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현안

[분석] “무기한 수입금지” 추가협상의 숨은 속임수

강산21 2008. 6. 23. 08:12
[분석] “무기한 수입금지” 추가협상의 숨은 속임수
[칼럼] 기한을 못 박지 않은 것이지, 무한정이 아니다
입력 :2008-06-22 11:20:00   김태규 칼럼니스트
추가협상 결과가 발표됐다. 내장, 사골 등은 건드리지도 못한 채, 우리 국민이 먹지도 않는 눈깔 수입을 막았다며 기대 이상의 결과라고 호들갑이다. QSA도 미국 정부가 대단한 보증을 하는 것처럼 포장은 했으나 미국 정부는 1년에 한두 번 점검하는 정도일 뿐이다. 월령 위반 시 미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벌칙을 가할 것인지 대한 내용도 없다.

이런 이슈들에 대해서도 할 얘기는 많지만 이미 언론에서 충분히 다뤄지고 있으므로 한 사람 더 나서 중언부언해서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독자의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오늘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중요해 보이는데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는 QSA 시한문제다.

여러 언론이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다 보니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무기한 수입 금지된다는 식의 논조로 ‘한국 QSA’가 한시적인 게 아니고 (국민이 원한다면) 무한정 또는 영원할 것 같이 보도를 하고 있다. 유명환 장관 같은 사람은 시한을 언제까지라고 못 박지 않은 것을 가지고 "언리미티드"라는 표현까지 썼다.

필자가 아는 미국은 협상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 쪽에 불리할 수 있는 조항을 'Open Ended'로 남겨 놓은 채 사인하는 법은 없다. "한국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면 한국에 QSA 만료시한에 대한 콘트롤을 넘겨주겠다는 말인데 이해가 안 된다. 도대체 "한국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때"를 누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결정을 하겠다는 말인가?

"30개월 이상 수입 금지를 적용하는 기간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가 있었다. 우리 측은 최소 1년을 요구했고 미국은 120일 정도로 맞섰지만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개선될 때까지 기한 없이 경과조치로 실시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YTN 기사 일부다. 미국은 4달이면 촛불 열기도 가시고 미친 소 문제도 어느 정도 잊혀질 것 아니겠느냐는 얘기고, 그 촛불에 크게 데인 이명박 정부는 1년 미만으로 국민에게 보고하기는 편치 않았던 것 같다. 합의가 안 되니 기한을 못 박지 않은 것(Unspecified)이지, 무한정(Unlimited)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무한정이라고 믿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두 사람이 5만 원짜리 물건을 가지고 흥정을 한다. 파는 쪽에서 10만 원에 팔겠다고 오퍼를 낸다. 사는 쪽은 10만 원은 너무 비싸고 2만 원만 하자고 카운터 오퍼를 낸다. 차이가 너무 커서 성사가 안 되고 서로 그렇게는 못 판다, 그렇게는 못 산다 하고 헤어진다. 그러다가 며칠 있다 만나서는 느닷없이 100만 원에 거래하기로 했단다. 이걸 믿을 수 있다면 정부의 발표를 믿어도 된다.

필자는 믿지 못할 뿐 아니고, 수십 년 직업외교관인 유 장관으로 하여금 몇달 사이에 Unspecified와 Unlimited를 헷갈릴 정도로 망가뜨린 이명박정부에 어떤 사탄이 똬리를 틀고 앉았다고 생각하니 진실을 찾아 나선다. 이 정부는 정말 자기들은 공부 한자 안 하면서 국민에에게는 무지막지하게 공부시키는 정부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잘 알다시피 이번 추가협정은 본협정은 건드리지 않고, 민간의 자율규제결정을 미 정부가 받아들여 QSA로 보증(?)을 하는 형식이다. 한미 간 추가협상이 마무리되고 다음날 한국과 미국에서는 각각 소고기 수입, 수출 업자들의 성명이 발표됐다. 한국수입육협의회(가칭)는 30개월 미만만 수입하겠다고 했고, 美쇠고기수출연합 (U.S. Meat Export Federation, 이하 USMEF의 요청을 받아 미국정부에 QSA를 통해 관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USMEF의 성명중 관련부분 두 단원만 번역해본다.

on June 20, 2008, the Korea Import Beef Association released a statement declaring that while the importers believe that U.S. beef from cattle of 30 months of age and over is safe, as a transitional measure in response to current market conditions, they will only import U.S. beef from cattle less than 30 months. In the statement they also requested that U.S. beef exporters ask the U.S. government to verify that U.S. beef exported to Korea meets this request by the importers."

"한국수입육협의회는 6월 20일 발표된 성명을 통해 한국의 수입업자들은, 30개월 이상도 안전하다고 믿지만, 현 시장상황에 대응하는 경과조치로 30개월 미만만 수입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또한, 한국수입업자들은 한국으로 수출되는 미국 쇠고기가 이 요청을 만족한다는 증명을 미국정부가 해 줄 것을 미 쇠고기수출업자들에게 요구했습니다."

"While the U.S. beef industry is confident that all beef produced in the United States is safe regardless of age, at the request of Korean meat importers to address consumer concerns, the U.S. beef industry is prepared to limit exports to Korea to only products from cattle less than thirty months of age under a program verified by USDA as a transitional measure to full market opening consistent with OIE guidelines."

"미 쇠고기 업계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쇠고기가 연령에 상관없이 안전하다고 확신하나, 소비자의 우려를 불식시켜 달라는 한국쇠고기수입업자들의 요청을 받아, OIE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 시장 전면개방으로 가는 경과조치로 미 농무부에 의해 입증된 프로그램(QSA) 하에 30개월 미만에서 나온 제품만으로 수출을 제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한미 양쪽 모두가 추가협정에서 합의된 QSA는 경과(Trasitional)조치라고 하고 있고, 이에 입각해서 미국정부가 QSA를 제정하고 수행할 것이다. 한국에서 출발해 동경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미국을 간다면, 동경에서 그 승객을 Transit Passenger(통과여객)라고 한다. 같은 Transition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이 목적지인 통과여객이 나리타 공항에 뭐 하려고 무한정 머무나?

QSA가 몇 달이나 갈 거라고 봐야 되나? 4개월에서 일 년 사이란 얘긴데 여름 더위 물러가고 큰 소나기도 많이 피했을 9월쯤이면 특수임무 깡패, 고엽제 망나니, 뉴라이트 또라이…이런 것들 모여 전면개방 분위기 잡는 꼴을 TV에서 자주 보겠구나. 그래 거기까지는 알겠는데 니들 뜻대로 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기대 만땅이다.

PS. 글의 주제에서 좀 벗어나 굳이 번역은 안 했지만 같은 성명서에서 미소고기수출연합은 한국에서 본협정이 법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대로 QSA를 제정하도록 미국 정부에게 요청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본협정은 건드리지 않고 발효하게 하겠다는 미국 측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애들끼리 새끼손가락 건 것도 아니고 프로(?)끼리 사인했는데 양보할 이유가 뭐 있나?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양보(?) 얻어내려고 무슨 약속을 했을까? 퍼주는 약속 없이 재협상을 마무리했을 것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진 않다. 재협상하라고 몰아붙이긴 했어도 정말 창피한 일이다. 창피는 있는대로 당하고, 얻은 거 하나 없이 퍼주기만 하고… 대통령 잘못 뽑으면 이렇게 된다. 다음엔 좀 잘 뽑자.


김태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