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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시보는 87년 6월항쟁 (펌)

강산21 2008. 5. 28. 10:30
[사진]다시보는 87년 6월항쟁



국민평화대행진에 참여한 시민이
담벼락에 구호를 적고 있는 모습


시위는 반드시 학생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626평화대행진에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스스로 거리에 나섰다.
사진은 숨어있다가 기습적으로 피켓 등을 들고 나오는 모습



국민평화대행진에서 학생들이 시내보스에 구호를 쓰고 있다.
기름걸레로 쉽게 지울수 있는 이 구호는 시민의 동참을 유도했다.


서울역 기습시위/
전국 동시 실시된 '국민평화대행진'에는
전국 270여개 지역에서 180만명이 시위에 참가했으며
이 가운데 3천여명이 연행되었다.



한낮 명동쪽에서는 백골단 부대가, 중앙극장쪽에서
경찰병력이 명동성당쪽으로 진격해 올라왔다.


대학생 수천명이 서울역과 남대문 경찰서 사이의 큰거리를 완전점거하고
시위를 벌였으나 바로 옆 남대문 경찰서에는 돌을 던지지 않았다.


슬가대 학승들에 섞여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경찰에 쫓겨
명동성당 바리케이트안으로 들어온 뒤 투석전을 벌이고 있다.


610 큰싸움에 시민참여가 늘어가자 시위대는 기세가 오르는 반면,
경찰은 위축되어갔다. 이제 학생들도 경찰과 따질 것은 따지고 싸웠다.


날이 갈수록 싸움이 치열해져갔다.
이제 시위군중은 경찰에 밀ㄹ지 않았다.
곳곳에서 경찰무장해제로 이루어 졌다.



11일 새벽 전두환, 노태우 허수아비 화형식을 연 뒤
불타는 허수아비를 작대기로 두드려 패고 있는 시위대들


610대회 이후 노동자 학생들은
명동성당의 봉쇄를 부력화시키기 위해 성당주변 곳곳에서 기습시위를 벌였다




'6.10대회'가 시작되는 오후 6시 정각을 기해  태평로를 지나던 차량들이
일제히 20여분 동안 계속 경적을 울려 대회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높음을 실증했다.


애국학생 고 이한열열사 민주국민장 현장

이한열 열사가 폐렴증세로 사경을 헤매고 있던 7월 3일 오후 3시,
연세대 노천 극장에서
서울지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 주최로 열린 시국 대토론외.
서울시내 20여개 대학생 1만 5천명이 모여 완전한 민주화를 요구했다.


애국학생 고 이한열열사 민주국민장 현장

광주 도청 앞 광장에서 금남로에 이르는 추모 인파.



애국학생 고 이한열열사 민주국민장 현장
신촌로터리에서 지낸 노제에는 20만명의 학생, 시민이 참가하였다.


애국학생 고 이한열열사 민주국민장 현장








버스안으로 들어온 최루탄



학생들이 사흘째 밤샘을 하며 농성을 하던 명동성당앞에서 투석전이 벌어지자
명동일대는 최루가스로 가득찼다.
한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묵주를 들고 격려시위에 동참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6월 11일 저녁 각 대학에서 출정식을 마친 대학생들이 종로2가에 나와
'호헌철폐'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최루탄을 터뜨리자 흩어지고 있다.



잇따른 시위로 명동일대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최루가스로 가득차자
6월 14일 오전 일부 시민들이 전경들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며
최루탄을 쏘지 않도록 호소하고 있다.



6월 18일 오후 서울 신세계백화점 부근 일대에서
시위대가 전경 80여명을 포위하고 있다.


어느 학생이 사복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명동을 가득 메운사복 전경들.



시청 뒤쪽 한국 어린이 재단 앞. 도열한 전경의 벽을 한 시민이 달려 지나가고 있다.


특이한 복장을 한 노인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전경과 마주 서 있다.


전경에게 꽃을 달아주는 시위대



최루탄속 시위대


투석하는 전경


최루탄 속 시위대





경찰의 과잉진압은 오히려 시위대를 자극시킬 뿐이었다.
속출하는 부상자들 속에서도 시위대의 열기는 거세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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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위해
무수한 젊은이들이 거리로, 거리로 나왔다.
극악한 탄압앞에 그들의 방어는 물안경에 마스크였다.


전경과의 대치



연세대에서 610대회 출정식을 마친뒤
학생들은 교문앞에서 대기중이던 경찰과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한 학생이 한손에 라이타를 든 채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서울중심지에서 모여들기 시작한 610대회 참가자들이
반정부구호를 외차자 사복경찰들이 이를 해산시키고 있다.


시민, 학생들이 을지로1가에 대기중이던 경찰에 달려가 대회방해를 항의했으나
경찰에게 돌을 던지지는 않았다.



전경과 아이들




626범국민평화대행진은 무자비한 진압을 해오는 공권력앞에
무수한 희생자를 낳았다.
부상자는 속출했고 진압전경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계속 탄압을 했다.



을지로2가에서 시위대해산을 위해 던져진 불탄 최루탄(사과탄)을 만지다 터지는 바람에
손가락이 2개나 잘려나가는 부상을 입고
백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최루탄으로 가득찬 6월의 거리


6월 거리에 선 아이


아! 대한민국


거리메운 시위대열



: 623집회



명동성당에서 시위하고 있던 학생, 시민들이 명동성당앞 도로에 나와
'국민합의 압살하는 군부독재 타도하자'는 글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노태우 민정당대표의 직선제 수용등 8개항 발표후 민주화의지를 얘기하듯이
이날 술집과 음식점은 공짜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629선언의 기만과 눈속임은 얼마가지 않아 밝혀진다.


노태우 민정당대표의 629선언


부산역 간선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는 시작과 똑같은 결연한 자세로
독재타도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찰 폭행소식을접한 시민들은 대형 나무십자가 5개를 앞세워
카톨릭센타로 집결하기 시작하고 있다.


퇴근을 하고 돌아가는 시민들에게 최루탄의 고통은 갈수록 커져갔고
마침내 한 시민이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어디 한곳에서만 벌어지겠는가? 빗속에서도 부산 곳곳에서 펼쳐진 시위대의 열기는
전국 방방곡곡을 뒤흔들고 있다.



포위된 전경들



쏘아라, 미구 쏘아라 그렇다고 한들 우리가 물러설 줄 아느냐!


대규모적인 시위를 막기위해
범내골 로타리에서 서면까지의 도로를 차단하고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지만,
부산시민과 학생들의 투쟁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시위대의 투석으로 불타고 있는 전경버스를 전경들이 지켜보고 있다.





6월 16일 오후 5시경 최루탄 파편을 받아 부상한 산업대학생을 병원으로 후송하고 있다.



스님이 경찰의 최루탄 발사를 중지시키려고 최루탄 연기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시위대 중 일부가 버스운전자의 도움으로 버스에 탑승하여
시위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기내버스는 이루 영업용 택시와 함께 시위대의 기동성을 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늘은 정말 큰일이 일어날거야" 눈치빠른 상인의 비상대책 강구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열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각계 각층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최루탄의 무자비한 난사에 아예 누워버린 학생들


온 국민의 최루탄 추방의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정권의 최루탄 난사는 점점 더 심해졌다


아느냐, 독재야! 최루탄의 고통을..



독재는 폭압과 폭력으로 유지된다



7월 9일, 어김없이 동은 터오고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우린 영안실 앞에 흐느끼고 서 있었다.




누나, 누나..하더니 한아! 너는 왜 말이 없는게냐!



학생회관 앞에 차려진 빈소


예비역들도 후배의 죽음 앞에 분연히 떨쳐 일어섰다.



한열이를 살리기 위해 의대생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다시 최루탄은 난사되고 전경들은 열사의 어머님을 방패로 내리찍는 만행을 저질렀다.




열사의 묘에 참배




전경들로부터 빼앗은 방패와 헬맷





경찰의 '전경1인에 대한 기소중지 처분'에 대해 항의하러 간
우상호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덕수궁앞에서 불법연행하고 있는 폭력경찰




보라! 살인적 최루탄에 고통받는 국민들을..



모든 연세인이 그의 소생을 빌며 행진에 나섰다. (의대, 치대, 간호대생들)



충무동 로터리. 시위대열이 앞에 나타난 전경들의 진압에 대비해 방어벽을 설치하고 있다.



일찍이 없었던 서울 중심부의 백만 군중.
이 군중의 숙연한 운집은 살인정권에 대한 중엄한 경고 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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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백지 한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통받던 이는 고통이 사라지길 바랐고
누울 곳 없던 이는 보금자리를 바랐고
처벌받던 이는 다른 대접을....

그렇게 각자의 꿈을 꾸었겠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단지 백지 한장이였습니다.


조금만 함부로 대하면 구겨져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잠시만 한눈을 팔면 누군가가 낙서를 해 버릴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꿈꿀 수 없는
약하면서도 소중한...

그런 백지 말입니다.
 
출처 : 참여시민네트워크
글쓴이 : 김성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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