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신문 끊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강산21 2008. 6. 19. 12:31

"신문 끊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기사입력 2008-06-19 12:16 |최종수정2008-06-19 12:26 
[현장] "<조선> 지국장, 집까지 찾아와서 행패"

 [프레시안 양진비/기자]

   "합법적으로 일하는 데가 어딨나? 다들 그렇게 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8일 오전 12시 <조선일보> 구독 해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독자 나모(24) 씨의 제보를 받고 경기도 의정부의 한 조선일보 지국을 찾아갔다. 이들의 방문에 지국장 임모 씨는 "무슨 권리로 와서 이러는 거냐"고 소리치며 험악한 인상부터 지었다.
  
  그는 동행한 기자들을 향해서도 "다 나가라"고 협박하는 등 행패를 부렸지만 언론노조가 "독자의 제보를 받고 왔다. 지국의 입장도 들으러 왔다"고 말해서야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불법경품, 무가지 제공 등 부당 판매와 절독 거부 등의 불법 행위는 부인하기만 했다.
  
  "무료 6개월에 상품권 3만원이면 제일 약한 거다"
  
  그는 무가지 제공과 불법 경품이 무슨 문제냐는 태도로 나왔다. 그는 "알다시피 어디나 무가지가 다 들어간다"며 "경쟁도 심하고, 무료서비스 6개월에 상품권 3만원이면 제일 약한 것"이라고 했다. 서정민 언론노조 정책국장, 탁종렬 교육선전실장 등이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따지자 "합법적으로 일하는 데가 어딨나? 다들 그렇게 일한다"고 받아쳤다.
  
▲ 그는 "한 명만 남고 다 나가라"며 카메라 기자를 향해서는 "지금 찍고 있는 거 아니냐" "누가 사진 찍으라고 허락했냐"며 날카롭게 말했다. 기자들이 겁을 먹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정도였다. 사진도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뒤에서 몰래 찍어야 했다. ⓒ프레시안

  그는 오히려 '독자 탓'에 열을 올렸다. 그는 "지국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도 받겠다고 한 거고. 오히려 독자들이 먼저 달라고 한다"며 "몇몇은 '다른 지국이 얼마를 주니 그것보다 더 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쩔 수가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만성화된 본사의 부당 압력은 '없었다'고 딱 잡아뗐다. 각 신문 지국들이 한달 1만5000원짜리 신문을 팔면서 무료 서비스 6개월에 상품권 3만 원을 제공하는 '출혈경쟁'을 하는 것은 본사의 부수확장 압박 등 본사와 지국간의 불공정 거래 때문이다. 신문판매연대가 표준 약정서를 요구할 정도로 본사와 지국간 불합리한 약정서도 만성화되어 있다.
  
  특히 요즘처럼 시민들이 '조·중·동 절독 운동'을 벌이는 시기에는 각 지국으로선 본사의 '책임 부수'를 채우는 일이 만만치 않게 된다.
  
  언론노조 관계자들은 "절독부수를 채우려면 어쩔 수 없이 상품권과 무가지를 뿌려서라도 지금 부수를 유지하려는 거 아니냐"고 물었으나 그는 "책임 부수 같은 것은 없다"고 잡아뗐다. 본사와 지국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독자 나 모씨는 <조선일보> 절독 과정에서 임 지국장이 집으로 찾아와 "제공했던 경품과 무료 서비스 값을 받기 전에는 현관 앞에 계속 서 있겠다", "새벽에 와서 문을 두드리고 고함치고 행패를 부리겠다" 고 협박했다며 언론노조에 도움을 요청했다.
  거리판촉,
  이에 대해 임 지국장은 "그렇게 말한 적 없다. 어려우니까 도와달라고 했을 뿐 강압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알 거 아닌가. 작년 12월부터 쭉 무료로 보다가 첫 수금이 7월인데 안 본다고 하니…. 돈을 안 돌려준다는 건 양심 없는 거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언론노조 관계자들은 신문 구독 계약 당시 조건을 명기한 계약서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그는 "계약서는 없다. 구두로만 계약했다"며 "누가 신문 볼 때 계약서를 쓰나"고 반발했다. 언론노조는 "2005년 신문 경품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가 생기면서 독자가 신고할 '증거'로 꼬투리가 잡힐까봐 구두계약만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신문 끊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지국에서 5분 거리에 사는 나 씨는 흔쾌히 언론노조 관계자들과 취재진들을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 씨는 지난해 12월 동네 아파트에서 거리판촉를 나온 임 씨를 만나 <조선일보> 구독을 결정했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촛불 시위를 보도하는 <조선일보>의 논조를 보고 '끊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는 '조·중·동 끊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듣고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신문 끊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어요. 집으로 막 찾아오고. 겁주고"라고 말했다.
  
  1단계는 회유였다. "처음에는 설득을 했어요. '경제신문으로 돌려주겠다'는 등…. 보아하니 쉽게 끊어줄 거 같지 않아서 조선일보 본사 게시판(구독불편 접수)에 글을 올렸어요. 그랬더니 본사에서는 연락이 없었고 본사가 지국으로 연락을 했는지 지국장이 '끊을 의사가 분명하니 끊어주겠다'고 태도를 바꾸더군요"
  
  나 씨는 구독료에 대해 한국신문협회의 신문구독 표준 약관을 찾아보고 '1년 이내니까 2개월분만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임 지국장은 "신문 끊으면 다 돌려 받아왔다. 그게 원칙이다. 안 주면 양심 없는 거다"라고 반발했다.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나 언론노조에 신고하겠다'고 말했더니 지국장이 "공정위나 언론노조가 뭐 대단한 줄 아냐"고 말했어요. 그래서 공정위에 전화했어요"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신문시장의 불공정 거래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 씨가 공정위에 전화하자 공정위 관계자는 "해약은 담당하지 않는다"며 "소비자원이나 언론노조로 연락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 씨는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와 조중동폐간 국민캠페인 카페, 언론노조 게시판 등에 글을 올려 많은 도움을 얻었다.
  
  나 씨는 "민법을 얘기하니까 지국장은 '어떻게 법대로 하려고 하나. 법대로 하면 한 푼도 못 받는 거 알지만 피해보상은 받아야겠다. 다 불법이다. 조선일보만 그러는 거 아니다'고 말했다"며 "'양심이 있지. 경우가 없지 않냐. 새벽에 나와서 돌리는데 어떻게 돈을 안 내냐. 돈을 안 주면 현관 앞에 있겠다. 행패를 부리고 새벽에 문을 두드리거나 하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렇게 지국장 임모 씨는 나 씨 집에 두 차례 찾아오고 십여 통의 전화를 했다.
  
  나 씨는 "신문 하나 끊기가 되게 힘들구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 씨의 아버지는 6만 원 주고 해결하면 안되냐고 했지만 나 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그 쪽이 너무 당당하고 떳떳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끝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길 가다 지국장을 만날까봐 두렵기도 했지만 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를 끊은 지금은 1년 구독계약을 하고 2개월 무료로 <경향신문>을 보고 있다고 했다. 1년 구독에 2개월 무료구독은 합법이다. 언론노조는 "지국장이 더이상 행패를 부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자 나 씨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유명무실 공정위
  
  각 신문지국의 부당 경품 및 독자 절독 거부 사례가 늘어나자 언론노조는 대응책으로 법적 소송까지 논의하고 있다. 서정민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내부적으로 법적 소송을 준비하자는 논의가 있다"며 "이렇게 신문 끊는 것이 힘들어서야 되겠냐. 구조적,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현재 판례가 없고 법적으로 정확한 원칙이 없어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확실한 것은 무가지나 경품을 주는 지국은 공정위 신고대상이고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신문고시'를 집행할 의지가 없다. 최근 신문 절독과 관련해 지국의 부당 압력 등을 문의하는 독자는 많지만 '신문고시에는 신문 절독과 관련한 규정은 없다'며 '당사자간 합의와 계약 내용에 따라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다.
  
  서정민 정책국장은 "신문협회의 표준약관은 자율 규제로 법적 효과가 없다"며 "그러나 독자와 지국간의 구독계약서에 표준약관의 내용들이 들어가 있으니 지국도 이를 지켜야 하고, 공정위도 이를 강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양진비/기자 (jinbee@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