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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력집중 막자”개헌론 탄력

강산21 2008. 6. 12. 14:00

[정치]“대통령 권력집중 막자”개헌론 탄력

기사입력 2008-06-12 12:10 
 
무소불위 권한·단임제 등 많은 문제점 노출… “쇠고기 협상 파동도 지나친 성과주의 탓”

대화문화아카데미(옛크리스천아카데미)가 5월 22일 주최한 ‘헌정 60년, 새로운 정부 형태 필요한가’라는 세미나에서 이홍구 전 국무총리(여해기념사업회 이사장)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화문화아카데미>
이명박 정부의 한·미 쇠고기 졸속 협상을 계기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대통령중심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말을 공론화하고 있다. 특히 현행 헌법은 권위주의 정권 이후 만든 이른바 ‘87년체제’ 헌법이라는 점에서 그 수명이 다했다고 보고 있다.

 

2만여 명의 일자리 좌지우지 헌법의 주요 근간인 대통령 5년 단임제는 1987년 6·10항쟁의 산물이다. 전두환 대통령을 굴복시킨 당시 국민의 요구는 대통령직선제 등 제도적 민주주의의 도입이었다. ‘87년체제’는 한마디로 그 이전의 권위주의 정권과 대비되는 민주화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87년체제’에서 21년이 지났다. 대통령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5명을 배출했다. 이에 따라 ‘87년체제’의 헌법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대통령제는 민주화 과정을 일구어낸 제도적 핵심이지만 부정적인 정치 문화와 불합리한 정치 행태들을 양산해왔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개헌 논의의 핵심은 권력이 대통령에 집중된 대통령중심제에 모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현행 헌법상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외국과의 조약을 체결·비준(제73조)할 수 있고, 공무원을 임면(제78조)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재판관 등을 임명할 수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한·미 쇠고기 협상도 대통령의 최종 재가에 따라 이뤄졌다. 촛불집회 등을 통해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국민들은 이번 사태의 책임자를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보고 있다.

 

5년 동안 선거 출마자 ‘줄세우기’ 이 같은 헌법을 근거로 대통령은 정부의 예산 집행권과 정무직 공무원 등의 인사권도 사실상 행사한다. 우리나라의 1년 예산 규모가 200조 원이라고 할 때 대통령은 집권 5년 동안 10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즉 대통령은 이 같은 규모의 예산을 정부부처를 통해 특정 지역 또는 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2만여 명에게 청와대, 정부, 정부산하단체, 공기업 등의 직장에 일자리를 줄 수 있다. 2만여 명이 대통령의 친위세력으로 정부, 공기업 등에 포진하는 것이다. 또 대통령은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과 같은 권력기관을 통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들 기관에서 나오는 정보도 독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역대 정권 때마다 대통령 주위의 권력형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임동욱 충주대 행정학부 교수(한국대통령학연구소 부소장)는 “국민들은 여전히 대통령이 전제군주시대 왕과 같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때 국민들은 왕을 쫓아내려 했다면서 한나라당을 질타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대통령의 권한은 모든 정치가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이른바 ‘대권정치’로 변질되고 있다. 우선 대선 과정을 보면 대선 경선뿐 아니라 본선에서도 같은 당 소속의 국회의원(또는 당원)일지라도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나뉘어 경쟁한다. 지난 대선 때 친이명박계, 친박근혜계로 갈라져 경쟁한 것이 좋은 예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도 ‘대권정치’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총선에서도 모든 언론과 국민의 이목은 차기 대선 후보가 과연 지역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또 국회의원 후보자들도 차기 후보에 줄을 서 공천권을 받는다.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대선 후보는 구청장·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 후보와 지방의회 후보들까지 사실상 임명한다. 대통령제가 지속되는 한 5년 내내 대통령의 ‘줄세우기’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외교관을 지낸 그레고리 헨더슨 교수는 한국 정치를 모든 권력이 중앙(대통령)에 집중되는 ‘소용돌이 정치(the politics of the vortex)’라고 표현했다. 즉 대통령 주변의 모든 정치 행위자들이 소용돌이처럼 안(대통령)으로 몰린다는 것. 이에 따라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민 통합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특정 정파 또는 계파들의 지도자인 대통령은 그들에게 대통령으로서 존경받지만 반대파들에는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정적의 한 사람일 뿐이다. 독일·이스라엘의 총리나 중국의 국가주석의 통합적 리더십을 우리 사회에서 보기 힘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제의 또 하나의 폐단은 그동안 지역주의를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지역주의의 핵심은 대통령의 출신 지역이 경제적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것이며, 이는 다른 지역에 돌아갈 혜택이 대통령 출신 지역으로 전환된다는 의미다. 정종섭 서울대 법학과 교수는 “이 같은 왜곡된 혜택의 분배 현상은 우리 정치사에서 경상·전라·충청도 지역주의라는 형태로 표출되기도 했다”며 “대통령제가 지속되는 이런 왜곡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통령 5년 단임제라는 부분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당선한 대통령은 임기인 5년 안에 성과를 내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협상을 서두른 것도 쇠고기 협상 타결에 이은 한·미 FTA 비준을 조속히 통과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지나친 성과주의와 임기가 끝나면 더 이상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주의가 단임제의 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국민적 지지율이 20%대에 머물러도 5년이라는 임기가 보장되어 있어, 특정한 정책을 대통령이 밀고 나갈 경우 실질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쇠고기 협상은 이명박 정부의 미숙함을 드러낸 것”이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세를 낮추는 길밖에 없다”고 밝혔다.

 

임기 말 탈당으로 책임정치 실종 5년 단임제의 맹점 중 하나는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87년체제’ 이후 역대 대통령은 임기 말을 앞두고 여지없이 탈당과 레임덕을 되풀이해왔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여당을 탈당해 ‘무정당 통치’를 하는 기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5개월(1992. 9.~1993. 2.), 김영삼 대통령은 4개월(1997. 11.~1998. 2. 25.), 김대중 대통령은 10개월(2002. 5. 6.~2003. 2.), 노무현 대통령은 12개월(2007. 2.~2008. 2.)을 탈당한 상태에서 대통령 직무를 수행했다. 이는 정당과 그 정당에서 배출한 대통령의 책임정치가 실종돼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대통령제의 폐해로 인해 정치권과 전문가들이 중심이 돼 의원내각제로 개헌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의원내각제는 과반 여당 또는 연립여당의 국회의원들이 선출된 총리가 국정 전반을 이끄는 제도다. 즉 정부 각료들은 의회에서 선출되고 의회에 철저하게 책임을 지는 정부 형태다. 총리가 국회의 견제를 받기 때문에 대통령제와 같은 독재가 불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로 가야 한다”며 “대통령도 주요기관의 임면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18대 국회 벽두부터 한나라당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 등 다수 의원이 의원내각제로 개헌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민주화가 성숙되지 않았고 통일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각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외에도 개헌의 일환으로 일각에서는 대통령제를 보완하는 이원집정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헌법 개혁’ 주창한 박명림 연세대 교수 “의회책임제는 시기상조, 준대통령제로 가야”

박명림 교수
쇠고기 파동를 계기로 촛불집회가 이어지는 등 시민들이 이른바 ‘거리의 정치’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을 통한 직접 대표와 국회를 통한 간접 대표가 있는데, 이 두 개의 대표체계가 동시에 문제가 생겼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압승했고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보수의 과대 대표와 진보의 과소 대표 상황이다. 보수진영에서 사회 의제를 반영하지 못할 때 국민들은 집회·동맹파업 등 직접 민주주의 형태로 정부에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 정당이 지리멸렬하고 대표성이 붕괴되면 촛불집회 등 직접 민주주의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쇠고기 협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문제를 식품·복지 문제가 아닌 경제와 친미 문제로 접근했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자신하는 경제에서 문제가 생긴 셈이다. 또 친미반북(親美反北)을 견지하다 보니까 미국과 갈등을 없애기 위해 쇠고기 협상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실용정부가 아닌 이념정부가 되어버렸다. 친미이념의 협상 마인드 속에서 해당 부처 직원들은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이 민주화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 의제나 정책 결정 과정에서 관련 부처 인사들이 모인 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면 안 된다.”

 

단임제 대통령의 문제점은. “단임제의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제의 기본 특징인 양당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과 정당 발전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여당과 갈등 관계를 지속해왔다. ‘노태우-김영삼’ ‘김영삼-이회창’ ‘동교동-노무현’ ‘노무현-정동영·김근태’의 경우가 그렇다. 대통령이 단임이기 때문에 여당은 현실 권력인 대통령을 돕기보다는 미래 권력을 획득하는 데 관심이 더 많았다. 또 집권하면 집권당이 자주 교체됐다. 민정당이 민자당으로, 민자당이 신한국당으로, 국민회의가 민주당으로,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으로 변했다. 특정 정당으로 집권해놓고 그 정당을 소멸시키는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의원내각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엄밀히 말하면 의회책임제라고 해야 맞다. 궁극적으로 의회책임제로 가야 하지만 지금은 시기상조다. 과거 제2공화국에서의 실패, 3당합당과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의 실패를 성찰해봐야 한다. 아직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 첫째 우리 국민은 대통령 직선 등 권력을 직접 구성하고 싶어하며, 둘째 현재 같은 지리멸렬한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는 위험성이 있고 셋째, 몇몇 재벌이 정당을 좌지우지하면 정부도 재벌들을 위한 정부가 될 수밖에 없으며 넷째, 의회의 쟁점이나 시민사회의 이슈를 언론이 균형 있게 보도하지 않는 상황에서 의회책임제는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

 

구상하고 있는 헌법 개혁안은. “의회책임제와 대통령제를 결합한 준대통령제 또는 반대통령제를 해야 한다. 또 대통령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고, 국회의원 임기를 반은 대통령과 일치시키고 나머지 반은 집권 2년 후에 선출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한 중가평가를 해야 한다. 즉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2년에 한 번씩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총선에서 독일식 비례대표나 정당명부제를 도입해 비례대표 의원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