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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전상서“공부좀 하게 해주세요”

강산21 2002. 3. 29. 20:10
하나님 전상서“공부좀 하게 해주세요”
-한신대 오영석총장과 산골소년-

40여년 전. 전라남도 해남군 산정리 산골마을
에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구슬치기를 하도 잘해서
‘대장’ 소릴 듣던 개구쟁이였습니다. 놀기만 잘한
게 아니라 공부도 잘했습니다. 특히 주산을 잘 놓아
서 ‘셈본’ 시간을 제일 좋아했답니다.

그런데 국민(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보다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
들도 모두 중학교에 간다는데 소년은 하릴없이 지켜
보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가난해서 넌 중학교엘 못간
다. 오늘부터는 지게를 지고 풀을 베어라”.

소년의 아버지는 머슴이었습니다. 기운이 장
사라서 장날 씨름판에 나갔다 하면 송아지를 몰고
왔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수십마지기
논밭과 산을 술과 노름으로 다 날리고 머슴이 됐답
니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공부는 비쩍
마르고 힘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힘좋은 사람들은 일을 해야 마땅하다”.


국민학교 졸업 후 2년동안 소년은 아버지 말
씀대로 지게를 지고 풀을 베었습니다. 책이라고는,
글이라고는 성경만 읽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공
부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소년은 세
살때부터 어머니를 따라서 교회에 다녔답니다. 1955
년 그해 여름. 열다섯살 소년은 여름성경학교에 가
서 한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가르침을 듣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부르고
계시다”.

소년은 꼬박 40일간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
님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라고. 그리고 편지를 썼
습니다. ‘하나님 전상서’란 제목으로.

“하나님 전상서. 저는 지금 공부를 무척 하
고 싶습니다. 공부하고 싶은 갈증이 나서 못견디겠
습니다. 굶어도 좋고 머슴살이를 해도 좋습니다. 누
구라도 제게 공부할 길을 열어주십시오. 그 길이 열
린다면 신명을 바칠 테니 부디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처럼 도와주십시오…”

겉봉에도 ‘하나님 전상서’라고 쓴 그 편지
를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우표값이 없어서 우표는
붙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도회지 목포에
나갔습니다. 골목골목 상점을 헤집고 다니며 일자리
를 구했습니다. “야간중학교만 보내주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고 애원을 했답니다. 100군데도 넘
게 돌아다녔지만 애석하게도 일자리는 나타나지 않
았습니다.

우체통에서 ‘하나님 전상서’를 발견한 우체
부는 한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어느 고학생의 애절
한 사연이 담겨 있었지만 배달할 곳이 없었으니까
요. 궁리 끝에 상관인 우체국장에게 편지를 건넸습
니다. 국장은 고심끝에 자신이 다니던 해남읍 교회
이준묵 목사에게 편지를 전했습니다. 목사님은 소년
을 읍내로 불렀습니다.

편지를 쓴 지 5개월 후쯤. 소년은 그렇게 목
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이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편지를 보고서 이처럼 감동한 것은 처음이다. 앞
으로 내가 너를 지도하고 안내할 테니 그대로 따르
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아버지로
모시게 된 은인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소년은 목사님네 과수원에서 기거하며 틈틈이
과수원일을 도우면서 꿈에도 그리던 중학교에 다니
게 됐습니다. 매일 시오리길을 통학하며 정말 눈물
나도록 고맙게 공부를 했습니다. ‘영어를 마스터하
겠다’는 굳은 작심으로 통학길 내내 손바닥을 훑어
보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단어장 대신 손바닥에 날
마다 열개씩 영어 단어를 써서 외운 것입니다.

줄곧 우등생·장학생으로 중·고등학교를 마
친 소년은 의사를 꿈꿨습니다. 전남대 의대에 합격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선배의 한마디가 진로를 바
꾸는 계기가 됐습니다. “올바른 의사가 되려면 먼
저 신학을 배워라. 슈바이처 박사도 그랬다”. 그래
서 후기대 입시를 한번 더 거쳐 지금 한신대의 전신
인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했습니다. 62학번. 학교에서
등록금을 받지 않아 이상했는데 누군가 말했습니다.
“오영석, 넌 1등으로 입학했으니 안내도 된다”고.
문익환 교무처장이었습니다. 과수원을 떠나 학교 기
숙사로 옮겼지만 해남 목사님의 보살핌은 여전했습
니다. 수시로 학비며 용돈이며 옷가지를 챙겨 보내
주시며 따뜻한 격려말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헤밍웨이를 유난히 좋아했던 대학생. 청년이
된 산골소년 오영석은 역시 ‘피눈물나게’ 공부를
했습니다. 철학·문학·신학, 그리고 영어·히브리
어·라틴어·독일어까지. 책을 볼 때는 언제나 ‘하
나님 전상서’를 떠올렸습니다. ‘지금 이 공부가
내게 어떻게 주어진 것인데, 얼마나 소중하게 얻은
것인데…’.


청년은 대학 4학년때인 65년에 또 한번의 중
요한 인생 전환점을 겪습니다. 6·3 한일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하다 투옥됩니다. 서대문구치소에서 2개
월을 복역한 후 강제징집. 감방에서 만난 소매치
기·시계따기 등 ‘잡범’들이 들려준 화려한 무용
담은 성경보다 재미있었답니다. 청년은 거기서 도스
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떠올렸습니다. “악인
에게도 선(善)이 있고 위대한 성인에게도 악(惡)이
존재한다. 그것을 망각해선 안된다”. 이전까지는 의
사가 최종 목표였지만 그때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답
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세상을 밝게 하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대
후 대학을 졸업한 청년은 고향의 해남읍 교회에서 3
년간 목회자로 일하다 스위스 바젤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거기서 박사학위를 받고 84년 모교 교
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총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한신대 오영석 총장(59). 그 옛날 ‘하나님 전
상서’를 썼던 소년은 이제 대학 총장이 되었습니
다. 몇시간 동안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털어놓은 오
총장은 “그때 우체국 직원이 어째서 편지를 버리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도 늘 생각해본다”며 웃음을 지
었습니다. 그리고 “뜻이 있어 목표를 세우고 노력
하면 길은 반드시 열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얘기를 후학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고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래 글은 경향신문 2001년 11월 8일자에 실
린 기사입니다. 한신대 오영석 총장의 수기인데 참으로 감동적이라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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