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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식코’와 의료복지

강산21 2008. 4. 17. 19:31

영화 ‘식코’와 의료복지
박영규 (언론인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

 

요즘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Sicko)’ 가 화제다. 새정부가 구상하는 민영의료보험을 걱정하는 야당이나 시민단체 등은 ‘식코’에 빗대어 그 폐해를 논한다. 최근 영화 식코를 봤다. 한마디로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허점을 고발한 수작(秀作)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화에는 9·11 테러 현장을 수습하다 다친 소방대원을 비롯해 평범한 미국시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상해나 질병 치료를 받기 위해 고액의 의료비를 부담하다 가산을 탕진하고 밑바닥 인생으로 굴러떨어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의 보통 시민이면 누구나 이런 지경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캐나다와 영국, 프랑스 등 국가보장 의료복지 제도가 잘된 나라의 현지 촬영을 통해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허점을 실증적으로 비교해 보인다.


유럽에서 의사들이 위급 환자가 있는 가정을 돌며 진료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미국과 적대국이면서 경제적 후진국인 쿠바에서조차 의료보장 제도가 잘 갖춰져 있음을 조명한다.

 

미국보다 월등한 의료보험제


미국에서 괄시받던 이들은 쿠바에서 외국인이라는 차별 없이 무료로 진료와 치료를 받는다. 또 미국에서 120달러를 지불하던 약값이 쿠바에서는 수십센트밖에 안 되는 것도 체험한다.


이 영화를 본 미국 사람의 자존심은 얼마나 상했을까? 세계의 최강자 미국민이 받는 의료혜택이 가난한 쿠바 국민보다 형편없다니. 만약 마이클 무어가 한국에 왔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건강보험제도에 관한 한 한국이 미국보다 월등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가 한국의 어느 병원이든 암센터에서 암환자나 그의 가족을 만나본다면 아마도 프랑스나 쿠바 정도는 아니어도 미국보다는 훨씬 천국이란 사실을 알았을 테니까 말이다. 국민건강보험 암환자들이 한 병에 50만원짜리 항암제를 맞고 치료비의 10%인 5만원만 자비로 내는 것을 봤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또 미국에 사는 한국인 교포가 미국의 병원비 부담 때문에 고국의 병원을 찾아온다는 사실도 알게 됐을 것이다.


영화 식코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우월함을 알게 된 계기가 됐다. 막대한 의료비가 드는 중증 환자의 부담을 덜도록 건강보험제도가 개선되는 등 분배정책이 알게 모르게 이뤄지고 있음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과거 정부가 말을 좀 아끼고 이렇게 잘한 부분이나 열심히 홍보했으면 국민들이 그리 등을 돌렸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그 고마움을,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알았을 것이다.


새정부 들어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손실 등을 이유로 민영건강보험의 실시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완화 및 폐지가 거론되고 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모든 병의원 등 요양기관이 건강보험 적용에 응하고 가입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 제도로 가입자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제도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탈퇴로 국민건강보험 기반이 취약해지고 부유층의 국민건강보험 탈퇴 및 고급 민간의료 이용으로 서민 부담이 커진다.


저소득 국민은 의료비 부담이 커지면 의료기관의 이용을 기피할 것이고 소득재분배 효과가 상실돼 계층 간 갈등도 커지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당연지정제 폐지 이후 국민 3억명 중 5000만명이 의료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과다한 의료비로 인한 파산자가 연 200만명에 이른다는 것을 봐도 알만하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많은 요양기관이 고품질 고수익 의료에 치중하면서 국민건강보험을 기피하고 민간의료보험과 계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영화 ‘식코’의 경고이기도 하다.


최근 수명 연장과 함께 장기치료 환자가 늘어나며 의료비용이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의 재정 부담이 늘어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보험료를 더 받아서 충당해야 하는데 정부는 국민의 눈치를 보느라 더 내라는 말은 못하고 엉뚱하게 민영의료보험 등의 대안을 내놓는 것 같다.

 

건강보험 기반 흔들지 말아야


그러나 보험은 말 그대로 보험이어야 한다. 건강보험은 보험료를 내도 혜택을 안 받을수록 좋고 병에 걸려 혜택을 받게 되면 양질의 혜택을 받는 것이 좋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부담한들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등을 돌릴까 염려만 하지 말고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아픈 게 죄가 돼서는 안 된다. 건강할 때 열심히 보험료를 내고 병들어 누우면 정부의 보살핌을 받는 나라를 국민들은 바란다. 의료보험료 부담을 늘리더라도 어렵게 뿌리내린 국민건강보험을 흔들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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