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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의 '세상 읽기'] 유모차와 싸우는 이명박

강산21 2008. 9. 24. 17:05

"'초딩' 이어서 이젠 '엄마'들과 싸우나"

[홍성태의 '세상 읽기'] 유모차와 싸우는 이명박

[프레시안 홍성태/상지대 교수·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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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검사들과 싸웠는데 이명박은 '초딩'과 싸운다."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나돌던 우스개 아닌 우스개이다. 어린 초등학생들조차 부모와 함께 거리에서 촛불을 밝히고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보도에서 몇 번씩 소개되기도 했지만 '초딩'들은 대단히 논리적이고 실증적이었다. 이렇듯 '초딩'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이명박 세력은 계속 부인하면서 촛불을 끄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심지어 '초딩'마저도 체포해서 '닭장차'에 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실 이 만행이야말로 이명박은 '초딩'과 싸운다는 비난의 원천이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고,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구름을 타는가? 아무리 방송을 장악하고 인터넷을 억압해서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더라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은 세계의 과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명박 세력은 분명히 반과학 세력인 것 같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며 노무현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명박은 국민들에게 '값싸고 안전한 쇠고기'라며 미국산 쇠고기를 강요하고, 그 추종자들은 전임 대통령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라고 선물한 것이다. 잠시 위험 문제를 떠나서 한우 농가를 생각해서라도 노무현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선물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다. 이명박 세력은 한우 농가는 몰락해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촛불 집회에서 드러난 이명박 세력의 문제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니 잠시 이 문제는 접어두도록 하자. 많은 시민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잠시 촛불을 끈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 잠복기가 상당히 긴 광우병으로 죽기 전에 경제 파국으로 많은 시민들이 곧 죽을 수도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은 이런 상황을 촛불이 완전히 꺼지는 것으로 파악한 모양이다. 경찰들이 갑자기 '유모차 부대' 카페에 참여한 시민들의 집에 들이닥쳐서 '대단한 아줌마 열사', '불시에 체포될 것이다', '자꾸 비협조적으로 나올 것이냐', '무조건 출두하라' 등의 폭언과 '협박'을 했다고 한다.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이래서 시민들이 경찰을 '견찰'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경찰청이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우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협박'이라는 것은 본인의 주관적 느낌일 뿐이라고 우긴다는 것이다. 갑자기 집에 들이닥쳐서 전화를 걸어서 영장도 제시하지 않고 체포니 불이익이니 하는 말을 한 것이 과연 할 일을 한 것이고 '협박'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 경찰의 부인은 이런 식으로 다른 경찰들이 불시에 들이닥치거나 전화를 해서 순순히 협조하지 않으면 불시에 체포되고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말을 하더라도 '협박'을 당했다고 느끼지 않을까? 이명박이
전두환을 좋아하는 것 같더니, 이 나라가 전두환의 독재시대로 퇴보해 버렸는가?

국회에서는 더욱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유모차 부대'에 대한 경찰의 수사와 관련해서
어청수 경찰청장은 "어린아이를 이용해서 위험한 시위현장에 데리고 나온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은 한술 더 떠서 "아동을 시위 현장에 데리고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불법 시위 면죄부를 받는다면 앞으로도 유모차 시위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위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데 대해 아동 학대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질의했고, 이에 대해 어 청장은 '면밀히 적용 여부를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범래 의원의 질의와 어 청장의 답변을 보면, 과연 이들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 깊은 의문이 든다.

'유모차 부대'라는 말은 이명박 정부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절박한 광우병 위험을 인식한 주부나 부모들이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함께 모여서 거리로 나선 것을 가리킨다. 촛불 집회와 관련해서 '유모차 부대'는 두 가지 의미를 가졌다. 하나는 아기의 건강과 생명에 대해 절박한 위기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많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기들이 곁에 있으니 철저히 평화적으로 아기의 건강과 생명에 관한 권리를 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이렇듯 절박한 위기 의식과 평화 시위의 상징이었던 유모차에 대해서조차 소화기를 분사하는 만행을 저질러서 시민의 지탄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 나아가 아예 주부들을 연행해서 처벌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초딩'과 싸우는 것으로 모자라서 유모차를 부수고 아기들과 싸우려는 모양이다. 그렇게 하면 촛불이 완전히 꺼져서 다시는 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참으로 한심할 뿐이다. 아직도 촛불이 왜 켜졌는지를 모르고 있는가? 촛불은 이명박 세력이 시민에게 광우병 위험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켜졌다. 광우병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 한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서고 싶은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아기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유모차가 아니라 집을 지고서라도 어디라도 가야 하지 않겠는가? '개독'이 뭐라건, '견찰'이 뭐라건, '떡검'이 뭐라건, '명박'이 뭐라건, '청수'가 뭐라건, 아기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명박 세력은 아기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서야 했던 절박한 심정의 부모들을 향해 '아동 학대'라느니 '불량 엄마'라느니 욕설을 퍼붓고 있다. 이명박 세력은 유모차를 끌고 시위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며 세계에 유례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예찬에 대해 미국에 사는 주부들이 강력히 반박하고 나섰듯이, 이번에도 '선진국'에 사는 한 주부가 이명박 세력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비판하는 글을 '아고라'에 올렸다.

여긴 프랑스 파리인데요, 파리에서도 촛불 집회 한 것 아시죠? 여기도 마찬가지로 유모차들 다 끌고 나와서 집회 잘 하고 잘 놀다가 들어갔습니다. 우리집도 유모차 끌고 나왔습니다(잡혀가겠네~ 근데 어느 경찰에 자수해야 하나?). 여긴 원래 집회 다 그렇게 합니다. 다른 집회할 땐 빨가벗고 돌아다니고. 알바님들 좋아하는 '특수 상황'이라 그런데 왜 그리 평화로운지요?

솔직히 유모차건 손수레건 무슨 상관입니까? 진짜 문제는 정당한 집회, 시위의 자유와 권리=불평불만자들의 사회 전복 혐의 정도로 보는 너희 알바들과 현 집정자들의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이란다.

-물대포 등등 잔뜩 준비했는데 아기가 다칠 것 같으니 짜증나겠지들.
-시위를 폭력으로 몰아붙이려면 한바탕 전투를 치뤄야 하는데 아기들 때문에 평화시위가 되니 짜증나겠지들.
-시위가 폭력적으로 나와야 되는데 그렇게 안하고 아기들까지 데리고 나오니 더더욱 짜증나겠지들.

-이런 기본적인 것(공안정국으로 몰아가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수작하는 짓들) 보면서 토론 어쩌구 해야 하는 나는 짜증 10000배 ('리엘로', 2008년 9월 23일).

공공연히 폭력까지 휘둘러가며 시민들에게 광우병 위험을 강요하는 이명박 세력이야말로 '시민 학대'를 저지르는 '불량 시민'이 아닐까? 이명박은 우리 아기들을 학대하는 차원을 넘어서 아예 광우병의 '마루타'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민들에게 광우병 위험을 강요하는 것으로 모자라서 아기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절박한 '유모차'마저 처벌하자는 이명박 세력이 과연 앞으로 5년 동안 이 나라를 어떻게 망칠 것인가? 건강과 생명이라는 가장 근원적 가치를 심각하게 위협해서 정권의 정당성 자체가 근본적 불신의 대상이 되었거늘, 여전히 문제를 호도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강부자'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절박한 '유모차'마저 처벌하겠다고 하니 이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정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 어청수 경찰청장, 이범래 의원 등이 당장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유모차 부대'의 주부들과 끝장 토론을 벌여서 잘잘못을 명확히 가리는 게 좋겠다. 지금 중국에서는 멜라민이라는 화학물질이 첨가된 분유 때문에 아기들이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광우병 위험을 안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수입'은 이보다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부와 국회의 존재 이유이다. 이명박 세력은 이미 이 존재 이유를 크게 훼손했다. 그런데 '유모차'와 싸우면서 이명박 세력은 이 존재이유에 대한 회의를 더욱 더 깊게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영국 농림부 장관의 '비극'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영국 농림부 장관을 지냈던 존 검머 씨를 기억하나요? 영국에서 광우병 발생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 메이저 총리는 영국 축산업의 몰락을 막고자 광우병에 관한 진실을 덮어두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1990년 5월, 당시 농림부 장관이었던 검머 씨는 자신의 네살배기 딸과 함께 TV에 출연해 "쇠고기가 안전하다"며 직접 햄버거를 먹는 쇼를 연출했습니다. 검머 씨는 "광우병이 동물에게서 인간에게로 전파된다는 증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참조할 수 있는 모든 과학적 증거에 비춰볼 때 쇠고기는 안전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2007년 10월 4일, 검머 씨의 친구 딸이
인간광우병(vCJD)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번에 인간광우병으로 희생된 엘리자베스 스미스 씨는 올해 스물세 살로 버밍험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젊은 대학생입니다 (박상표, 2007).

홍성태/상지대 교수·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
tyio@pressi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