 인사수석을 비서관으로 격을 낮춘 것도 인사 난맥의 한 요인인 셈이다.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막심하다. 이인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논문에서 “한국형 통치구조의 핵심은 정치권력을 통해 획득한 정치적 지대(Political Rent)를 금전적 지대(Fnancial Rent)로 연결시키는 ‘빨대’에 있다”면서 공기업 비리나 낙하산 인사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구조의 공기업을 ‘빨대 경제기관’이라고 규정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