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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받은 용돈 / 김선영

강산21 2008. 12. 11. 10:27

버스 안에서 받은 용돈 / 김선영
독자칼럼
한겨레

저번주 토요일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친구 생일 선물을 사러 백화점으로 가던 중이었다. 한 할머니가 버스에 오르셨는데, 할머니가 교통카드를 대자 ‘삑’ 소리가 나면서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할머니는 가방과 지갑을 뒤적였지만, 잔돈이 없는 듯했다. 할머니는 난처해하면서 기사 아저씨에게 “죄송하게 됐어요. 나중에 다시 버스 탈 때 드릴게요”라고 했지만, 기사 아저씨는 “아니, 할머니! 돈이 없으시면 꾸어서라도 타셨어야죠. 꾸어서라도 내세요”라고 하면서 봐주려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때 마침 지갑에 잔돈이 있었던 나는 할머니께 천원을 건네드렸다. 할머니는 “어이구, 학생 고마워. 근데 어린 사람한테 받아서 이걸 어쩌나? 학생 학교가 어디야?” 하며 고마워했다. “대학생이에요.” “어이구, 그러면 어떻게 돈을 다시 돌려줘야 하나?” “안 돌려주셔도 돼요.” 그때 뒤에 앉은 한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다시 천원을 건넸다. “할머니, 이거 쓰세요.” 할머니는 반가워하며, 그 돈을 받고 내게 돈을 돌려주려 했다. “괜찮아요, 그냥 그거 쓰세요.” “아니야, 어린 사람한테 받는 것보다는 그래도 어른한테 받는 게 낫지~” 하면서 결국 천원을 돌려줬다. 나도 버스에서 잔액이 없어서 곤란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대신 차비를 내줘서 정말 고마웠다.

 

그렇게 앉아 있다가 내릴 때가 되었다. 그때 뒤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갑자기 지갑을 뒤적이더니, “학생. 이거 받아. 착한 학생 같은데 용돈으로 넣어둬”라고 하면서 용돈을 쥐여주려 했다. 한사코 사양하는 내게 아저씨는 “책이라도 사 봐. 그리고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온다는 것을 기억해” 하면서 결국 2만원을 주머니에 넣어 줬다. 얼떨결에 돈을 받아서 버스를 내린 나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아저씨 돈을 받고 나왔지만 후회하는 마음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아저씨 덕분에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 나도 나중에 기성세대가 된다면, 저렇게 젊은이들을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착한 일은 몇 배가 되어 돌아온다는 진부한 옛말이 신선한 충격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이 돈을 정말 보람 있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꼬리를 이었다. 내게 처음 선의를 베풀었던 그 버스 안의 아주머니 덕분에, 나는 할머니에게 선의를 베풀 수 있었고, 그리고 그런 나에게 아저씨가 선의를 베풀었다는 그 연쇄적인 고리. 선의는 계속해서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선영/경기 구리시 토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