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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웅 특검을 고발한다/ 정석구

강산21 2008. 4. 22. 09:21

[아침햇발] 조준웅 특검을 고발한다/ 정석구

기사입력 2008-04-21 22:05 |최종수정2008-04-21 23:35 
 
[한겨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조용하다. 조준웅 삼성특검도 충분히 예상했으리라. 시민단체 등의 비판은 잠깐이고, 결국엔 수사 결과만 남는다는 것을.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음 직하다. 하지만 그의 ‘계산’은 틀렸다. 수사는 조 특검이 특검법 절차에 따라 마무리했는지 몰라도, 그에 대한 심판은 역사가 한다. 이제 그가 ‘역사의 법정’에 설 차례다. 그의 죄목을 하나씩 들어보자.

국민 기망죄! 많은 국민들은 이번 특검을 계기로 삼성 문제가 매듭지어지길 기대했다. 주기적으로 터졌다가 대충 넘어가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기업인들이나 삼성맨들도 이제는 털고 갈 때가 됐다고 했다. 하지만 조 특검은 이런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혹시나 하며 기대했는데 역시나였다며 허탈해 한다. 대다수 국민은 ‘닭 좇던 개’가 돼버렸다. 국민은 속았다! 차라리 특검을 안 한 것만 못하게 됐다.

‘황제경영’ 고착죄!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구조적 병폐는 재벌총수 1인을 정점으로 하는 ‘황제경영’이다. 그 상징이 삼성이다. 조 특검은 황제경영을 해소하기는커녕 그 기반을 더 공고하게 만들었다. 황제경영을 위해 비밀리에 운용하던 차명자금을 선대 회장의 상속재산이라며 양성화해 줬다. 특검에 지원된 28억원의 국민 세금으로 황제경영 운용자금 4조5천억원을 찾아 삼성에 고스란히 바친 셈이다.

법치주의 희롱죄! 조 특검은 이건희 회장 불구속 사유를 설명하면서 ‘합리적 특수성을 감안한 보편성’이라는 알쏭달쏭한 표현을 썼다. 정몽구 회장이 구속됐으니 이건희 회장도 구속해야 한다는 ‘보편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이 회장은 나름의 ‘합리적 특수성’이 있으니 이를 감안해 불구속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법률전문가답게 난해한 용어를 사용했지만, 쉽게 말하면 사법 정의니 형평성이니 하는 게 무슨 대수냐는 거다. 칼 자루 쥔 내가 판단해서 결정했으니 그게 곧 ‘법치’라는 식이다.

뇌물수수 조장죄! 정·관계 등에 대한 삼성의 로비가 전혀 없었음을 공인해 줌으로써 ‘삼성돈은 먹어도 절대 탈나지 않는다’는 우리 사회의 ‘믿음’을 재확인했다. 앞으로도 물증을 남기지 않은 뇌물은 받아도 된다는 확신을 고위 공직자에게 심어준 것이다. 삼성 뇌물을 받은 검찰 출신 고위공직자들이 사회 정의 운운하는 ‘부패공화국’에서 우리는 살아야 한다.

내부고발자 말살죄! 조 특검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용철 변호사를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아주 작심한 듯했다. 특히, 로비 정황 등이 일관성이 없다는 점을 집중 부각했다. 고발을 하려면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일관된 진술을 하라는 것이다. 앞으로 불법 로비 실태를 폭로하려는 내부고발자는 뇌물수수 장면을 촬영해 놓고, 가능하면 영수증까지 받아놔야 할 판이다. 내부고발자 보기가 더 어렵게 됐다.

삼성 호기 유실죄! 역설적으로 이번 특검 수사의 최대 피해자는 삼성이다. 삼성으로서는 이번 특검 수사가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자신의 환부에 자기가 직접 칼을 들이대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칼이 특검이 쥐어졌다. 하지만 특검은 썩은 고름을 도려내지 않고 적당히 덮었다. 특검은 삼성의 천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렸다.

올해는 이명박 대통령이 선포한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이다. 조준웅 특검의 삼성 수사가 여기에는 얼마나 기여했을까. 유감스럽게도 역사는 조준웅 특검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저해사범쯤으로 기록할 것 같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