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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통한 한국 알리기에 나이 잊지요"

강산21 2008. 9. 20. 11:55

"컴퓨터를 통한 한국 알리기에 나이 잊지요"

머니투데이 | 기사입력 2008.09.10 16:16


[머니투데이 이정흔기자][[머니위크]은퇴, 그 후의 삶..'반크'최고령 사이버 외교관 최종성 씨]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그의 나이 66세, 최종성(78) 씨는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그가 보는 세상은 달라졌다. 인터넷을 통해 그는 신문이나 뉴스에선 볼 수 없었던 다른 세상까지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나이 74세, 컴퓨터를 통해 세상 알아가는 재미에 한창 빠져있던 그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반크'를 알게 됐다. 세계에 한국을 홍보하고 나아가 한국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점들을 바로 잡는, 민간외교관 역할을 자처하는 단체다.

반크와 관련된 소개 글을 읽자마자 최 씨는 무릎을 탁 쳤다. 늘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던 평소 바람과 너무나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최 씨는 반크 회원으로 가입하고 영문 자기소개서를 남겼다. 그리고는 한 달의 교육 과정을 받고 시험을 통과해야만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이버외교관에도 신청서를 냈다. 얼마 뒤 그는 반크로 부터 '당신을 사이버 외교관으로 위촉한다'는 편지를 한 통 받아들게 된다. 반크에서 활동하는 1500여명의 민간외교관 중 최고령 사이버외교관이 된 것이다.

◆컴퓨터로 만난 새로운 세상

"나라 없는 설움이 어떤 건지 요즘 젊은이들은 모릅니다. 내 나라가 없다는 건 이 지구상에 고아가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내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남들에게도 알리는 건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반크의 활동을 설명해 달라는 부탁에 최 씨의 목소리가 금세 높아진다. 그도 그럴 것이 최 씨는 일제 강점기를 직접 겪은 세대다. 그가 중학생 무렵에야 해방을 맞았다. 나라 없는 설움을 직접 겪으며 학창 시절을 보낸 그의 인생은 이후에도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한민국 국군을 창설할 당시 하사로 입대, 군인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6.25전쟁을 겪으며 강원도 횡성전투에서 중공군 포로가 되는 고초를 겪는다. 2년 8개월 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포로 생활 끝에 그는 휴전과 동시에 석방됐고, 군대로 다시 복귀한다. 그리고 그의 나이 44세, 그는 30년 가까운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1975년 중령으로 예편하게 된다.

은퇴를 맞이하고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했다. 평생을 군인으로만 살아왔기에 각박한 세상물정조차 어두운 때였다. 사업에 뛰어들어 보기도 하고 기업체에 취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 발붙이고 살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하던 그는 조용한 전원생활을 꿈꿨다. 부인의 고향인 마산에 터를 잡고 밭을 일구고 농사일을 지으며 은퇴 생활을 보냈다. 재향군인회나 경주 최 씨 종중의 일을 돌보기도 했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생활을 이어갔지만 그는 왠지 모르게 답답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고 싶었던 그는 할아버지가 다 돼서 "컴퓨터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니까 젊은 사람들도 컴퓨터를 낯설어 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머리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컴퓨터를 배우겠다고 하니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죠. 배울 때는 힘들었지만 덕분에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잖아요. 반크라는 재산도 얻을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아우나 후배들을 보면 꼭 강조합니다. 노인네가 컴퓨터 배워 어디에 써먹나 싶겠지만 그래도 꼭 컴퓨터만큼은 배워 놓으라고요."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내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 최 씨가 컴퓨터를 통해 만나는 사이버 세상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리고 최 씨는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을 교류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몇번이고 강조한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이 사회를 살아나가는 사람으로서 컴퓨터 모든 사람이 지녀야할 필수 무기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반크의 최고령 사이버 외교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마산지역 월드컵 자원봉사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컴퓨터 덕분이었다. 인터넷을 서핑하던 중 '월드컵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나이 먹은 노인네에게 일을 시켜줄까"라는 생각이 들어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이 먹었다고 못할게 뭐냐"는 마음으로 바뀌어 갔다. 찬찬히 모집 공고를 읽고 신청서를 낸 것이 덜컥 합격한 것이다. 그의 나이 72세, 그때도 그는 이미 최고령 월드컵 자원봉사자였다.

대학생이 대부분인 월드컵 자원봉사자들과 섞여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최씨는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열정에 최씨도 함께 동참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당시의 좋은 추억이 반크의 사이버 외교관으로 활동을 하는 데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최씨의 설명이다.

"반크 역시 월드컵 자원봉사 때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서핑 중 우연히 알게 된 단체였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반크라는 조직의 취지가 너무나 공감이 가는 겁니다. 젊은이들과 어울려 삶의 활력을 얻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이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활동하는 데도 두려움 같은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대감이 많았죠."

자기소개서를 남기고 소모임에 가입하고 동기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과정에서도 그는 스스럼이 없었다. 나이 어린 친구들이지만 각자에게 배울 점이 많았고, 최씨는 조금씩 활동 영역을 넓혀 지금은 반크의 사이버외교관으로서 누구 못지않은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사이버외교관으로서 최 씨의 가장 큰 임무는 외국의 친구들과 펜팔을 주고받으며 대한민국에 대해 제대로 알리는 것. 지금도 그는 일주일에 한번씩은 외국의 친구들과 꾸준히 펜팔을 주고 받는다. 처음에는 한두명으로 시작한 펜팔 친구가 지금은 꽤 여럿으로 늘었다. 최 씨는 "펜팔을 통해 독일에 딸도 한 명 생겼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독일 여성과 펜팔을 주고받던 중 최 씨의 나이를 알게 된 그 여성이 최 씨를 'father'라고 부르면서 아예 딸을 삼게 됐다는 것이다.

요즘 가장 많은 편지를 주고받는 이는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30대의 커리어 우먼 조이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독도를 비롯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고 조이스로부터 "한국에 대해 모르던 사실을 알게 돼 감사하다"는 답장을 받을 때가 가장 뿌듯하다는 것이 최 씨의 설명이다.

"최근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 중국이 동북공정이니 뭐니 우리를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려는 것, 이런 것들을 바로 잡는 게 모두 반크의 일입니다. 세계에는 아직도 대한민국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일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더 정확하게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영어 실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최씨는 오래 전부터 영어 공부에도 열중하고 있다. 집 근처 경남대학교와 마산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하루 2시간씩 4년 동안 빠뜨리지 않고 영어 강좌를 수강해 왔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이라지만 젊은 사람들이 대다수인 그곳에서 자연스레 어울려 영어를 공부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최 씨는 "아직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그 배움을 보람 있는 일에 써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고 말한다.

"인내심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졌다 해도 인내심이 없으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늙은 나이에 컴퓨터를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새로운 인생을 만날 수 있었던 비결은 단 하나, 바로 인내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어떤 뜻을 품었든,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바를 꼭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최종성 씨. 그 비결로 인내심을 강조하는 최 씨의 이야기에서 80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 동안 그가 쌓아온 삶의 깊이와 지혜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