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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 20년,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강산21 2008. 10. 11. 17:11

시간강사 20년,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기사입력 2008-10-11 10:27 


[한겨레] 2~3과목 맡아도 생계 빠듯…교수자리는 요원

대학교육 대부분 담당 불구 ‘4대 보험’에서 제외


천막농성 400일째

# 1987년 3월 첫 일자리가 생겼다. 경북 안동 한 대학의 하루 6시간짜리 철학 강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대구 시외버스 정류장에 갔다. 2시간 뒤 안동에 도착해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아침 1·2·3교시, 오후 5·6·7교시였다. 거리가 멀어 하루에 몰아서 강의하는 것을 이해해주는 학생들이 고마웠다. 한 시간에 3200원을 받았다. 그해 결혼을 했다.

모교인 영남대와 근처 대구대에서도 강의 자리가 생겼다. 오전에는 영남대, 오후에는 대구대에서 강의했다. 학교에 책을 둘 데가 없어 시커먼 가방에 철학책을 한 보따리씩 넣고 다녔다. 빈 강의실 책상에서 강의 준비를 했다. 어느새 학교에는 교수보다 강사가 더 많아졌다. 아이가 태어났고, 방학 중엔 늘 생활비가 빠듯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렸다. 어떨 땐 벌어 쓴 돈보다 빌려 쓴 돈이 더 많았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올해 21년차 시간강사 김용섭(54)씨는 “첫 강의를 맡았을 때 뿌듯함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하지만 변한 것 없이 20년이 흘렀고, 학생들 가르치는 보람으로 지내던 사이 나 같은 시간강사들은 수만 명으로 늘어났지요.”

# 2008년 9월 8학점, 강의 3개를 구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2개를 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또다른 수도권 대학으로 출근한다. 대구의 한 강의는 결국 포기했다. 용인 집에서 다니려니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 더 많아서다. 시간당 3만5천원에서 4만원을 받는다. 한 달이면 120만원이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서울대 강사가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국의 동료들은 “그 뒤로 강사실 생긴 게 전부”라고 했다. 철학 박사를 따 귀국한 지 3년. 강사 자리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 임용 사이트의 신규 채용 정보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동료들 말처럼 바뀐 건 없었다. 어느새 둘째는 여덟살 초등학생이 됐다.

올해 3년차 시간강사 이한규(43)씨는 “기약이 없다”는 말만 했다. “대부분의 시강들이 학술진흥재단에서 소수한테 제공하는 지원에 목을 매는 실정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수 자리는 더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대학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요구하는 국회 앞 천막농성이 10일로 400일째가 됐다. 시간강사들은 스스로를 ‘원조 비정규직’이라고 부른다. 1977년 교원 지위에서 제외되면서 비정규직의 삶이 시작됐고, 수만 명으로 늘어난 지금도 4대 보험에서 제외된 저임금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9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발표한 대학자율화 2단계 추진 과제에서도, 시간강사 제도 개선 방안은 빠졌다. 교과부 관계자는 “4대 보험 적용 등 처우 개선을 위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는 등 올해 안에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400일째 천막을 지키고 있는 김동애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교원법적지위쟁취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대학 등록금 1천만원 시대에 걸맞은 양질의 교육 여건을 마련해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의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