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주 : 지난 9월 21일 학국정치학회 회장(이정희 외대 정치학과 교수)를 비롯한 4명의 학회 임원들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담을 가졌습니다. 한국정치학회는 지난 3월 김영삼 전 대통령, 6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대담을 가진 바 있으며, 대담 내용이 실린 학회 소식지는 한국정치학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
한국정치학회와의 대담 | ||||
9월 21일 한국정치학회 이정희 회장과 정상화 섭외위원장, 황영주 섭외이사, 김유경 섭외간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위해 봉화마을 자택을 예방했다. 인터뷰는 봉하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행해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짧은 연설을 듣고 오전 11시 30분부터 약 3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정희: 매우 건강해 보이십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전직 대통령들을 찾아뵙는 시리즈는 올해가 정부 수립 60주년이기도 하고 해서 전직 대통령들을 방문해서 많이 배우고 좋은 말씀을 듣자는 취지에서 마련했습니다. 편안하게 정치학회 학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 주시면 될 듯합니다. 노무현: 우리는 정치가 하는 일을 대개 그 시기 국민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게 하는 것이라 다들 생각합니다. 저도 그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짧은 기간 동안 국민들이 풍요롭게 살고 있고 편안하게 지낸다고 느끼고 있는데 나중에 보면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짧은 기간에 모든 국민들에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느끼게끔 착각을 심어주는 것이지요. 결국 뒤에 가서 보면 그 때문에 이후의 사람들이 많은 부담을 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정치가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가까운 장래뿐만 아니라 먼 장래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고 넉넉하게 살도록 할 수 있는 그런 전략 즉,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런 목적을 추구해 가야만 비로소 정치를 하는 목적에 이른다고 생각합니다. 중장기적인 관점을 세우는 것이 곧 역사적인 안목, 역사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정치의 목표에 대해서 긴 안목, 역사적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정희: 지금의 말씀을 들으니 먼 훗날에 어떤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국가의 진로가 정해졌느냐를 평가한다는 측면에서는, 역대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대해 큰 흐름 속에서 어떠한 변화를 줄 수 있었고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5년 동안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 보다 더욱 중요할 것 같습니다. 노무현: 국정운영에서는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점에서도 어쨌든 상당한 기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진보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도 미흡하지만 한발 한발 진전해온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재임기간 중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국민을 위한 정책이 정치와 따로 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책이라는 것은 장단기 국민적 이해관계를 말하는 것이고 국민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장단기 전략을 정책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국민들의 선거라는 정치행위가 정책이라는 것과 아무런 상관없이 따로 가고 있으니까 결과적으로 정치라는 것이 국민들을 속이는 결과밖에 안되고, 국민들이 정치 자체를 불신하게 되니까 결국 민주주의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저의 최우선적인 과제였습니다.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을 왜곡시키는 여러 가지 메커니즘이 존재할 수 있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언론의 문제라고 봅니다. 또한 미국에 인종주의가 작용하듯이 그런데 우리 한국에 있는 것은 지역주의를 꼽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화 방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고 생각하는데, 지역주의의 문제가 최종적으로는 국회의 소관이라는 생각도 들고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노력을 시도해 보았습니다만 극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탈지역주의를 목표로 한 정당이 붕괴했고...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점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고 “나는 국정운영에서는 할 만큼 했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는 좌절했다” 하는 식으로 저의 정치적 좌절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정희: 민주당이 호남에 기반한 정당이었고 그것을 뛰어 넘기 위한 노력으로 후보가 되셨을 때,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셨더라도 민주당을 계속 안고 나갔더라면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에서 영남 출신의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구도가 나올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있을 수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그러한 생각도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치에서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두 가지 내용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우리 정파가 승리해서 권력을 잡는다는 정치적 목적이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우리 정파가 이기되 어떤 방법으로 이기느냐에 따라서 즉, 어떤 게임 판에서 어떤 법칙위에서 어떤 방법으로 이기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이기는 것이 퇴보가 될 수 있고 진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치에서 이기는 것이 매우 현실적인 목표인 것에 대해 부인하지 않지만, 이기는 방법이 민주주의 발전을 지향하고 있어야 이기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민주당으로서는 이기지도 못하고 구조적으로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구도에 안주하는 정치를 계속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지역주의 정치 때문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 통합을 통해서 남은 민주당을 호남당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역사적 질곡을 결국 벗어나지 못한데다가 한나라당이 영남에서 그런 것처럼 민주당도 호남에서 경쟁 없이 계속 선거에서 이기게 되니까 이미 지역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정당의 체질로 변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호남당으로 강요당했는데 그 강요된 구조 속에서 정치인들이 독점적 이익을 누리고 호남을 독식하는 기득권을 갖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 호남이 단결하면 이기느냐...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이인제 두 후보가 얻은 표가 김대중 후보보다 500만표가 더 많았습니다. 신한국당이 국가를 부도내고도 그 당 출신의 후보들이 500만표를 더 받은 그 이유가 뭐냐... 투표할 때 그 중요한 순간에 정책보다 지역감정을 먼저 선택하는 것입니다. 영남과 비교해서 호남은 인구수에 있어서 상대가 안 되고 소선거구제에서 소수에다 표의 효율성마저 떨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남의 민심과 호남 정치인들의 정책이 보다 진보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지역주의 구도를 가지고 계속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전국정당이 된다는 것, 정권을 잡는다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와 같은 정당을 가지고 민주주의로, 진보로 갈 수 있느냐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 정당을 만들면 될 만한 여건이었느냐... 확실하게 안 되는 것보다는 될 수도 있는 정당을 선택한 것이니까 현실적으로 당연한 선택이죠. 어떻든 우리 시대의 이상에 준거해서 정치적 목표를 내걸었던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열린우리당은 의미 있는 정당이었고 결과적으로 깨지기는 했지만 정치지도자들의 상식 밖의 행동이 없었더라면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황영주: 국정운영에 있어서의 평가 또는 아쉬운 부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 가장 잘 했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노무현: 예산 구조에 있어 복지 분야의 예산이 20%에서 28%까지 성장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여러 가지 제도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확대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서민들의 생활 안정에 기여한 것은 상당히 잘 한 부분이라 자부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야에서의 예산 확충은 서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데 일조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균형발전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정희: 자율이라는 의미가 주는 효과가 컸다고 봅니다. 공교육을 제자리에 돌려놓지 못한 부분이 아쉽기는 합니다만 또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황영주: 그렇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나라에게 어떤 국가적 과제가 놓여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노무현: 제가 보기는 민주주의를 좀 더 다져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를 좀 더 발전시킨다는 것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가치 하나하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의 수준도 좀 더 높여야 하고요. 다음으로는 한국의 진보주의가 확대,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주의는 민주주의의 보다 심화된 목표를 포함한다고 봅니다. 민주주의가 자유와 평등인데, 물론 평등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많습니다만, 진보라는 것이 평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지요. 진보의 핵심을 연대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전략적인 것이고, 진보가 추구하는 목표가 뭐냐고 했을 때 그것은 평등한 사회라고 봅니다. 그 점에 있어서 저는 진보주의라는 것이 별게 아니라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한국사회에서 평등주의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평등이라는 가치에 대해 좀 더 풀어서 설명을 하고 싶습니다. 황영주: 현존하는 국가체제를 통해 본다면 지금 말씀하신 민주주의의 발전, 진보주의의 발전에 대한 일종의 롤 모델로 제시하고 싶으신 것이 있는지요? 노무현: 미국과 유럽을 비교해서 말하자면 미국보다는 유럽식 모델이고 국가의 크기 특히 재정규모를 기준으로 본다면 통계로 딱 잘라 말하기는 뭐하지만 GDP 대비 국가의 재정규모가 큰 순서로 선진국이고 진보된 사회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특히 학자들이 너무 미국 중심으로 성장이나 복지의 모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정상화: 현재 여러 가지 사안들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만, 현재의 이명박 정부가 당면한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원만하게 해결하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노무현: 한국 사회에서 진보-보수를 이야기하지만 진보 진영은 실질적으로 너무 취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숫자로나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는 토대의 측면에서 즉, 자본의 권력, 정치적 권력, 미디어 조직의 측면에서 진보진영은 너무 취약한 것이 사실이고 사회적 균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의 세력적 토대가 너무 불균형하기 때문에 사회적 균형을 이루는 것이 시급히 요청되고 현 정권도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자유와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의 내재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못했는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균형, 특히 동태적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현 정권의 보수적 정책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만 정치적 원리의 측면에서 보면 보수주의 정책을 보수적 정권이 추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비판과 견제를 통해 그동안의 진보적 성과들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현 정권 또한 보수와 진보가 최소한의 균형을 맞춰 사회적 통합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 정권의 방향에 대해서 제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국민들이 자신의 삶에 중요한 조건인 진보주의적 권리들에 대해서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이정희: 인터뷰의 서두에 말씀하신 것처럼 역대의 정권이 5년 기간에 모든 것을 이룰 수도 없고 그 성과만을 가지고 단편적으로 잘했다 못했다 평가하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는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입장에서 정치학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노무현: 한국의 학문적 수준은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욕심을 부리자면 현실에 대한 분석을 좀 더 치밀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해서 사회적 공론이 형성되는데 기여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또한 단지 전문가이고 지식인이라는 것에만 자부심을 느끼기보다는 자기 존재에 대한 규정을 할 때 지성사회의 일원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의식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학문을 추구해야 학문도 진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희: 다른 어떤 때보다 긴 시간 좋은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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