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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마을’ 주민들의 이중생활?

강산21 2008. 6. 3. 16:44

청계마을’ 주민들의 이중생활?
낮엔 아고라서 놀고, 밤엔 광장서 ‘운동’
품앗이도 척척…그들을 이해하는 키워드

 
  신동욱 기자 박승화 기자  
 
 
2008년 오뉴월, 서울 청계 마을. 밤이면 밤마다 7시만 되면 촛불을 들고 나와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모차를 타고 나온 아기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남녀노소 장삼이사 속속 모인다. 이들 중에 원래 여기서 ‘운동’하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민주노총 조합원도, 한총련 대학생도, 운동단체 회원도 아닌 ‘새로운’ 주민이 대부분. 거리 행진은 처음 해보는, 집회엔 정말 오랜만에 나오는 사람이 다수다.

 

마을 주민의 구성은 한국 사회의 역사를 반영한다. 1991년 거리의 함성을 기억하는 아기 엄마는 유모차를 끌고 나왔고, 1987년 6월항쟁의 주역이었던 아버지는 청소년인 아들이 걱정돼 같이 나왔다. 여기에 20대 대학생과 직장인은 효순이·미선이와 한 약속을 기억한다. 이렇게 저마다의 절박한 이유로, 한목소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억으로 모두들 모였다.

 

마을의 품앗이도 척척이다. 10대가 저항을 시작하니 20~30대가 ‘쪽팔려서’ 나왔고, 40~50대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평화의 상징인 꽃을 들고 나오는 여성들, 생명을 뜻하는 빵을 나눠주는 사람들도 있다. 거리 행진에 나서면 십시일반 모금해 ‘생명수’도 나누어 마신다. 그래서 여기는 청계 마을. 이렇게 한 달도 넘게 밤이면 밤마다 나타난 마을을 이해하는 열쇳말 하나에서 열까지.

 

1. 주민의 이중생활?

이들의 광장은 두 개다. 밤에는 청계광장, 낮에는 ‘아고라.’ 회사에서 바쁘지만 틈틈이 다음 아고라 혹은 나의 카페에 들어가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 관련 글을 확인하고 퇴근 압박 시계가 울리면 한달음에 청계광장(요즘엔 서울광장)으로 향한다. 내키면 댓글을 달고 더 내키면 청원도 올린다. 아고라는 마을의 신문고, 청계광장은 서울의 민주광장. 가끔 청계광장에 앉아 있으면 이런 착각도 든다. 여기가 아고라야, 청계광장이야? 여기저기서 손수 만든 유인물을 나눠주는 각종 인터넷 카페 회원들, 카메라를 들고서 손수제작물(UCC)을 만드는 익숙한 얼굴이 보여서다.

 

2. 여성이 뿔났다

운동 경력 20여년의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도 놀랐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많다니!” 아마도 한국 사회운동 역사상 최초의 사건 혹은 쾌거, 남녀의 성비가 역전됐다. 10대 촛불소녀들이 마스코트를 앞세우고 행진하면, 20~30대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고 따라간다. 먹을거리는 곧 생명 문제, 당연히 여성들이 더욱 민감하단 분석이다. 그리고 여초 현상은 야누스의 얼굴을 지녔다. 여성들의 사회적 성취가 높아졌단 방증이자 여성이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서 사회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증거다.

 

3. 프락치가 나타났다!

야심한 밤이면 대책위는 호소한다. 여러분 이제 집으로, 내일 만나요! 그러면 시민들이 반발한다. 정말로 그들은 삼삼오오 새벽까지 거리를 누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어디로 갈지를. 대책위도, 그 누구도 주도하지 못하고 주도하지 않으므로 미리 짜놓은 행진 코스 따위는 없다. 만약에 누군가 ‘전통적’ 방식으로 이들을 ‘지도’하려 한다면, 어디선가 들려온다. “프락치다!” 어떤 확성기를 든 사람도 이런 의혹을 받았다. 나중에 풀렸지만.

 

4. 운동가가 방황한다

시민이 운동권보다 과격하다. 오히려 운동가가 당황한다. 아니, 이러다 다치면! 그러나 협의할 지도부도 없고, 시민을 한명한명 만나서 설득할 수도 없다. 운동가들은 고백한다. “솔직히 효순이·미선이 추모 투쟁 때는 범대위가 집회·시위를 주도했지만, 지금은 정말로 아니다.” 2004년 탄핵 반대 집회 때의 시위대가 그나마 ‘조직된 개인’이었다면, 지금의 참가자는 정말 개인들 혹은 개인들 중심의 네트워크. 그들은 인터넷 카페에서 토론하고 결정해서 자신들의 ‘택’(전술)을 짠다. 그래서 때때로 활동가들이 배회한다. 방황한다.   

 

5. 존재는 의식보다 강하다

청계 마을 주민들은 의식화가 필요 없다. 몸으로 느낀다. 이명박 정권이 그들의 안위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0교시로 중고생의 새벽을 위협했고, 의료보험 민영화 운운으로 아픈 사람의 마음마저 아프게 만들었다. 그래서 ‘소아병 어린이 부모회’ 같은 인터넷 카페 회원들은 아픈 마음 부여잡고 촛불집회에 나선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는 “한 달 동안 평일에도 촛불집회 참가자가 줄어들지 않고 유지되는 이유는 존재를 위협당한 사람들이 마치 배턴터치 하듯이 번갈아 집회에 나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하여 비바람이 쳐도 릴레이 촛불은 쭈욱~ 계속된다. 의식화된 대학생보다 존재에서 출발한 어머니가 끈질기다, 당연히. 다르게 말하면, 한국 사회가 이명박 정권 100일 만에 앗 뜨거 신자유주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말씀.

 

6. 신데렐라는 12시에 닭장차를 탄다

신데렐라는 12시에 마차를 타지만, 시민들은 닭장차를 타러 간다. 이른바 ‘닭장차 투어.’ 일부 시민은 자진해서 닭장차에 오르는 직접 행동을 했고, 아고라에는 ‘주말 1만명으로 닭장차를 채우자!’는 청원이 올라와 호응을 얻었다. 이렇게 마침내 시민 불복종은 닭장차를 타고 한반도에 도착했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10~20대는 공권력에 대해 쿨한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크지만,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은 적은 신세대의 등장. 맞아본 30대가 공권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안 맞아본 10~20대는 트라우마가 없다. 참, 노명우 교수의 지적 하나 더. “심지어 자신을 막고 선 경찰도 쇠고기 문제에 대해선 내심 시위대가 옳다고 생각할 것이란 식으로 이슈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7. 카메라가 화염병보다 강하다

요즘 정권과 경찰에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은? 짱돌도 화염병도 아닌 카메라다. 그리고 “인터넷에 퍼뜨릴 거야”라는 말이다. 그러니 분노가 하늘을 찔러도 화염병을 던질 이유가 없다. 왜냐면, 최신 비폭력 무기 카메라가 있으니까. 심지어 휴대전화에도. 게다가 자신이 밤에 찍어온 사진을 낮에 블로그에 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하여 행진은 저항을 넘어선 놀이다. 경찰차 위에 촛불을 밝히고, 번호판 위에는 ‘이명박 OUT’ 손팻말을 덮어씌운 사진은 카메라 놀이의 상징이다.

 

8. 청계천만 집회 현장이 아니다

꼰대들은 놀랐다. 노트북을 하는 한 명, 카메라를 든 한 명, 두 명만 있으면 인터넷 생중계가 되다니! 그리고 이제는 ‘아프리카’ 같은 인터넷 방송 사이트를 통해 집회 현장이 생중계되니 어디서든 누구든지 집회에 함께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나가고, 시간이 안 되면 인터넷 생중계를 보는 주민이 적지 않다. 더구나 이들은 일종의 5분 대기조. 5월25일 새벽에도 방송을 통해 사람들이 연행되는 모습을 보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청계천 청반장!

 

9. 조·중·동, 쫄어~

미처 몰랐다. 조·중·동이 왜 나쁜지를. 어쩌나, 이제는 알아버렸다. 노명우 교수는 “정치 문제에 관한 조·중·동의 왜곡 보도를 알아차리려면 섬세한 관찰과 정치적 식견이 필요했다”며 “너무나 상식적인 쇠고기 문제에 관해선 0.1초만 보아도 조·중·동이 무엇을 감추고 왜곡하는지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쉬운 예를 제시해주니, 안티 조·중·동이 확산될 수밖에.

 

10. Again 1987?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두 번의 정권을 거치며 시민적 상식이 생겼는데 이명박 정권이 상식선을 건드렸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오히려 시민을 연행하니 마침내 “독재정권”이란 구호가 터져나온다. 한 달이 넘도록 집회가 계속되니 6월항쟁이 떠오른다. 1987에서 2008까지, 시대는 달라도 저항의 성격은 비슷하다. 갈수록 참여 계층과 연령이 넓어지고, 여전히 국가권력을 ‘정상화’시키는 투쟁의 성격도 지녔다. 그래서 ‘도돌이표 1987’의 면모도 있다. 다만 1987년은 조직에서 시작해 조직을 상회하는 대중으로 발전했다면, 2008년은 개인에서 시작해 개인을 넘어서는 대중으로 발전하고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다.

 

<한겨레21>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기사등록 : 2008-06-03 오후 03:13:03 기사수정 : 2008-06-03 오후 03:4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