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사랑해요! 당신에게. 때 아닌 천둥번개에 장대비까지 쏟아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태풍의 영향인가봅니다.당신은 번개가 칠 때마다 기진맥진입니다. 사고의 후유증입니다.이제 당신도 15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익숙해질 만도한데 왜 그렇게 자꾸만 당신의 몸둥이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지모르겠습니다.신음을 내뱉으며 편안한 잠을 주무시지 못하는 당신을그냥 두고 잘 수가 없어 이렇게 깨어 있습니다.맨숭하게 깨어있는 게 무료해서 처음으로 당신에게 글을 쓰려고 합니다.매일보는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니 쑥스럽습니다. 당신과 한집에서 살을맞대고 산 지 25년이 되었습니다. 그 25년을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쉽지만은 않았던 우리들의 25년이었습니다.그날 기억하시죠?겨울 날씨치고는 따뜻했던 그날요.동네 소꼽친구였고 서로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는지 당신과 저는 같은 지붕 아래 사는 데그리큰 부담을 느끼지 못했습니다.남들 다 하는 결혼식도 올리지못하고 첫날밤의 살가운 정 하나로 맺어진 우리였죠. 그래도 좋았습니다.남의집 단칸방을 세 내서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야 했지만 따뜻했습니다.노동 품팔이로 맞벌이를 했죠. 남들 눈에는 시멘트 한 포대기 지고 4층을 오르내리는제가 가엾게도 보였겠지만, 서로젊을 때 벌어두자고하며 커 가는 자식들에게는 우리가 한고생을 시키지말자고 위로하며 지낸 날들이었습니다.그랬는데... 81년 1월 그날 당신은일터로 나가면서 오랜만에 일이 없어 시댁과 친정나들이를 하는 제게스카프를 매주며'잘 다녀와'했습니다.그런데 친정에 몇 분 앉아 있지도못하고 저는 당신의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신이 계신 병원으로 향하면서 큰 사고가 아니길 얼마나 빌었는지 손바닥에 땀이흥건할 정도였습니다.그러나 내 기도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응급실에서 만난 당신은 아침에 제게 스카프를 매주던 당신이아니었습니다.온 몸이 시커멓게 타들어가 산소 호흡기에 겨우의지하고 숨을 쉬는 당신은 저의 외침에도 전혀 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지영아빠, 여보, 당신, 정신 차려보세요.' 6만 6000볼트라는, 지금도 상상하기가 어려운 전압에 당신 몸이 감전되었다고 했습니다.마냥 주저앉아서 그냥 시간이 멈추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리라고 생각하며 일어섰습니다. 당신과 꾸던꿈이 사라졌음을 한탄만 하고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난생 처음의 서울행은 썩어 들어가는 당신 몸을 살리기 위해서, 당신 목숨을 살리기위해서였습니다.턱없이 마냥 올라가는 열을 내리기 위해서 얼음찜질을 계속하며 지낸 열흘 동안, 그리고 서울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그렇게 울었습니다. 눈가가 짓물러서 더이상 눈물이나와도 닦아 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데도그냥 눈물은 나왔습니다.서울에올라가서 의사에게 들은 것은 '왜 올라왔느냐'는 호통뿐이었습니다.제주로 돌아오면서 저는 '비행기가 여기에서 그냥 머무르든지아니면 떨어져버렸으면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14시간 동안의 수술을통해 당신은 왼쪽다리 허벅지부위, 왼쪽팔 어깨부위, 오른쪽팔팔꿈치를 잃고 겨우한쪽 다리만을 가진 동그라한 몸뚱이를 가지고제 앞에 실려 왔습니다. 오랫동안의 머뭇거림은 결국 당신몸만더 썩어들어가도록 허용한 꼴이었습니다.그날 밤 당신과 저는 얼마나 울었는지요. 저는 당신의온 몸을 감고 있는 붕대들을 쓰다듬으며,당신은 수술통증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울었죠.당신이 그렇게 우는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입니다. 제 얼굴을 어루만져줄 손도 없다면서 얼굴로 마냥 부비며 울었습니다. 미안하다는말만 거푸하시며 수술 후에 할머니 손을 붙잡고 당신 앞에 선아이들은처음엔 당신을 멀뚱하게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열 살과 일곱살 된 두 딸의 눈에는 이내 눈물이 가득해졌고, 그리고 당신 눈에도눈물이 가득했습니다."아빠..." "아빠 이상하니? 이제너희들이 아빠 대신 엄마를 돌봐야 한다. 공부도 잘하고 엄마말씀도 잘 듣고. 지영이 송이는 착하니까 아빠가 믿는다."당신은그때 의연한 척하셨지만, 당신이 가슴에서 쏟아내는 피눈물을저는 보았습니다.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당신은 절단 부위 치료때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괴로워했습니다.주사를맞은 엉덩이가 굳어질 대로 굳어져 더 이상 주사 맞을 자리가 없어 간호사는 힘들어 했고, 다섯 번의 재수술을 통해 당신의 몸만 덩그렇게놓여지게 되었죠.그렇게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병원비와 생활비는당신과 제가 모아두었던 돈으로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고, 저는당신 수발에 지친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빚을 얻으러 다녀야 했습니다.숫기가없었던 저였기에, 그리고 돈에 있어서 냉혹한 현실로 인해얼마나 힘들었는지, 당신은 어느 날 그랬습니다."여보 나죽여줘. 나 혼자는 죽을 수도 없다는 걸 당신이 더 잘 알잖아.제발 당신이나 자식들을 위해서..."그땐 솔직히 저도 당신이,어느 날 의사가 말한 대로전기 후유증이 심해져서, 심장마비라도 일으켜 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여보 당신이 이러시면 저는 더욱 힘들어져요. 그래요 차라리 당신이 없었으면 좋겠어요.제 앞에 놓인 당신과 자식들은 제게는 너무도 버거운 몫이에요.저도 지쳤어요. 오늘은 한푼도 빌리지 못했다구요.'당신에게 이렇게악이라도 퍼붓는다면 제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은 제게 힘이되리라 믿으며 견디었습니다. 언젠가 당신과 제가 꾸었던 꿈이 다시 부활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여보. 당신과 제가병원을 나선 건 늦은 봄이었죠. 고향 친지들의 도움으로보금자리를 다시 마련한 우리앞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커다랗게 높아진 빚더미밖에...온 식구가 살아남기위해서 저는 날품팔이라도 해야했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며일을 하고 집에 오면 손가락 움직일 힘도 없었습니다.하지만 저를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이런 생활의 어려움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방황이었습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잃어버린 팔다리에 대한 그리움으로당신은 날마다 자학하며 지내셨죠. 달래도 보고 계속 그렇게 한다면당신 곁을 떠나겠다고 협박도 해보았지만 방황은 계속되었습니다.그러다가 셋째 은성이가 태어나고 당신의 방황은 멈추었습니다.4개월도채 되지 않은 은성이와 당신을 집에 두고 날품팔이에 나서면서저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집으로 돌아와 보면 당신은 제대로기지도 못하는 은성이를 보살피느라 기진맥진해 있었고, 국민학생이었던딸 자식들은 엉망이 된 집안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죠.행상에 나가서는퉁퉁 불어오는 젖을 사람들 눈을 피해 짜내며 물건 하나 더팔기 위해 목이 쉬어라 외쳤습니다.밤이 되면 은성이에게 젖을 물리며 날마다 울었습니다. 당신은 곁에서 모른 척하며 숨죽여울었고.그래도 저는 아침이면 다시 독한 맘을 먹고 울면서 보채는 젖먹이를떼어놓고 나섰습니다. 자식들을 그대로두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없었습니다. 여보! 당신은 그때 얻은 위장병으로 지금까지도고생하고 계시구요.하루하루 이를 악물고선 아무리 해도 끝날 것 같지않은 막막함을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서 시험되어지는 듯한 느낌이었죠.시험이라면끝내 이기고야 말겠다고 생각했습니다.너무 힘들어서 당신 곁을떠나려고 할 때마다 건강하게 커주는 우리의 자식이 있음을 알았습니다.팔다리가없다고 해도 당신은 아빠였습니다. 제 남편이었구요. 그렇게마음먹으며 하루하루 버텼고, 시간은 흘러가 15년째 살아오고 있습니다.지금은방파제 공사 현장에서 밥일을 하며 10년째를 맞습니다.인부들의 식사 시간을 제대로 맞추기 위해서 서둘다 보면손이 성할 날이 없습니다. 칼날에 몇 번씩 베이면서 어디 하나 움직일수가 없을 정도가 되어도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고 있어야 했죠.당신은단지 안타까운 눈길을 줄 수밖에 없었고.어느 날인가 유난히도 눈이 많았던 겨울이었습니다.동이 트기도 전에 집을 나서함바로 향하는데 워낙 추워서 몸을 움츠리고 있어서였는지 얼어붙은눈길에 넘어진 적이 있었죠.짚고 일어설 것도 없었고, 그냥 그자리에 누워 다리와 허리에 오는 통증을 견디어냈습니다.온 몸이 언채로 겨우 일어서 인부들의 아침을 챙기며 저는엉엉울었죠. 당신은 모르실거예요. 당신이 가슴 아파할까봐말씀드리지않았으니까요.지금 아셔도 가슴 아파하실 테지만, 여보,이제는 제고통에 대해서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뒤를 돌아보며이렇게 당신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도 있잖아요.당신이 이제는 깊게주무시는가 봅니다. 천둥 번개가 멎어서 그런가 봅니다. 파도소리도 잦아들고 있고, 밤이 꽤 깊었습니다.고개를 들어 보니 큰딸이학사모를 쓰고 웃고 있습니다. 수석으로 졸업하는 중학교 졸업식장에,그리고 대학 입학식이나 졸업식에도 가지 못한 부모를 두고도착하고 당당하게 자라주어서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녀석이 얼마나대견한지 몰라요.비록 자신의 꿈이었던 선생님은 되지 못했지만 입시학원강사로서 작은 꿈을 펼치고 있고, 둘째는 당신을닮아서 타고난 손재주로 사람들의 머리를 다듬는 직업인으로 자리하고있습니다.머리를 신경쓰지 않아 언제나 핀잔을 들으면서도그 녀석의 손에 맡기면 되니 이제야 제가 견디었던 고통이 결코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압니다.어미젖 한번 제대로 빨지 못하고 자란셋째는 이제 국민학교 6학년이 되어서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지난봄 과학의 날에 과학기술처 장관상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기쁜지,당신과 저는 그날도 울었잖아요. 여보 이게이제 우리들이 받는 행복인가봅니다.당신 그거 기억하시죠. 다 큰 자식을 앞장 세우고결혼식을 올리던 때 목발 하나에 겨우 의지해서 의족으로 몸뚱이를만든 당신의 팔짱을 내가 끼고 입장 구령에 맞추어서 나오는 우리를 보며 지켜보던 사람들이 눈시울을 더욱 붉히는 걸 보고 당신이그러셨죠."울지 마세요."그때 저는 화장이 지워지는것도 모르고 면사포에 얼굴을 묻고 울며 다짐했습니다. 영원히 당신곁을 떠나지 않겠다고.내일이면 함바로 나가서 일을 해야겠지요.그리고 돌아와서는 당신의 아침을 챙겨드리고, 씻겨드리고, 화장실함께 가고,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제 생활입니다.가끔은 주위에서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또 외출을 자유롭게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움에 당신을 원망해보지만 그때마다 당신이 '허허'웃으며 '미얀해'하시면 저는 멋쩍게 돌아서곤했습니다.이제 겨울이 되려는가 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당신이 키우고 있는 저와 제가 가슴에서 키우고 있는 당신은 더욱커나가겠죠.이번 겨울이 되기 전에 당신을 위해 낡은 집을 수리해서꼭 보일러를 놓아드리고 싶었는데 죄송해요. 대중 목욕탕을못 가는 당신이어서 집에서라도 겨울이면 따뜻한 물에 때를 밀어드리고싶었는데.여보, 그렇지만 15년 전 당신이 팔다리를 잃은 것보다더한 불행이 우리에게 있었던 것에 대해서 만족하기로해요. 내년이면꼭 보일러 놓아서 당신의 때를 밀어드릴 것을 약속할게요 .당신의숨소리가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건강하셔야 돼요. 건강해야 당신이 하시는 장애인 단체 일도 잘 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의족과목발 하나에 겨우 의지해서 버스 타고 내리시는 당신을 생각하면당장이라도 그만두라고 떼라도 쓰고 싶지만 15년 만에 다시 시작한 당신의사회 생활이 자랑스러워요.자신과 똑같은, 혹은 더 큰 아픔을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장애인과 울고 웃으며 당신의 뜻을펴나가는 모습을 보며 저는 더욱더 숙연해지고 희망을 갖게 되는지도모른답니다. 항상 열심이신 당신이 자랑스러워요.죽으면 다시 팔다리가온전한 사람이 되니까 그때는 저를 업고 다니시며 함께 지내겠다는당신.여보! 당신이 저를 업어주지 못해도, 죽어서 다시 지금처럼팔다리가 없다 해도 제가 당신을 지금처럼 보살펴드릴게요. 걱정하지마세요.앞으로 우리 살아 있는 동안 웃으면서만 지내요. 그렇게살아도 당신과 제가 지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여보,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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