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육식 과잉 / 정영무

강산21 2008. 5. 1. 23:13
[유레카] 육식 과잉 / 정영무
유레카
한겨레  
» 정영무 논설위원
‘이밥에 고깃국’은 조선시대 평민들의 꿈의 식단이었다. 특히 쇠고기는 귀했다. 소는 농사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산수단이었다. 또 소를 키워 잡아먹는 것보다 쌀을 수확해 먹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허락받은 큰 잔칫날 아니고는 소를 잡을 수 없었다.
 

소를 몰래 잡거나 훔친 사람에 대한 형벌은 엄했다. 소도둑은 사형시키거나 우적이라고 이마에 새겼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은 소의 위상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소도둑질과 밀도살은 끊이지 않았는데, 그 중심에는 미식가였던 양반네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죗값은 쇠고기 구경도 못한 노비들이 주로 치렀다.

 

일본은 더했다. 아스카 시대에 종교적인 이유로 육식 금지령이 내려진 이후 근 1천년 동안 소는 물론 돼지 등 일체의 육식을 금기시했다. 에도 시대에는 소 한 마리를 잡았다고 아홉 사람이 처형되기도 했다. 메이지 시대 들어서야 육식 해금이 이뤄져, 메이지 유신은 ‘요리 유신’으로도 통한다. 처음에는 육식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황궁에 난입할 정도로 육식에 대한 거부감은 뿌리 깊었다. ‘천황’도 쇠고기와 우유를 먹는다는 것을 앞세워 국민적 육식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랬던 일본이 육류 소비가 늘어 2006년에는 연간 육류 소비량이 어패류를 추월하면서 식생활 문화를 우려하고 있다. 육식의 과다 섭취가 문제다. 특히 장수촌이었던 오키나와는 미군이 주둔한 뒤 육류와 햄버거 소비가 크게 늘면서 비만, 성인병이 일찍부터 문제가 되었다.

 

일본의 유명한 위장 전문의인 신야 히로미는 장의 모습, 곧 장상을 보면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며 좋은 장상을 가지려면 육식을 줄이라고 한다. 그가 권하는 이상적인 식사법은 채식과 육식을 85 대 15 비율로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이빨 서른둘 가운데 고기를 먹는 데 쓰는 송곳니가 넷인 것과 같은 비율이다.

정영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