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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 기업들의 사회공헌 등급은?

강산21 2008. 1. 13. 19:24

한국 기업들의 사회공헌 등급은?

한겨레21|기사입력 2008-01-08 08:07 


[한겨레] 옥스퍼드대 쿠널 바수 교수의 구분법…강도귀족형·경리사원형·로빈후드형·존경받는 정치인형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연말이면 각 기업이 어딘가 온정의 손길을 뻗었다는 기사가 쏟아져나온다. 광고에서도 온통 산타 복장을 한 임직원들이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가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심심찮게 나온다.

한 대학생과 이런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인 ‘지속가능경영학교’에 참석한 학생이었으니, 기업 사회공헌이나 자원봉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꽤 큰 학생이었다. 그런데 기업의 연말 선행 러시에 대해 그 학생은 시니컬했다. “기업들이 겉으로는 선행을 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선행을 홍보에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었다.

가치와 전략이라는 두 가지 축

언뜻 들으면 명료해 보이는 이 질문은, 조금 따지고 들면 매우 혼란스러워진다. ‘선행’은 가치판단의 영역이다. 옳으냐 그르냐를 기준으로 행동을 판단하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선행이라고 부르고, 그른 일을 하는 것을 악행이라고 부른다.

한편 ‘전략’은 이와 달리 가치와는 아주 독립적인, 효과성의 영역이다. 어떤 조직이나 개인이 스스로 처한 환경과 보유한 역량에 비추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효과적인 선택을 할 때 우리는 전략적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전략적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앞의 대학생이 가진 것과 같은 통념이 생겼다. 전략적인 행동은 계산을 수반하기 때문에 선행이기 어렵다는 통념 말이다. 그렇다면 전략적 악행과 비전략적 선행은 존재하고, 비전략적 악행이나 전략적인 선행은 존재할 수 없을까?

반갑게도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쿠널 바수 교수는 최근 이런 혼선을 간단하게 정리해줬다. 바수 교수는 사회책임경영 흐름에 대응하는 기업의 태도를 가치와 전략이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한 ‘2×2 매트릭스’로 정리했다.

이 연구에서, 사회책임경영에 대해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려고도 하지 않는 기업은 ‘강도귀족형’(Robber Baron)으로 분류됐다. 강도귀족이란 12~13세기 독일에서 라인강을 막아놓고 돈을 걷던 파렴치한 영주들을 일컫는 말인데, 19세기 말~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냉혈한 자본가를 일컫는 말로 부활했다.

우리 귀에 익숙한 앤드루 카네기, 헨리 포드, J. P. 모건, 존 록펠러 같은 유명 기업인들이 당시에는 강도귀족으로 불렸다. 공정거래질서 등 법질서가 제대로 서지 못한 초기 미국 경제 상황에서, 독점력을 이용해 경쟁사들을 수탈하면서 마음껏 초과이윤을 얻으며 기업활동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사회책임경영이 일반화하고 있는 때에, 그런 활동이 옳은 일이라고 여기지도 않으면서, 홍보 등에 전략적으로 이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기업은 그런 강도귀족 기업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사회책임경영에 대해 가치는 느끼지 못하지만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은 ‘경리사원형’(Book Keeper)으로 분류됐다. 딱히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추세가 추세인 만큼 좋은 일을 하면 그만큼 전략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기업을 일컫는다. 회사 경리부처럼, 계산이 서면 행동하고 그렇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사회책임경영이 옳은 일이라고 여기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막상 이를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시키는 전략으로 활용하지는 않는 기업은 ‘로빈 후드형’(Robin Hood)으로 분류됐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 뛰어들었지만, 그 일을 통해 스스로 어떤 이득을 얻을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의적’ 같은 기업이라는 이야기다.

사회책임경영의 가치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도 하는 기업은 ‘존경받는 정치인’(Statesman)으로 분류됐다. 정치인 중 존경받는 사람이라도, 자기 헌신을 통해 가치를 실현하기만 하는 이는 드물다. 반드시 자신의 정치적 야심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정치인의 이런 행태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정치인이란 어차피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유권자 처지에서는, 정치인이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올바른 정책 활동을 펼치기를 바랄 뿐이다.

양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사회책임경영에 대해 가치와 전략을 동시에 고려하며 실행에 옮기는 기업이 존경받는 정치인에 비유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정치인이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업이 가치를 받아들이면서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가치 있는 활동이 더 성장하고 지속 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는 판단이 이 분석 뒤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기름이 유출된 충남 태안군의 바닷가를 뒤덮은 수많은 자원봉사자 중에는 기업 자원봉사팀의 참여도 적지 않다. 의미가 있는 사업이라면 이익의 일부를 떼어 내놓는 기업도 점점 늘고 있다. 유엔글로벌콤팩트 가입 기업 수도 늘고 있고, 기업 사회공헌 활동 기부액수도 늘어난다.

그러나 사람의 선행을 기부한 액수로만 판단할 수 없듯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양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오랫동안 지속 가능하고, 질 높은 사회책임경영을 펼치는 기업이 얼마나 되는지가 양적 지표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가치와 전략이 어우러진 ‘전략적 선행’을 펼치는, ‘존경받는 정치인’급 사회책임경영을 펼치고 있는 한국 기업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출처 : 참여시민네트워크
글쓴이 : 김성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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