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뜰 때까지 우리는
산동네에 소복이 밤이 내리면, 유난히 개 짖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자정이 지나 애국가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창가에 하나 둘 씩 불이
꺼지면, 배추 속처럼 뽀얀 얼굴로 지붕을 쓰다듬으며 내려온 달빛은 앞
마당 수돗가에서 얼굴을 씻는다.
수연이네 가족이 산동네에 세 들어 산지도 2년이 넘었다. 수연이
아빠 최씨는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해가며 강아지 풀처럼 억세게 살아
왔고, 이즈막엔 늘 공사판으로 떠돌아 다녔다. 수연이 엄마는 막내 영재
가 세 살 되던 해부터 집에서 멀지않은 봉제공장으로 일을 다녔다.
아침에 얼굴을 감춘 분꽃이 치마폭을 활짝 펼치면 엄아가 돌아왔
다. 엄마를 기다리며 수연이의 눈은 하루하루 분꽃의 새까만 씨앗을 닮
아갔다. 야간 작업이 있는 날이면 종종 엄마는 늦게 들어왔다. 귀뚜라미
소리 들리는 늦은 밤까지 엄마가 오지 않는 날이면 수연이는 짐든 동생
들 옆에 쪼그리고 앉아 창문 밖에서 들려올 엄마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
였다.
동생들은 하루 한차례씩 엄마가 보고 싶다며 떼를 썼다. 그러면 수
연이는 동생들 손을 잡고 한참을 걸어 엄마가 일하는 공장으로 갔다.
그러나 야단 맞을까봐 차마 엄마를 부르지 못하고 봉제공장의 분진이
빠져나오는 환풍기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그곳으로 까칠한 얼
굴을 디밀고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가 공장에서 일하다 쓰러졌다. 엄마는 꽃송이 같은 세 점 분신을 남겨
두고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6살이 왼 막내 영재가 엄마 사진 위에 붙여놓은 밥풀을 볼때마다
수연이는 눈물이 났다. 시간이 지나 갈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봉숭
아 꽃물처럼 수연이 마음 속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엄마가 떠나 버린 해 겨울 수연이에겐 또다시 커다란 불행이 닥쳐
왔다. 아빠가 작업 중 추락 사고로 대퇴골과 슬개골이 골절되었고, 신경
까지 손상을 입어 왼쪽다리를 거의 쓸수 없게 된 것이다. 몇 달 간 병
원에 있다가 추운 겨울이 되서야 최씨는 목발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껌과 초콜릿을 들고 공원과 음식점을
돌아 다녔다.
수연이는 동생들을 데리고 차가 많이 다니는 큰길까지 나왔다. 거
리에는 온통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하얀 입김을 내
뿜으며 걷고 있었다. 거리 한쪽에는 구세군 아저씨가 '딸랑딸랑' 종소리
를 내며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불우한 우리 이웃들에게 따뜻한 온정
을 베풉시다!"
"영욱아, 영재야. 우리 이제 집으로 가자. 누나가 집에 가서 라면 끓
여줄께."
"알았어, 누나."
수연이는 두 손으로 영재의 귀를 감싸고 길을 걸었다. 그때 멀리있
는 최씨의 모숩이 보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시 보았지만 분명히
아빠였다. 수연이는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누나, 저기 아빠있다."
"아냐 영욱아. 아빠 아냐 아빠가 왜 저기 있니?"
"아빠 맞아, 누나 아빠야."
최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영욱이를 수연은 붙잡았다.
"가지마, 영욱아. 아빠가 우리를 보면 슬퍼 할지도 몰라."
그렁그렁 맺힌 눈물 때문에 수연의 눈에는 최씨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최씨는 지친 모습으로 목발에 몸을 기댄 채 건물에 유리문 앞
에 서 있었다. 그는 그 앞에 서서 우유나 물도 없이 허겁지겁 봉지에
든 빵을 먹고 있었다.
어린 동생들과 길을 걸으며 수연이는 눈물을 닦았다. 힘겹게 고개
를 오르는 아이들의 얼굴위로 함박눈이 풀풀 날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연이는 동생들을 데리고 눈 쌓인 작은 성
당의 앞마당으로 들어갔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계단 위에는
커다란 종이 상자가 있었다. 상자 안은 헌 옷들로 가득차 있었다. 상자
안을 들여다 보며 수연이는 아빠의 낡은 점퍼를 생각했다. 수연이는 점
퍼 하나를 손에 들고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그
때 성당의 한 쪽문이 열리더니 중년의 수녀가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얘들아, 추운데 여기서 뭐해?"
수연이는 수녀의 얼굴을 바라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 옷 필요하니? 네가 입기에는 클 것 같은데."
"아빠 주려구요."
"그랬구나. 그럼 아빠 갖다드리렴."
"근데 아가들이 추워서 안 되겠다. 우리 안으로 들어가자."
수녀는 아이들과 함께 성당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는 마르티나 수녀야. 너는 이름이 뭐니?"
"수연이요. 최 수연."
"수연이는 몇 살이야?"
"열 두 살이요......"
"원래는 그런데요. 지금은 일 년 동안 학교를 쉬고 있어요."
"왜 어디가 아프니?"
"아니요 아빠가 많이 아팠거든요. 동생들도 봐야 하구요."
"엄마는?"
"안 계세요. 돌아 가셨어요."
"응, 그랬구나. 수연이는 정말 착하네."
"이 새 이름이 뭐예요?"
사무실 한쪽 새장 앞에 얌전히 쪼그려 앉아있던 영욱이가 새장 안
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십자매라는 새야. 예쁘지?"
"네."
영욱이와 영재는 신기한듯 이리저리 새장을 두들겨 보았다. 수연이
는 죽은 엄마의 눈매를 꼭 닮은 마르티나 수녀의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
보았다.
그 후로도 수연이는 동생들을 데리고 자주 성당에 갔다. 그리고 영
욱이와 영재는 마르티나 수녀로부터 성당에 있던 십자매를 선물로 받았
다. 동생들은 방 한쪽에 놓여있는 십자매를 바라보며 온종일 즐거워 했
다. 하지만 방세 때문에 주인 아줌마가 성난 얼굴로 다녀간 후로 어린
수연이의 마음은 너무나 불안하고 무거웠다.
"엄마가 있었으면 이렇게 춥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지 누나?"
영욱이가 말했다. 동생의 말이 마음 아파 수연이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주인 아줌마 몰래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 위 솥에서 펄펄 끓고
있는 뜨거운 물을 큰 주전자에 가득 담았다.
"누나 너무 따뜻하다."
주전자를 어루 만지며 신이 난 영욱이가 말했다. 영재는 따뜻해진
손을 수연의 볼에 대고 해맑게 웃었다. 주전자 위에 빨간 단풍잎 처럼
올려진 여섯 개의 손을 엄마는 창문 밖 겨울 햇살이 되어 슬프게 바라
보고 있었다.
"누나는 엄마 보고 싶지 않아?"
"누나가 말한대로 매일매일 엄마 생각하면서 잤는데도 엄마가 보이
지 않아."
"영욱아, 이리와."
수연이는 영욱의 얼굴을 품에 꼬옥 안았다.
"영욱아 가만히 들아봐. 무슨 소리 들리지 않니?"
"응, 누나,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
"그럼 이제 눈을 감아봐. 지금 들리는 소리가 너에게로 오는 엄마의
발 소리야. 눈을 뜨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리고 엄마 얼굴을 생각해."
수연이는 터지려는 울음을 참으며 영욱이를 더욱 꼬옥 안았다.
"여보, 지난번엔 우리가 수연 아빠한테 너무했던 것 같아요."
주인집 여자가 말했다.
"당신도 그게 마음에 걸렸었구만."
"어린 것들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에게 이
엄동설한에 방을 빼달라고 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임자는 진짜 그럴 셈이었나? 말이 그렇다는 거였지. 수연 아빠 아
직 안 나갔겠지?"
"아직 안 나갔을 거예요. 열한시나 넘어야 나가니까."
"안나갔으면 아침이나 함께하면 어떨까?"
"그게 좋겠네요. 그땐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
"그럼 서둘러서 아침 준비 하라구. 나는 가서 수연 아빠 데리고 올
테니까."
주인 남자는 마당을 지나 수연네 방으로 갔다.
"수연 아빠? 수연 아빠 안에 있어요?"
방 안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주인 남자는 방문 왼쪽에 있는
창문으로 방안을 슬쩍 들여다 보았다. 그 순간 그는 몹시 놀라며 창문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창문 가까이에 있는 십자매들이 새장 바닥으로 떨어진 채 죽어있었
다. 주인은 서둘러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이미 연탄가스
로 가득차 있었고, 아이들의 입에서는 가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모두들 무사하니 정말 다행이에요. 오늘 아침에 제 남편이 그 방에
가보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요? 정말 하늘이 도우셨지."
병실에 누워있는 최씨를 바라보며 주인집 여자가 말했다.
"내가 십자매 죽은걸 보았기에 망정이지 정말 큰일날 뻔했어요. 수
연 아빠, 그 동안 우리가 잘못했어요. 당분간은 방세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내일부터라도 인부들 불러서 새로 방을 고칠테니 연탄가스 걱정
일랑 안 해도되요."
"고맙습니다. 늘 폐만 끼쳐 드려서 어쩌지요?"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참 그리고 아침에 수녀님 한 분이 다녀 가
셨는데 수연이를 찾기에 여길 가르쳐 드렸어요."
환자복 차림의 수연이는 주인집 여자의 말에 놀랐다. 바로 그때 병
실 문이 조용이 열리며 한 손에 노란 프리지어 꽃을 들고 마르티나 수
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수연아......"
마르티나 수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수연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르티나 수녀의 품으로 달려갔다. 어깨
를 들먹이며 울고있는 수연이의 입에서는 신음처럼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 엄마! 엄마......"
창 밖에선 소리없이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로 떠나간 엄마
는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채 병실유리창을 통해 울고있는 수연이를 바
라보고 있었다.
닿을수 없는 그리움으로 눈송이 처럼 하얗게 눈물을 흘리면서......
<연탄길 / 삼진기획>
산동네에 소복이 밤이 내리면, 유난히 개 짖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자정이 지나 애국가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창가에 하나 둘 씩 불이
꺼지면, 배추 속처럼 뽀얀 얼굴로 지붕을 쓰다듬으며 내려온 달빛은 앞
마당 수돗가에서 얼굴을 씻는다.
수연이네 가족이 산동네에 세 들어 산지도 2년이 넘었다. 수연이
아빠 최씨는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해가며 강아지 풀처럼 억세게 살아
왔고, 이즈막엔 늘 공사판으로 떠돌아 다녔다. 수연이 엄마는 막내 영재
가 세 살 되던 해부터 집에서 멀지않은 봉제공장으로 일을 다녔다.
아침에 얼굴을 감춘 분꽃이 치마폭을 활짝 펼치면 엄아가 돌아왔
다. 엄마를 기다리며 수연이의 눈은 하루하루 분꽃의 새까만 씨앗을 닮
아갔다. 야간 작업이 있는 날이면 종종 엄마는 늦게 들어왔다. 귀뚜라미
소리 들리는 늦은 밤까지 엄마가 오지 않는 날이면 수연이는 짐든 동생
들 옆에 쪼그리고 앉아 창문 밖에서 들려올 엄마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
였다.
동생들은 하루 한차례씩 엄마가 보고 싶다며 떼를 썼다. 그러면 수
연이는 동생들 손을 잡고 한참을 걸어 엄마가 일하는 공장으로 갔다.
그러나 야단 맞을까봐 차마 엄마를 부르지 못하고 봉제공장의 분진이
빠져나오는 환풍기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그곳으로 까칠한 얼
굴을 디밀고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가 공장에서 일하다 쓰러졌다. 엄마는 꽃송이 같은 세 점 분신을 남겨
두고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6살이 왼 막내 영재가 엄마 사진 위에 붙여놓은 밥풀을 볼때마다
수연이는 눈물이 났다. 시간이 지나 갈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봉숭
아 꽃물처럼 수연이 마음 속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엄마가 떠나 버린 해 겨울 수연이에겐 또다시 커다란 불행이 닥쳐
왔다. 아빠가 작업 중 추락 사고로 대퇴골과 슬개골이 골절되었고, 신경
까지 손상을 입어 왼쪽다리를 거의 쓸수 없게 된 것이다. 몇 달 간 병
원에 있다가 추운 겨울이 되서야 최씨는 목발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껌과 초콜릿을 들고 공원과 음식점을
돌아 다녔다.
수연이는 동생들을 데리고 차가 많이 다니는 큰길까지 나왔다. 거
리에는 온통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하얀 입김을 내
뿜으며 걷고 있었다. 거리 한쪽에는 구세군 아저씨가 '딸랑딸랑' 종소리
를 내며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불우한 우리 이웃들에게 따뜻한 온정
을 베풉시다!"
"영욱아, 영재야. 우리 이제 집으로 가자. 누나가 집에 가서 라면 끓
여줄께."
"알았어, 누나."
수연이는 두 손으로 영재의 귀를 감싸고 길을 걸었다. 그때 멀리있
는 최씨의 모숩이 보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시 보았지만 분명히
아빠였다. 수연이는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누나, 저기 아빠있다."
"아냐 영욱아. 아빠 아냐 아빠가 왜 저기 있니?"
"아빠 맞아, 누나 아빠야."
최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영욱이를 수연은 붙잡았다.
"가지마, 영욱아. 아빠가 우리를 보면 슬퍼 할지도 몰라."
그렁그렁 맺힌 눈물 때문에 수연의 눈에는 최씨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최씨는 지친 모습으로 목발에 몸을 기댄 채 건물에 유리문 앞
에 서 있었다. 그는 그 앞에 서서 우유나 물도 없이 허겁지겁 봉지에
든 빵을 먹고 있었다.
어린 동생들과 길을 걸으며 수연이는 눈물을 닦았다. 힘겹게 고개
를 오르는 아이들의 얼굴위로 함박눈이 풀풀 날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연이는 동생들을 데리고 눈 쌓인 작은 성
당의 앞마당으로 들어갔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계단 위에는
커다란 종이 상자가 있었다. 상자 안은 헌 옷들로 가득차 있었다. 상자
안을 들여다 보며 수연이는 아빠의 낡은 점퍼를 생각했다. 수연이는 점
퍼 하나를 손에 들고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그
때 성당의 한 쪽문이 열리더니 중년의 수녀가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얘들아, 추운데 여기서 뭐해?"
수연이는 수녀의 얼굴을 바라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 옷 필요하니? 네가 입기에는 클 것 같은데."
"아빠 주려구요."
"그랬구나. 그럼 아빠 갖다드리렴."
"근데 아가들이 추워서 안 되겠다. 우리 안으로 들어가자."
수녀는 아이들과 함께 성당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는 마르티나 수녀야. 너는 이름이 뭐니?"
"수연이요. 최 수연."
"수연이는 몇 살이야?"
"열 두 살이요......"
"원래는 그런데요. 지금은 일 년 동안 학교를 쉬고 있어요."
"왜 어디가 아프니?"
"아니요 아빠가 많이 아팠거든요. 동생들도 봐야 하구요."
"엄마는?"
"안 계세요. 돌아 가셨어요."
"응, 그랬구나. 수연이는 정말 착하네."
"이 새 이름이 뭐예요?"
사무실 한쪽 새장 앞에 얌전히 쪼그려 앉아있던 영욱이가 새장 안
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십자매라는 새야. 예쁘지?"
"네."
영욱이와 영재는 신기한듯 이리저리 새장을 두들겨 보았다. 수연이
는 죽은 엄마의 눈매를 꼭 닮은 마르티나 수녀의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
보았다.
그 후로도 수연이는 동생들을 데리고 자주 성당에 갔다. 그리고 영
욱이와 영재는 마르티나 수녀로부터 성당에 있던 십자매를 선물로 받았
다. 동생들은 방 한쪽에 놓여있는 십자매를 바라보며 온종일 즐거워 했
다. 하지만 방세 때문에 주인 아줌마가 성난 얼굴로 다녀간 후로 어린
수연이의 마음은 너무나 불안하고 무거웠다.
"엄마가 있었으면 이렇게 춥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지 누나?"
영욱이가 말했다. 동생의 말이 마음 아파 수연이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주인 아줌마 몰래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 위 솥에서 펄펄 끓고
있는 뜨거운 물을 큰 주전자에 가득 담았다.
"누나 너무 따뜻하다."
주전자를 어루 만지며 신이 난 영욱이가 말했다. 영재는 따뜻해진
손을 수연의 볼에 대고 해맑게 웃었다. 주전자 위에 빨간 단풍잎 처럼
올려진 여섯 개의 손을 엄마는 창문 밖 겨울 햇살이 되어 슬프게 바라
보고 있었다.
"누나는 엄마 보고 싶지 않아?"
"누나가 말한대로 매일매일 엄마 생각하면서 잤는데도 엄마가 보이
지 않아."
"영욱아, 이리와."
수연이는 영욱의 얼굴을 품에 꼬옥 안았다.
"영욱아 가만히 들아봐. 무슨 소리 들리지 않니?"
"응, 누나,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
"그럼 이제 눈을 감아봐. 지금 들리는 소리가 너에게로 오는 엄마의
발 소리야. 눈을 뜨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리고 엄마 얼굴을 생각해."
수연이는 터지려는 울음을 참으며 영욱이를 더욱 꼬옥 안았다.
"여보, 지난번엔 우리가 수연 아빠한테 너무했던 것 같아요."
주인집 여자가 말했다.
"당신도 그게 마음에 걸렸었구만."
"어린 것들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에게 이
엄동설한에 방을 빼달라고 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임자는 진짜 그럴 셈이었나? 말이 그렇다는 거였지. 수연 아빠 아
직 안 나갔겠지?"
"아직 안 나갔을 거예요. 열한시나 넘어야 나가니까."
"안나갔으면 아침이나 함께하면 어떨까?"
"그게 좋겠네요. 그땐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
"그럼 서둘러서 아침 준비 하라구. 나는 가서 수연 아빠 데리고 올
테니까."
주인 남자는 마당을 지나 수연네 방으로 갔다.
"수연 아빠? 수연 아빠 안에 있어요?"
방 안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주인 남자는 방문 왼쪽에 있는
창문으로 방안을 슬쩍 들여다 보았다. 그 순간 그는 몹시 놀라며 창문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창문 가까이에 있는 십자매들이 새장 바닥으로 떨어진 채 죽어있었
다. 주인은 서둘러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이미 연탄가스
로 가득차 있었고, 아이들의 입에서는 가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모두들 무사하니 정말 다행이에요. 오늘 아침에 제 남편이 그 방에
가보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요? 정말 하늘이 도우셨지."
병실에 누워있는 최씨를 바라보며 주인집 여자가 말했다.
"내가 십자매 죽은걸 보았기에 망정이지 정말 큰일날 뻔했어요. 수
연 아빠, 그 동안 우리가 잘못했어요. 당분간은 방세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내일부터라도 인부들 불러서 새로 방을 고칠테니 연탄가스 걱정
일랑 안 해도되요."
"고맙습니다. 늘 폐만 끼쳐 드려서 어쩌지요?"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참 그리고 아침에 수녀님 한 분이 다녀 가
셨는데 수연이를 찾기에 여길 가르쳐 드렸어요."
환자복 차림의 수연이는 주인집 여자의 말에 놀랐다. 바로 그때 병
실 문이 조용이 열리며 한 손에 노란 프리지어 꽃을 들고 마르티나 수
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수연아......"
마르티나 수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수연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르티나 수녀의 품으로 달려갔다. 어깨
를 들먹이며 울고있는 수연이의 입에서는 신음처럼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 엄마! 엄마......"
창 밖에선 소리없이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로 떠나간 엄마
는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채 병실유리창을 통해 울고있는 수연이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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