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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MB정부 막가파식 물갈이 수법

강산21 2009. 1. 8. 14:19

[커버스토리]MB정부 막가파식 물갈이 수법

기사입력 2009-01-08 13:43 
사퇴 종용→표적감사→사법처리 수순

2008년 8월 24일 KBS이사회 후임 사장 임명제청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KBS 본사 로비에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는 벽보가 붙어 있다. <김문석 기자>
행정안전부 산하기관인 지방자치국제화재단 이상호 이사장은 오래전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지만 계속 출근하고 있다. 이 자리는 1급으로 공직에서 은퇴하면 ‘관례대로’ 가는 자리. 이 이사장 역시 행안부 1급에서 후배를 위해 용퇴 후 이곳으로 왔다. 그러나 단지 과거 정권 때 임명됐다는 이유로 사퇴 종용을 받고 있다. 사퇴에 응하지 않으니 표적 감사가 나온 것은 물론이다. 그 역시 행안부 감사관을 지냈지만 “사퇴를 강요하는 것이 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사퇴할 수 없다”며 직무를 계속하고 있다. 나중에 행안부는 공직 후배가 이사인 재단이사회를 소집해 이사장을 해임하겠다고 나서 고민하고 있다.

 

얄팍한 사업비 지원을 구실로 사퇴를 종용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6월 5일 정세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은 “지난달 중순 통일부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로 물러나달라는 요청을 받아 사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화협은 사단법인으로 정부 산하기관이 아니며 사업비의 일부를 정부에서 보조받고 있을 뿐이다. 통일부는 뒤늦게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변명했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민간단체 인사까지 물갈이 대상 비단 정부 산하기관만 물갈이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아예 정부에서 단 한 푼의 지원도 받지 않는 단체를 물갈이하는 사례도 있다. 민간 건설업체의 모임인 건설공제조합 이모 상임감사는 임기가 상당 기간 남았지만 얼마 전 사표를 냈다. 공제회는 민간 건설업체 모임으로 정부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위’에서 찍어서 사표를 받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퇴 압력을 받는 이 상임감사는 노무현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

 

이 상임감사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공기업도 아니고 민간기업 단체까지 ‘위’에서 사표를 강요하는 것은 문제라고 판단해 버텼다. 건설공제조합은 감사를 해임하기 위해서는 전국 회원사 총회를 소집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수억 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결국 공제회는 이 상임감사의 남은 임기 동안 보수를 보전해주는 조건으로 사표를 받았다. 민간독립기구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과 사무총장도 사퇴 압력에 버티다 사표를 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공직·산하기관 물갈이 전형(典形)은 KBS 정연주 사장의 경우다. 처음에는 사퇴를 유도하다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표적 감사에 돌입, 그래도 버티면 사법처리 절차를 밟는다. 여기에 감사원과 검찰 등 사정기관이 동원된다. 물론 감사와 수사를 통해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도 안 돼면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 해임한다. 문제는 이런 물갈이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감사원과 검찰 등 소위 사정기관이 동원된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1단계 공공기관 예비감사에 이어 5월 6일부터 6월 4일까지 70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2단계 감사를 진행했다. 과거 70~80년대 정보·표적·공안 통치 시대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장에 대한 막가파식 물갈이로 인해 재공모가 속출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각 기관의 임원추천위원회가 최종후보를 임명권자(대통령 또는 부처장관)에게 추천했지만 ‘적임자가 없다’라는 이유로 재공모 결정을 받은 기관으로는 주택금융공사, 코트라, 한국전력, 한국석유공사, 한국전기안전공사, 기술신용보증기금, 한국가스공사, 수출보험공사, 교통안전공단,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철도공사 사장도 재공모에 나섰다.

 

재공모 이유는 현 정부의 코드에 맞는 인사를 최종후보로 올려보내기 위해서다. 주택금융공사는 지난해 4월 공모를 진행해 최종후보 3명을 올렸지만 금융위의 거부로 재공모를 실시했고 결국 임재주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신임사장으로 선출했다. 코트라 역시 현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없다는 이유로 재공모를 실시해 조환익 전 수출보험공사 사장을 새 사장으로 선임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재공모를 받아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을 선임했다. 한편 임명 발표 직전 집단의 반발로 내정을 철회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의 전당 이사장에 김민 전 서울대 교수를 내정했으나 공연예술계의 반발로 철회했고 국립오페라단 단장에 이영조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를 내정했지만 내부의 반대 및 갈등으로 역시 철회했다. 물갈이 인사가 무리하고 졸속으로 이뤄지다 보니 부적격 시비를 불러일으켜 임명된 후 사퇴한 기관장도 속출했다. 지난해 6월 20일 코스콤 사장에 선임된 정연태씨는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자문교수로 활동하는 등 이 대통령의 측근 인사로 알려져 낙하산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정씨가 개인 파산선고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임된 지 불과 11일 만에 물러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따라 코스콤은 재공모해 김광현 전 현대정보기술 상무를 새 사장으로 선임했다.

 

6월 1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에 선임된 장종호씨 역시 부적격 시비로 취임 50일 만인 8월 7일 자진 사퇴했다. 장 전 원장은 의료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의료재단연합회 회장 출신인 점과 강동카톨릭병원 병원장 재직 당시 직원의 건강보험료를 비롯해 각종 세금을 체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코드인사 위해 재공모도 속출 낙하산 인사가 특히 문제되고 있는 분야는 언론계다. 정부 입김이 미치는 언론기관이 정치 성향이 강한 MB 측근 인사로 채워지면서 정부의 언론 장악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방송파업에서 빠진 KBS의 이병순 사장은 정연주 전 사장의 해임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하고 이를 주도했던 KBS이사회가 선출한 인사다. 언론계는 이 사장 취임 후 KBS의 보도 태도가 급속도로 친정부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파업과 해직 사태가 벌어지고 있고, 국제 언론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케이블 뉴스채널 YTN 사태는 한나라당 선대위 방송총괄본부장 출신의 구본홍 사장 임명에서 비롯한 것이다.

 

국내 거의 유일의 통신사로 외신과 지방뉴스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연합뉴스의 최대주주로 경영감독과 사장추천 권한을 가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에 역시 MB 언론특보 출신의 최규철씨가 임명됐다. 이에 연합뉴스 노동조합은 “언론 특보 출신 인사가 연합뉴스의 독립성과 공적 책임에 관한 사항을 업무 영역 중 하나로 하는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을 맡게 된 데 심각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와 맞물려 최근 연합뉴스가 중립적인 통신사에서 친정부적 성향으로 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성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사장에 역시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선대위 방송특보를 지낸 이몽룡씨가 임명됐다.

 

결국 일반 공중파 방송사와 사실상 국내 유일의 통신사, 케이블 뉴스 전문 채널, 위성방송 등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는 언론사는 대부분 MB 언론특보 혹은 친정부적 인사로 물갈이됐다. 이들이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절차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